지드래곤이 돌아왔다. 스스로를 ‘88년도 8월 18일생, 남보다 많은 팔자’로 소개하는 그답게 88개월 만이다. 선공개곡 ‘POWER’는 1년 전 마약 누명 사건에 대한 풍자를 담았다.
빼곡히 써내려간 가사는 철학이 가득하다. “억까 짤 퍼다 샬라샬라하다가 샤라웃”하는 세상이 징글맞을 법도 한데, 시작부터 니체의 ‘위버멘쉬(Ubermensch)’를 꺼낸다. 니체가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제시한 위버멘쉬는 고통을 성장동력 삼아 춤추고 노래하는 마음으로 헤쳐가는 자,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긍정하고 나아가려는 자다.
제목도 니체의 『권력에의 의지(The Will to Power)』를 오마주한 걸로 보이는데, 속뜻은 ‘생존에의 의지’로 풀어봄 직하다. ‘권력오남용 묻고 관용/ 나는 나다워서 아름다워’라는 가사에, U를 사람과 사람이 바라보는 모습으로 형상화한 의상에 정념을 새긴 것 같다.
지드래곤은 지난달 30일 ‘유퀴즈’에서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면 위험한 생각을 할 것 같았다”고 고백했다. “연습생 11년, 데뷔해서 15년을 지내다 보니 권지용으로 산 시간은 4~5년 밖에 없었다”던 그의 서른 이후는 위태해보였다. 2017년 솔로앨범 ‘권지용’의 타이틀곡 ‘무제’는 앨범판에만 실린 미공개 뮤직비디오가 따로 있다. 안개 속으로 희미하게 사라지는 공개판과 달리 수평선 너머로 미련 없이 몸을 떨어뜨리며 끝난다. ‘내 소문은 무성해/ 수많은 눈들이 너무 무섭네’(Gossip man), ‘예쁘게 좀 봐주세요/ 욕하지 말아주세요’(One Of A Kind). 흥겨운 멜로디 속에 오랜 절규가 있었다.
“다시 음악을 하고 싶다”고 말하기까지 7년의 겨울잠이 필요했던 그의 자기 긍정과 생존 의지가 반갑다. “태어나줘서 고마운 마음보다 살아줘서 고마운 마음이 더 크다”는 안쓰러운 팬들에게 ‘나는 이제 괜찮다, 생의 의지가 충만하다’고 화답하는 가수의 노래보다 세련된 위로가 있을까.
그의 음악은 20세기 초 야수파의 그림처럼 혹은 앤디 워홀의 팝아트처럼 강렬하고 강박적으로 꿈과 도전, 사랑과 관능, 젊음과 자유를 노래했는데 그것은 어떤 형태로든 우리 세대의 일부가 되었다. 교실마다 놓여있던 TV장 앞에서, 친구들과 어울렸던 노래방에서, 버스 창가에 기대 듣던 MP3에서, 잠들기 전 몰래 떨군 눈물 끝에서, 화려한 폭죽이 터지던 콘서트장에서, 그런 어딘가에서 우리 중 많은 이가 한 번쯤은 그의 시절을 빌려썼다.
연예인 걱정은 사치라는데 그냥 사치 한번 부리려고 한다. 이름 하나도 알리기 힘든 연예계에서 지드래곤·GD·권지용이란 이름을 셋이나 대중에게 각인시킨 슈퍼스타, 내 청춘을 찬란하게 수놓은 나의 첫 연예인, 내 모든 취향의 계곡. 당신에게 학창시절을 빚진, 함께 울었던 웃었던 소년과 소녀들이 이젠 다 커서 당신의 안녕을 빈다. 행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