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이 분석한 법률적 셈법
28일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어도와의 전속계약을 해지하겠다고 통보한 뉴진스가 별도의 법적 조처는 하지 않겠다고 밝힌 걸 두고 그 이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회견에서 멤버들은 “어도어는 아티스트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회사로서 기본적인 의무인데, 뉴진스를 보호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고 주장했다. 또 “하이브와 어도어는 한몸이나 마찬가지”라며 “하이브가 계약을 위반했기 때문에 전속계약을 해지하는 것이다. 가처분 소송(신청)을 할 이유가 없고 위약금을 낼 의무도 없다”고 말했다.
29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뉴진스가 전속계약 해지를 주장하는 근거는 이전 법원의 결정문과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월 하이브의 민희진 당시 어도어 대표 해임 추진을 중단시킨 법원의 가처분 인용문을 보면 “어도어와 뉴진스 구성원들 사이에 체결된 전속계약은 뉴진스의 연예 활동을 침해하거나 방해하는 경우 어도어가 필요한 조치를 취할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며 “어도어가 위 의무를 위반하는 경우 뉴진스 구성원들은 전속계약을 해지할 수도 있다”고 적혀있다.
그동안 뉴진스와 민 전 대표는 하이브로부터 뉴진스의 활동이 침해당하고 방해받았다고 주장해왔다. 어도어가 이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봤기 때문에 전속계약 해지를 통보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왜 전속계약 무효를 주장하는 가처분 등 법률적 대응을 하지 않는다고 한 것일까. 그동안 연예인과 소속사의 분쟁이 발생했을 경우 전속계약 무효 가처분 신청과 이에 대응하는 회사의 활동금지 가처분이 공식처럼 진행돼왔다. 회견장에서 많은 기자들이 “왜 가처분 신청 등을 안 하느냐”고 물은 이유다.
전문가들은 여기에 법률적 셈법이 깔려있다고 보고 있다. 판사 출신인 새올 법률사무소 이현곤 변호사는 페이스북에 “기자회견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오늘 자정을 기준으로 계약은 해지하되 소송은 하지 않겠다는 부분”이라며 “전례 없는 방법이다. 가처분 소송을 하면 결론이 날 때까지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송을 하지 않고 나가도 된다. 이렇게 되면 어도어에서 뉴진스를 상대로 소송을 해야 하고 뉴진스는 그걸 기다리면 된다”는 글을 올렸다. 먼저 소송을 내면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 활동에 제약을 받고 혹시 모를 패소의 위험까지 있는데 굳이 이를 감내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기업 법무실에서 근무하는 한 변호사도 “하이브 쪽에서 먼저 소송을 걸어오면 대응하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이브 쪽도 대응 방안을 놓고 고심 중이다. 우선 활동금지 가처분 신청을 고려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 되레 양쪽의 신뢰관계가 파탄 났다는 명분만 쌓을 수 있다는 위험이 있다. 늘벗 법률사무소의 정성호 변호사는 “뉴진스가 아무런 법률적 자문 없이 기자회견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만약 어도어가 활동금지 가처분 등을 걸어오면 회사로부터 피해를 보았다는 주장을 더욱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존재 노종언 대표변호사는 “활동금지 가처분 신청을 하려면 ‘탬퍼링’(계약기간 종료 전 사전 접촉)의 객관적인 징후가 있어야 하는데,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지금 상황에서 활동금지 가처분을 내도 인용되긴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결국 하이브가 위약금을 달라는 손해배상청구 소송으로 대응할 것이라는 게 법조계 시각이다. 노종언 변호사는 “귀책사유에 따라 위약금 액수가 달라진다. 하이브의 귀책이 설령 0으로 나올지라도, 액수가 너무 클 경우 재판부가 재량 감경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엔터테인먼트 소송 전문인 한 변호사도 “위약금을 청구한다 해도 다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뉴진스 쪽에서 (자신들이 피해를 입었다며) 위약금을 청구하는 맞소송을 할 수도 있다”며 “이번 사건처럼 양쪽 의견이 첨예하게 갈릴 경우 확정판결까지 최소 3년에서 길게 5년 이상 갈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뉴진스와 어도어는 이날 뉴진스가 보낸 내용증명에 대한 어도어의 회신을 공개했다. 이 회신에서 어도어는 “전속계약은 2029년 7월31일까지 유효하다”며 “내년 팬 미팅, 정규앨범 발매, 월드투어 등 계획을 수립했고, 새로운 프로듀서를 섭외 중”이라고 밝혔다. 또 하이브 음악산업리포트에서 드러난 “뉴 버리고 새로 판 짜면 될 일”이라는 문구에 대해서도 “아티스트를 버린다는 취지가 전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또 멤버들이 민 전 대표의 복귀를 요구한 것에 대해 “특정인 대표이사직 유지는 어도어 이사회의 경영 판단 영역”이라고 회신했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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