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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쓰비라는 혼성 그룹이 있다. 유튜브 채널 MMTG(문명특급)의 '위대한 재쓰비' 프로젝트로 결성된 3인조로 멤버 재재, 승헌쓰, 가비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을 따 그룹명을 지었다. 이들의 데뷔곡 '너와의 모든 지금'은 음원 시장에서 '조용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11일 곡이 공개된 후 입소문을 타더니 22일 기준 멜론 일간 차트 톱 70까지 진출했다. 대형 K팝 기획사 출신도, 세대를 아우르는 인지도를 가진 예능인 조합도 아닌 신인 그룹이 데뷔곡으로 유명 가수들도 진입하기 어렵다는 이 차트 톱 100에 오른 것은 이례적이다.
깜짝 인기엔 사연이 있다. 재쓰비 멤버 세 사람은 모두 가수 출신이 아니다. 하지만 누구보다 가까운 곳에서 K팝을 사랑했고, K팝과 가까운 산업에서 역사를 쌓아 왔다. 다양한 각도에서 K팝을 조명하는 콘텐츠를 만든 방송사 PD 출신(재재), 개성 넘치는 K팝 커버 영상으로 인기를 끈 콘텐츠 크리에이터(승헌쓰), 에스파의 '슈퍼노바' 등 K팝 히트곡 안무를 만들어 온 전문 댄서(가비). '너와의 모든 지금'은 이렇게 그간 K팝 '조연'이었던 이들이 직접 팀을 꾸려 그들만의 색깔로 그들이 사랑했던 K팝의 주인공이 된 새로운 여정이었다. 샤이니 '방백'을 만든 작곡가 모노트리의 황현과 브라운아이드걸스 멤버 제아가 작곡을, 세븐틴과 트와이스 등 K팝 유명 그룹과 합작해 온 최영준이 안무를 각각 맡아 재쓰비 데뷔곡의 완성도를 높였다.
재쓰비가 무엇보다 고민했던 건 음악의 '진정성'이었다. 김이나 작사가는 세 멤버에게 "자아에 상처 하나 없이, 인생에서 가장 무모하고 반짝였던 때"를 알려달라고 했다. 그렇게 세 멤버의 솔직한 고백이 담긴 노래는 소중히 감춰 둔 어린 시절 일기장을 다시 펼쳐 보는 듯하다. "말도 안 되게 싱그러웠어. 뭘 해도 됐던 그 나이엔"이라는 첫 소절로 듣는 사람을 순식간에 '내 생에 가장 티 없이 맑았던 그 시절'로 데려다 놓은 이들은 "난 너를 믿어" "아무것도 아닌 건 아무것도 없었어"라고 노래하며 '자기 긍정'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 '마음'이 통했다. '너와의 모든 순간' 뮤직비디오가 올라온 유튜브 채널엔 "면접 탈락 연락받고 이 노래 들으면서 펑펑 울었다. 또 멋진 기회가 오기를" "비아냥과 조롱이 난무하는 시대에 우리 모두 사실 이런 응원이 필요했던 건 아닐까" 등의 댓글이 달렸다. 취업 준비생 등 각자의 자리에서 오늘도 열심히 각자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 이들의 자기 고백이었다. 단순히 노래가 좋다는 감상을 넘어 그 노래에 나의 삶 한자리를 내어주고 그 온기로 다시 내일을 살아갈 기운을 얻어 본 사람들, 즉 재쓰비와 K팝 팬들이 새삼 보여준 '음악의 힘'이었다.
최근 공개된 여성 그룹 트리플S의 퍼포먼스 프로젝트그룹인 비저너리 비전의 '춤'을 들으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이 곡은 무대 아래 모두가 나를 주목하는 잠깐의 순간을 위해 매일 흘린 땀을 얘기한다. 힘들 때도, 마음이 복잡할 때도, 나의 마지막 응원군이라고 생각했던 엄마마저 나를 포기해도 차마 놓을 수 없었던 나의 '춤'이자 '꿈'. 또 다른 그룹 NCT드림은 노래 '하늘을 나는 꿈'에서 이젠 굳은살처럼 딱딱하게 굳어 버린 꿈이 다시 한번 날개를 펼친다. 겉보기엔 순해 보여도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은 '고운 마음'들이 담긴 노래들을 들으며 문득 생각한다. 어쩌면 이런 게 K팝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닐까. 기록과 인정에 한참을 현혹됐던 몸과 마음을 박박 닦아 본다. 다시, K팝을 사랑할 시간이다.
한국일보 김윤하 대중음악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