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지 않게 생긴 이 빚은, 1만9000원짜리 치킨을 시켜먹을 때도 고민을 참 많이 하게 합니다. 저는 치킨을 너무 좋아하지만 한 달 동안 꾹 참았다가 마침내 주문하고 그것도 봉지에 소분해 냉동실에 보관했다가 며칠을 아껴먹습니다. 얼른 빚을 상환해 내가 번 돈 내가 편히 쓰고 편하게 음식을 먹고 싶습니다. 정신과 약도 그만 먹고 싶습니다. 전세사기를 당하며 돈은 물론이고 꿈과 인생이 망가졌지만 그나마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은 다가오는 20일에 있을 재판입니다. 부디 피고인에게 엄벌을 내려주세요.”
대학 생활 4년 내내 성적장학금을 받으며 학비를 충당하고,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었던 부산의 한 20대 청년의 호소에 법원이 응답했다.
대법원 1부(주심 신숙희 대법관)는 20일 사회 초년생들을 대상으로 180억원대에 달하는 전세 보증금을 가로챈 혐의(사기)로 기소된 최모씨에 대해 징역 15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최씨는 2020년부터 지난해 1월까지 무자본 갭투자 방식으로 원룸 등 부산 소재 원룸 9개 건물 세입자 229명에게 임대차보증금 179억9000만원을 돌려주지 않은 혐의로 기소됐다. 최씨는 임차인들에게 임대차보증금을 반환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는데도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당초 검찰 기소 단계에서 피해액은 160여억원이었는데, 추가 피해가 확인되면서 금액이 더 늘었다.
1심에서 최씨는 검찰 구형량인 징역 13년보다 높은 15년을 선고받았다. 1심 판결에선 피해자를 울린 판사의 발언이 주목받기도 했다. 1심을 담당한 부산지법 동부지원 형사 1단독 박주영 부장판사는 20~30대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탄원서를 법정에서 하나하나 읽어 내려가며 피해자들에게 “험난한 세상에 무한 책임을 져야 하는 기성세대로서 비통한 심정으로 여러분의 사연을 읽고 또 읽었다”며 “절대로 자신을 원망하거나 자책하지 말아달라”고 위로를 건넸다.
박 부장판사는 “이 사건의 주된 책임은 위험을 신중하게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무리하게 임대 사업을 벌인 최씨에게 있다”며 “최씨는 피해 복구를 위한 실질적인 조처를 하지 않았고, 피해자들은 재산상 손해와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며 엄벌을 거듭 탄원하고 있어 중형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2심 재판부 판단도 같았다.
최씨는 상고심에서 양형부당을 주장했지만, 대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은 이날 “최씨의 상고를 기각한다”며 원심을 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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