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자정부터 뉴진스와 어도어는 계약을 해지할 것을 말씀드립니다."
걸그룹 뉴진스는 단호했다. 28일 오후 8시30분 서울 강남 모처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외친 일성(一聲)이다. 불과 2시간 전에 공지한 긴급 기자회견이었다. 그만큼 그들은 급했고, 또 절박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의지를 보여주기 위함이었을까? 뉴진스는 기자회견 개최를 공지하면서 '생중계 가능'을 포함시켰다. 앞서 민희진 전 대표가 두 차례 기자회견을 진행하며 생중계를 통해 엄청난 파급력을 보였던 것과 맥이 닿는 지점이다. 이 자리에서 5명이 하나라는 것은, 그들의 의지가 굳건하다는 것은 분명히 보여줬다. 하지만 의문은 남는다. 그들의 주장은 법적으로 효력이 있을까?
이 날 여러가지 질문과 답변이 오갔다. 대부분의 질문에 명확한 입장을 취하던 멤버들이 뾰족한 답변을 내놓지 못한 질문이 있었다. "법률 검토를 했느냐"는 것이다. 여러 기자를 통해 비슷한 뉘앙스의 질문이 나왔다. 이 때 뉴진스는 이렇게 답했다.
"하이브와 어도어가 계약을 위반했기 때문에 계약을 해지하는 것이다. 우리는 충분히 대화를 했고 내용증명을 보냈는고 내용증명에 쓰여 있는 내용대로 계약을 해지한 것이다."
또 다시 꼬리를 무는 질문이 나왔다. 통상적으로 계약 관련 이슈에 대해 당사자들은 2주 간의 말미를 주고 내용증명을 보낸다. 하지만 2주가 지났다고 해서 한 쪽의 주장이 곧 현실화되는 것은 아니다. 내용증명은 보통 소송의 전 단계다. 내용증명을 통해 몇 가지 요구 사항을 전달했는데, 이것이 이행되지 않으면 본격적인 법적 절차를 밟는다.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법대로 하자'는 일종의 경고장인 셈이다. 그런데 뉴진스는 "내용증명에 쓰여 있는 대로 계약을 해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또 다른 질문이 나왔다. 한 기자는 "계약 해지 관련해 문제를 제기한 뒤 2주 안에 답변이 없으면 계약이 해지된다는 조항이 원래 계약서 안에 포함됐나?"라고 물었다. 만약 어도어와 뉴진스가 데뷔 당시 계약서를 작성하며 이같은 문구를 포함시켰다면 뉴진스의 주장은 성립된다. 이 때 뉴진스는 "법률적인 이야기는 추후에 드려야겠지만 저희와 같은 이런 케이스가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정확한 답변이라 할 수 없다. 그러자 뉴진스가 이번 기자회견 주최를 위해 섭외한 사회자가 "법률 검토와 관련된 부분은 아직 논의 중인 상황"이라고 대신 답했다. 결국 뉴진스의 기자회견문은 법적인 검토를 거친 후 발표한 내용이 아니라는 의미다.
적법한 계약해지를 위해서는 절차가 있다. 최종 법적인 판단을 받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그래서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낸다. 여기서 '인용'을 받아내면 곧바로 계약의 효력은 중단됐다. 개별 활동이 가능해진다. 다른 기획사와 계약도 맺을 수 있다. 그 이후 잘잘못은 본안 소송에서 가린다. 이에 대해 뉴진스는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은, 어도어와 하이브가 계약을 위반했기 때문에 계약을 해지하는 것이고 계약이 해지되면 전속계약의 효력은 없어지므로 앞으로 저희 활동에는 장애가 없을 거다. 그래서 저희는 앞으로 꾸준히 활동할 수 있기 때문에 가처분 소송할 필요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동안 이런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만약 가처분 소송 등의 절차를 밟지 않고 독자적인 행보를 구축한다면 이는 '계약 파기'이나 '계약 위반' 행위가 된다. 오히려 뉴진스가 이를 노리는 것이란 분석도 있다. 무슨 뜻일까? 뉴진스가 개별 활동을 한다면 어도어는 이를 막기 위해 법적 절차를 밟게 될 가능성이 크다. 뉴진스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될까? 소속사와 소속 가수가 법적 분쟁을 겪는 것 자체가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의 주요 인용 사유인 '신뢰 관계 파탄'에 해당될 수 있다. 이를 통해 인용을 받아내면 뉴진스는 합법적으로 독자 노선을 구축할 수 있다.
다만 리스크는 있다. 바로 위약금 소송이다. 현재 상황에서 뉴진스는 최대 6000억 원 가량의 위약금을 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 때 누가 더 잘못을 했는지를 가리는 것이 관건이다. 만약 법적인 절차 없는 개별 활동이 계약 위반 또는 파기 행위로 간주된다면 위약금 규모가 커질 수 있다. 즉,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개별 활동은 어떤 방식으로든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또 다른 분석도 존재한다. 평소 뉴진스를 지지해 온 이현곤 새올법률사무소 변호사는 기자회견 직후 SNS를 통해 "기자회견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계약은 해지하되 (전속계약해지 가처분) 소송은 하지 않겠다는 부분이다. 전례 없는 방법"이라며 "가처분 소송을 하면 결론이 날 때까지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송을 하지 않고 나가도 된다. 이렇게 되면 어도어에서 뉴진스를 상대로 소송을 해야 하고 뉴진스는 그걸 기다리면 된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는 일종의 사회적 약속인 계약서의 근간을 흔드는 행동이 될 수 있다. 계약이 법적 구속력을 갖듯. 그 계약을 깨기 위해서는 합법적 판단을 받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그 법적 판단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길어지면서 발생하는 피해를 막기 위해 가처분 신청이라는 제도가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어도어는 "내용증명에 대한 회신을 받기도 전에 충분한 검토 없이 전속계약 해지 기자회견을 계획하고 진행한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전속계약 당사자인 어도어는 계약을 위반하지 않았고, 일방적으로 신뢰가 깨졌다고 주장한다고 해서 해지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양측의 대립각은 더 팽팽해졌다. 결국은 법적 싸움이 불가피하다. 뉴진스를 향한 팬덤은 여전히 공고하지만, 중립적으로 이 사안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이탈은 어느 정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윤준호(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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