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현행법상 노동자성 인정받기 어려운 아이돌... 취약한 노동환경 개선 위한 장치 필요
지난 20일 고용노동부는 아이돌 뉴진스 하니(본명 '팜 하니')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직장 내 괴롭힘 조사를 종결했다. 하니가 라이브 방송을 통해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고 주장한 지 약 두 달 만이다.
한 팬은 해당 라이브 방송을 보고 노동부에 민원을 제기했고, 직장 내 괴롭힘을 조사할 근로감독관이 배정될 예정이라는 기사가 보도됐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서는 "사실일 경우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는 의견을 냈다.
그 사이 하니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직장 내 괴롭힘과 따돌림 의혹에 대해 증언했다. 국정감사 현장에서는 하이브의 과로사 은폐 의혹, 으뜸기업 선정 취소 청원
등의 문제도 함께 다뤄졌다. 이같은 버니즈(뉴진스 팬덤)와 대중, 국회와 시민사회의 공분에도 불구하고 노동부가 기계적인 법 해석을 내놓은 것.
노동부의 주장대로 뉴진스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니다. 그러니 근로기준법 제76조의 2, 제76조의 3과 같은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으로 보호하기 어려울 수 있다.
다만, 최근 산업안전보건법 제77조(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안전조치 및 보건 조치)에 따라 직장 내 괴롭힘으로부터 특수고용프리랜서노동자를 보호해야 할 사업주의 책임이 인정된 판례가 있다. 정부는 이를 근거로 조사를 이어가고,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 개선을 입법부에 제안하는 등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야 한다.
정부는 법조문을 협소하게 해석해 집행만 하는 '법 해석 자판기'가 아니다. 하니가 근로기준법에 따른 노동자가 아니라고 해서 "우리 회사(하이브)가 우리(뉴진스)를 싫어하는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는 하니의 호소 속 고통이 사라지진 않는다.
더 나아가 노동부의 결정은 하니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이렇게까지 크게 공론화된 세계적 아이돌의 직장 내 괴롭힘 의혹조차 외면하는 정부의 태도는 배달노동자, 골프장 경기보조원, 대리운전 기사와 같은 특수고용노동자에게도 비관적 메시지를 주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일하는 모든 사람이 보호받을 권리
정부는 아이돌을 보호할 생각이 없다. 소속사는 보호는커녕 사내 정치에 가담해 직장 내 괴롭힘 의혹을 양산한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노동조합이다.
몇몇 직군의 특수고용프리랜서노동자들은 이미 노동조합을 결성해 활동하고 있다. 배달노동자로 이뤄진 라이더 유니온은 라이더 산업재해보험 전면 적용,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적용 등 라이더의 안전한 노동환경을 확보해나가고 있다.
타투이스트로 이뤄진 타투유니온은 불법의 영역으로 내몰린 타투이스트를 보호하는 타투법 제정 활동을 하거나, 타투이스트 감염관리지침을 만들어 현장에 적용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할리우드 배우·방송인 노동조합(SAG-AFTRA)을 결성해 파업 시위를 벌여 모션 캡쳐 배우 처우 개선(2016), 기본급과 플랫폼 재상영 분배금, AI로부터 배우 권리(2023)에 대해 교섭했으며 2024년 9월 라이엇 게임즈를 상대로 노동조합 탄압에 항의하며 파업에 들어갔다.
아이돌 노동자들도 이미 다양한 부조리를 경험하고 있다. 개인이 상품화돼 무리한 다이어트와 사생활 침해 등이 당연시된다. 심각한 노동 강도에 신체적·정신적 산재도 많다. 그리고 이 모든 부조리가 꿈을 이루기 위한 당연한 과정 또는 성장 드라마로 그려지기도 한다. 불법·탈법적인 행위도 발생한다. 아이돌을 희망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연예기획사가 무분별하게 난립했고, 이 과정에서 많은 연습생이 피해를 입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은 '대중문화예술 종합정보시스템'을 구축해 연예기획사를 등록하도록 했다. 그런데도 등록하지 않은 무허가 기획사가 당당히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여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만약 이런 무허가 기획사에 노동조합이 설립된다면 그것 자체가 불법·탈법 행위의 감시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아이돌의 노동자성 인정과 노동조합의 설립은 소외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창구가 된다. 이번 하니의 직장 내 괴롭힘 의혹이 공론화된 것은 뉴진스가 많은 인기를 얻은 아이돌 스타이기 때문이다. 많은 시청자가 보는 라이브 방송, 스타들만 설 수 있는 시상식 무대에서 발언권을 얻기도 쉽다. 그럼에도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니라며 보호받지 못했다.
하지만 아이돌은 스타만 있는 것이 아니다. 비교적 관심을 받지 못한 아이돌이나 연습생, 신인, 10대 아이돌 청소년처럼 소외된 사람들은 목소리를 내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 이때 노동조합은 대안이 된다. 아이돌 스타가 아니더라도 한 명의 노동자로서 권리를 요구할 수 있다.
아이돌이 기획사와 동등할 수 없는 이유
아이돌 노동조합을 논하기 전에 아이돌이 노동자인지 논할 필요가 있다. 노동부가 뉴진스의 직장 내 괴롭힘 조사를 종결한 이유는 아이돌이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였다. 앞서 필자가 타 매체에 기고한 글에는 "아이돌이 무슨 노동자냐", "몇십 억씩 버는 개인사업자" 등의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관련기사 : 뉴진스도 당한 직장 내 괴롭힘, 아이돌도 노조가 필요하다 https://omn.kr/2b4u6)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이돌은 노동자가 맞다. 노동부는 뉴진스가 "대등한 계약 당사자 지위"라고 했다. 그런데 아이돌과 연예기획사가 동등한 관계일 수 없다. 하이브 레이블의 수장 방시혁 의장과 신인 아이돌 투어스 간의 관계, 신인 아이돌 엔믹스와 JYP의 수장 박진영PD의 관계가 대등할 수 있을까? 나이, 젠더, 업계의 위치 등 기획사와 아이돌 멤버 간의 위계가 만들어질 이유는 많다.
무엇보다 '아이돌고시'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과열된 경쟁에 더해, 기획사 연습생이 돼야 데뷔할 수 있는 시스템은 "서로 간의 계약이 이미 데뷔 전부터 기획사에게 유리한 조건이 될 수"(박성모, 2015)밖에 없도록 만든다. 그렇기에 연예기획사는 '소속사'라고도 불리며 아이돌을, 연습생을 '고용'한다.아이돌 노동조합이 결성되면 강한 힘이 덧붙여진다. 바로 '팬덤'이다. 아이돌 팬덤은 종종 트럭시위, 화환시위, 해시태그 시위와 같은 단체 행동을 하기도 한다. 위험한 안무 수정, 소속사의 성적대상화 반대 등 아이돌을 위한 단체 행동도 있지만, 많은 경우 아이돌의 사생활에 대해 규율하거나 다소 지엽적인 부분도 시위로 이어진다.
노동조합이 있으면 팬덤의 단체행동에 아이돌 당사자들을 위한 방향성이 제시될 수 있고, 팬덤도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을 위해 연대하기 수월해진다. 팬덤이 연대한다면 기획사들이 단지 돈을 버는 소비자로서 팬덤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돌 노동자와 함께 문화를 만들어내고 예술의 공공성을 확보하는 주체로 성장할 수 있다.
아이돌 노동자들은 부조리가 있다면 대부분 전속계약 해지 소송으로 대응해왔다. 쉽게 말해 일을 그만두는 것이다. 만약 전속계약 해지를 통해 부당한 일에서 벗어나더라도 대부분의 경우 그룹과 팬덤의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거나, 계약 기간 중에 활동한 곡을 선보일 수 없다.
노동조합이 있으면 달라질 수 있다. 부당한 관행을 없애고, 부조리를 감시하고, 근본적인 제도를 개선해 처음부터 아이돌과 소속사 간의 갈등을 예방할 수 있다. 적어도 일을 그만두지 않고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선택지를 남겨둘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아이돌 노동조합으로 아이돌과 팬의 추억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최보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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