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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먹는 하마가 된 것 같았어요”
지방에서 홀로 상경한 이모(23·여)씨는 4년 전 서울에 있는 한 대학교에 입학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월세방을 구하고 자취를 시작했지만 이내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서울살이에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씨는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등록금과 월세를 볼 때마다 한숨이 나왔다.
불안정한 미래와 치열한 경쟁 속에서 무기력함을 느끼는 청년이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2022년 청년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청년 중 32.1%가 우울 위험군에 속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청년 10명 중 3명이 우울증 위험 상태에 놓여 있다는 의미다.
이씨를 포함한 네 명의 대학생 취재원들도 각기 다른 이유로 우울감을 호소했다. 경제적 부담, 학업 스트레스, 취업난 등 그 이유는 다양했다. 하지만 이들은 힘든 현실에도 어려움을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잃지 않고 있었다.
경제적 이유로 대인관계도 포기
이씨는 대부분 시간을 혼자 보내는 편이다. 학교 수업과 주 1회 동아리 활동이 사람들과 교류하는 거의 유일한 시간이다. 가끔 친구를 만날 때도 있지만 마냥 즐겁진 않다. 이씨는 “친구를 만나면 어쩔 수 없이 돈을 쓰게 된다. 그 시간에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우울해진다”고 말했다.
무기력함이 심해지는 날엔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봤다. 집안일이 쌓여갔지만 몸을 일으키기조차 힘들었다. 자취방에는 쓰레기가 쌓였고 날벌레가 생기기 시작했다. 빨래를 제때 하지 못해 입을 옷이 없어 난감했던 순간도 있었다.
혼자 보내는 시간에 익숙해진 이씨지만 늘 담담했던 건 아니다. 그는 “동기들이 여행 계획을 세우거나 동아리에서 서로 놀러 다닌 이야기를 할 때는 외롭기도 했다”며 “누군가와 함께 추억을 쌓을 기회가 나만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털어놨다.
과도한 경쟁이 남긴 후유증
“늘 지쳐 있어 새로운 일에 도전할 힘이 없어요. 대부분 혼자 집에 있는 편이에요”
신모(23·여)씨는 두 번의 수능을 치르고 대학에 입학했지만 좀처럼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학창 시절부터 지속된 우울감이 대학에서도 이어졌기 때문이다. 우수한 성적을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은 만성적인 우울증으로 변해 신씨를 괴롭혔다.
자주 강의를 빠진 탓에 학점도 신경 쓰지 못했다. 신씨는 “입시에 대한 일종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겪고 있는 것 같다”고 고백했다. 수능에 모든 힘을 다한 탓에 대학에서 새로운 공부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사람을 만나는 일은 더 큰 부담이었다. 학창시절 친구들과의 연락은 자연스레 끊겼고 대학에서 마음을 터놓을 동기는 아직 사귀지 못했다. 신씨는 “어쩔 수 없이 혼자가 된 지 4년째”라고 했다. 그러나 마음의 문을 완전히 닫은 것은 아니다. 그는 “늘 외롭다고 느낀다”면서 “사람과 교류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털어놨다.
취업 준비 외롭지만… “남과 비교하지 않는 마음가짐 가져야”
혼자 취업 준비를 하며 외로움을 겪는 청년들도 있다. 패션 업계를 꿈꾸는 조모(23·여)씨는 대학교 마지막 학기를 보내며 인턴을 구하고 있다. 그러나 채용 정보를 찾던 중 교수에게서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조씨가 희망하는 기업은 지인을 통해 인턴을 선발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조씨는 아무리 채용 사이트를 찾아도 공고를 볼 수 없었던 이유를 그제야 깨달았다. 그는 “친한 동기들이 많지 않아 인턴 기회를 놓친 것 같다”며 자책했다.
조씨는 인맥을 쌓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다. 교내 동아리에 가입해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려 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변수가 생겼다. 온라인으로 사람들과 친해지는 건 한계가 있었다. 그나마 알고 지내던 동기들은 대부분 졸업했거나 취업 준비에 매진하고 있었다. 조씨는 “이제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다고 느껴진다”며 외로움을 토로했다.
대학생 취재원들은 모두 주변 사람에게 우울한 감정을 털어놓지 않는다고 했다. 이유는 같았다. 자신의 상황이 약점으로 작용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한 취재원은 “다른 사람에게 우울함을 말해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두운 면을 외부에 공개해서 약점잡히고 싶지 않다”고 했다.
특히 사기업 취업을 고려하고 있는 이씨는 대외적인 이미지를 중요하게 여겼다. 그는 “밝은 이미지를 유지해야 나중에 취업에 필요한 정보를 얻기 쉽다”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대외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다들 활기차 보인다. 내가 우울하다는 소문이 나면 누가 나와 함께 활동하고 싶어하겠느냐”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과도한 경쟁 분위기에서 찾는다. 곽금주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사회 내 경쟁이 심해진 만큼 청년들이 심리적 박탈감을 느끼기 쉬워졌다”면서 “선두가 아니면 뒤처진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코로나 시기 심해진 개인주의에서도 원인을 찾는다. 곽 교수는 “심리적으로 힘든 상황에 놓일 때 사회적 관계는 완충재 역할을 한다”면서도 “코로나 시기에 개인주의가 심화하면서 그 완충 지대가 무너졌다. 기간이 길었던 만큼 쉽게 회복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20대는 가능성이 많은 시기다.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곽 교수는 청년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 조언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스스로 어떤 삶을 살 것인지 가치를 정립해 나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무엇이든 시도해보는 도전정신도 강조했다. “머리가 복잡할 때는 몸을 움직여 활동하는 게 도움이 된다”며 “좋아하는 걸 찾기 어려우면 싫어하는 것부터 제외해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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