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모 칼럼] 어도어 소속 걸 그룹 뉴진스와 민희진 이사(전 대표)가 결국 무장을 해제하지 않은 채 루비콘강을 건넜다. 민 이사는 어도어 모회사인 하이브에 자신의 주식에 대한 풋 옵션(주식 매수 청구권) 행사를 통보했고, 뉴진스는 민 이사를 대표 이사 자리에 복귀시키지 않으면 전속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내용 증명을 전달했다. 사실상 결별 수순을 밟는 최종 통보를 한 셈이다.
민 이사가 승리한다면 그녀는 주주 간 계약에 따라 260억 원을 받을 수 있다. 그녀는 풋 옵션 산정 기준 연도를 2022∼2023년으로 잡았다. 그런데 내년으로 넘어가 2023~2024년으로 잡으면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다. 왜 그랬을까?
민 이사가 풋 옵션 행사를 통해 실제로 거액을 손에 쥐기까지는 지난한 시간을 거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하이브는 지난 7월 민 이사에게 신뢰 훼손 등을 이유로 풋 옵션의 근거가 되는 주주 간 계약 해지를 통보했기 때문이다. 물론 민 이사는 계약이 여전히 유효하다며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뉴진스가 대놓고 민 이사에 대한 지원 사격에 나섬으로써 사실상 뉴진스와 민 이사 연합은 하이브와의 결별 수순에 돌입한 모양새이다. 뉴진스는 지난 13일 "시정 요구 사항이 향후 14일 이내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전속 계약을 해지하겠다"라며 어도어에 내용 증명을 보냈다. 그 요구 사항의 첫 번째는 민 이사의 대표 이사 복귀이다.
뉴진스는 "하이브가 '뉴(뉴진스)를 버리고 새로 판을 짜면 될 일이다.'라는 결정을 한 것에 대해 어도어는 뉴진스의 매니지먼트사로서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라. 최근 국정 감사에서 확인된 하이브의 음악 산업 리포트 중에는 '뉴아르(뉴진스·아일릿·르세라핌) 워딩으로 며칠을 시달렸는데 뉴를 버리고 새로 판 짜면 될 일이다'라는 문구가 있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어도어의 유일한 아티스트인 뉴진스를 버리라고 결정하고 지시한 사람이 누구인지, 그 지시에 따라 누가 어떤 비위를 저질렀는지 분명하게 확인하고 그 과정에서 발견되는 배임 등의 위법 행위에 대해 민·형사상 조치를 해 달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어도어는 이에 대해 14일 "내용 증명을 수령해 검토 중이다. 구체적인 요청 사항에 대해 파악하고 있다. 지혜롭게 해결해 아티스트와 지속적으로 함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 글만 보면 어도어는 뉴진스와는 '헤어질 결심'을 세우지 않았다.
뉴진스가 가장 쉽게 하이브와 결별할 수 있는 방법은 4500억 원 이상으로 추정되는 위약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하지만 민 이사와 뉴진스가 그 길을 선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들이 지난 2년간 꽤 돈을 벌었고, 만약 민 이사의 풋 옵션 유구가 받아들여질 경우 260억 원의 추가 수입이 발생하지만 4500억 원까지는 요원하다. 탬퍼링(계약 만료 전 사전 접촉) 의혹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지난 4월 하이브와 민 이사의 갈등이 시작된 이래 하이브는 민 이사가 하이브(혹은 어도어)를 탈출하기 위해 투자자 등을 수차례 접촉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당연히 민 이사는 정면으로 부인했다. 그런에 지금까지 민 이사와 뉴진스가 보여 온 일련의 행보와 이번의 양측의 적극적인 행동을 보면 하이브가 얼토당토아니한 것만은 아닌 듯도 하다.
민 이사가 요구한 풋 옵션은 내년으로 미룰 경우 그녀는 더욱더 많은 추가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그 점을 모를 리 없건만 몇 달을 못 참고 풋 옵션을 요구한 것은 관계자들은 물론 대중이 뭔가 배경이 있을 수도 있다는 의구심을 가질 만한 여지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할 수 없다.
일단 하이브는 민 이사의 대표 복귀에 전혀 의지가 없다. 또한 민 이사의 풋 옵션 행사의 근거가 되는 주주 간 계약이 이미 해지됐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따라서 풋 옵션 행사 가능성에 대한 여부는 추후 확인의 소송을 통해 결판이 날 것이 자명하다. 뉴진스의 전속 계약 해지 요구 역시 민 이사와 뉴진스가 4500억 원을 들고 오지 않는 한 지루한 싸움이 될 것 역시 명약관화하다.
이런 가운데 하이브 소액주주연합이 행동에 나섰다. 이들은 17일 “K-팝의 선두 주자인 하이브가 필요 이상으로 공격당하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볼 수만은 없다고 판단했다. 하이브는 이번 일을 통렬한 반성과 자아 성찰의 계기로 삼아 회사의 불합리한 부분을 개선해야 한다. 소통 개선, 투명성 강화를 위해 노력하라”라고 촉구했다.
또한 민 이사에게 “더 이상 뉴진스 등 하이브를 포함한 K-팝의 모든 아티스트들을 본인의 분쟁에 끌어들이지 말라”라고 요구했다. 더불어 “특정 팬덤층의 일방적인 주장으로 하이브를 폄훼하고 공격하지 말라”라며 정치권에 일갈했다. 특정 팬덤을 향해서도 “더 이상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고소, 고발, 청원을 남발해 국내외 K-팝 팬들의 피로를 가중하지 말라”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향후 민 이사, 특정 팬덤층, 정치권 등이 회사의 가치를 훼손시키는 행위를 했을 시 법적 소송 등 모든 수단을 강구해 책임을 물을 것이다”라고 강렬한 임팩트를 남겼다.
지난 16일 열린 코리아 그랜드 뮤직 어워드에서 뉴진스 멤버 다니엘은 수상 소감으로 "우리가 뉴진스가 아니더라도 뉴진스는 네버 다이이다."라고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이미 민 이사-뉴진스 연합이 루비콘강을 건넜다는 것을 대놓고 말한 것으로 유추가 가능하다. 뉴진스라는 상표는 하이브(어도어)의 소유이다.
다섯 멤버가 어도어를 나와 그대로 활동을 하더라도 뉴진스라는 이름은 쓸 수 없다. 소속사 어트랙트를 떠난 피프티 피프티 전 멤버 세 명이 전 이름을 쓸 수 없고, 잔류한 단 한 명의 멤버에 새 멤버를 보강한 어트랙트의 새 그룹이 여전히 피프티 피프티로 활동하는 것처럼.
뉴진스가 일방적으로 민 이사 편을 들 수 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아침 일찍 출근해 저녁 늦게 귀가하는 데다 휴일이면 낮잠만 자는 아버지보다 온종일 붙어 있고, 취학 후에도 학교생활을 챙겨 주며, 방과 후 밀착되어 있는 어머니와 가깝기 마련이다. 당연히 아버지와의 대화는 거의 단절되었고, 오직 어머니를 통해 인식론을 쌓게 된다.
그런데 뉴진스는 혜인만 소녀일 뿐 팀 자체는 어엿한 프로페셔널이다. 수천, 수만 명의 팬들을 움직이는 글로벌 K-팝 걸 그룹이다. 자신들의 먹여 살려 준 아버지에게도, 성장하기까지 키워 준 어머니에게도 효도를 해야 하지만 지금은 뉴진스를 성공으로 이끌어 준 팬들과, 투자자들에게 보은할 때이다. 효도는 더 많은 돈을 벌고, 한가해졌을 때 해도 늦지 않다.
지금 그들은 양부모의 돈 다툼에 말릴 게 아니라 뉴진스라는 자리에서 팬들을 위로하고 투자자들의 걱정을 덜어 줄 때이다. 글로벌 팬들에 이어 하이브 소액주주연합까지 민 이사에게 분쟁에 아이돌을 끌어들이지 말라고 간구한 데에서 명분을 찾기는 쉽다. 이 분탕질에 가장 피곤한 사람은 팬들이기에.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2012)에서 최형배(하정우)는 "학생은 공부를 해야 하고, 건달은 싸움을 해야 한다"라고 외친다. 전 세계 팬들이 뉴진스를 좋아하고 응원하는 이유는 그들이 강력한 호위 무사이기 때문이 아니라 아름다운 K-팝 걸 그룹이기 때문이다. 고대 로마 때 무장한 채 루비콘강을 건너는 것은 제국과 국민에 대한 반역이었다.
[유진모 칼럼 / 사진=셀럽미디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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