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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진스와 어도어 간의 전속계약은 29일 자정부터 해지될 것을 말씀드립니다."
데뷔와 동시에 인기 돌풍을 일으켰던 그룹 뉴진스의 '폭탄 발언'은 소속사 어도어는 물론 K팝 업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소속사와의 관계를 끝내기 위해 전속계약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하는 일반적인 방식이 아닌, 계약 위반의 책임을 전적으로 회사에 돌리며 해지를 일방적으로 통보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뉴진스 역시 기자회견에서 "저희와 같은 이런 케이스가 한 번도 없었다"고 인정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6월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제 7, 8조에 근거해 고시한 대중문화예술인 표준전속계약서에 따르면 계약 당사자가 계약 내용을 위반하는 경우 2주간 유예기간을 정해 시정을 요구할 수 있다. 해당 기간 내에 위반사항이 시정되지 않거나 시정될 수 없는 경우에는 계약을 해제 또는 해지할 수 있다. 뉴진스는 이를 근거로 어도어에 해지를 통보했다.
뉴진스는 "계약을 해지하면 효력이 없어지는 거라 우리 활동에는 장애가 없을 거다. 우리가 굳이 가처분을 낼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어도어와 하이브가 계약을 위반했기 때문"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잘잘못을 가리는 과정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표준전속계약서상 '해지' 조건 역시 '계약에서 정한 내용을 위반하는 경우'에 한하기 때문에 어도어가 어떠한 중대한 위반을 했는지 계약서를 토대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김주영 어도어 대표는 대화를 요청했지만, 뉴진스의 입장은 단호한 상태다. 이에 따라 어도어도 후속 조치에 나서야만 하는 처지에 놓였다.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소송이 불가피하다. 뉴진스는 어도어 소속의 유일한 아티스트라 이들이 이탈하면 사실상 '빈 껍데기'가 된다.
어도어뿐만 아니라 하이브(352820)에도 적잖은 타격이 예상된다. 어도어는 지난해 1103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하이브 산하 국내 레이블 가운데 방탄소년단이 소속된 빅히트뮤직(5523억원), 세븐틴이 속한 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3272억원)에 이은 3위 성적이자, 르세라핌 소속사인 쏘스뮤직(611억원)의 약 2배에 이르는 호성적이었다.
올해 역시 3분기까지 905억원의 높은 매출을 기록했다. 쏘스뮤직이 540억원, 아일릿·엔하이픈 두 팀이 소속된 빌리프랩이 1027억원의 매출을 달성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뉴진스는 하이브 산하 국내 레이블 중 '1등 걸그룹'임을 재차 입증했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에게 걸그룹 제작은 숙원이었다. 과거 글램으로 뼈아픈 실패를 맛본 그는 민희진을 영입해 하이브의 걸그룹 경쟁력을 강화하려 했다. 결과적으로 뉴진스는 큰 성공을 거두며 K팝 걸그룹의 핵심 축을 이루게 됐다.
하이브 역시 내부용 보고서에서 '뉴 버리고'라는 단어가 들어간 경위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미 큰 성공을 거둔 뉴진스와 매번 비교되는 카테고라이징", "음원 순위 등 비교 과정에서 르세라핌이 부정적인 피드백을 많이 받았다" 등의 해명을 하며 뉴진스의 영향력을 언급했다.
그러나 뉴진스가 '탈 어도어·탈 하이브'를 외치면서 핵심 IP(지식재산권)를 잃을 위기에 놓였다. 기자회견 다음 날도 뉴진스가 지속해서 계약 해지를 주장하면서 지난 29일 하이브 주가는 전일 대비 4.08% 하락한 19만5200원에 장을 마감했다. 엔터주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관세 정책'에서 벗어난 업종으로 주목받으며 좋은 흐름을 타던 와중에 주요 엔터 4사(하이브, JYP, SM, YG) 중 하이브만 하락 전환했다. 지난 15일부터 유지해 오던 20만원 선도 깨졌다.
어도어의 선택지로는 뉴진스에 대해 '방송 출연 및 연예 활동 금지' 가처분 및 위약금 소송을 제기하는 방식 등이 거론된다. 어떤 선택이든 자사 아티스트를 상대로 분쟁을 시작한다는 점에서 이미지 훼손을 피하기 어렵다. 이는 뉴진스도 마찬가지다. 한 업계 관계자는 "뉴진스 기자회견을 보고 안타까웠다"면서 "아이돌이 직접 분쟁 관련 의견을 개진하는 자리에 나왔다는 건 좋지 않은 선택으로 보인다"고 생각을 밝혔다.
특히 업계에서는 '계약 해지 통보'라는 방식에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해당 방식이 보편적으로 자리 잡게 되면 연예 매니지먼트 산업의 근간을 해칠 수 있다는 의견이다. 한 관계자는 "이런 선례는 남기면 안 된다. 만약 이 방식이 통한다면 어떤 아티스트가 회사에 남아있으려고 하겠나. 갈등이 생기면 소통보다는 계약 해지부터 생각할 수도 있는 일"이라고 걱정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전에 없던 상황이라 다들 '이게 실현 가능한 거냐'는 분위기다. 특히 엔터 업계에서 전속계약 관련한 건 아주 민감하게 다뤄지고, 최초의 사례가 또 다른 사례를 낳을 수 있는 구조라 예의주시하고 있다"면서 "아티스트가 계약 해지를 요구할 순 있다. 다만 계약 내용을 꼼꼼하게 따져서 합당한 범위 내에서 진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을 전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