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개념부터 정리해야 한다. 정우성 케이스는 혼외 자식의 문제가 아니다.
비혼 자식의 사례이다. 이 문제는 같은 것 같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다르다. 엄연한 성인들간의 데이트, 연애, 결혼과 비결혼 여부에 대한 합의, 그 결정, 후유증에 대한 독자적 판단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타인의 과도한 관심, 간섭, 개입의 틈이 그다지 크지 않다. 그래서 정우성 이슈는 대중의 관심에서 쉬이 사라질 공산이 크다.
다만 그의 막대한 재산, 향후 영화 제작이나 연출, 출연의 정도가 어떻게 될 것인가는 상당 기간 촉각을 모을 것이다.
예상하건대 정우성은 자신의 회사 ‘아티스트 컴퍼니’의 운영에 당분간 집중할 것이며(정우성은 이정재와 공동 오너이다. 직함은 이사이다.) 출연보다는 연출, 감독에 더 공을 들일 가능성이 높다.
결혼 여부는 각자 알아서 판단하되 양육의 책임은 여건과 형편에 따라 잘 합의해 진행하려 한다. 새로운 시대의 ‘비혼 자식 양육론’이다.
전통의 도덕률로는 이런저런 시비가 있을 수 있으나 신세대의 사회적 규범으로는 그다지 비난 받을 일까지는 아니다. 어쨌든 아이는 누군가의 자식으로 정체성을 부여받을 것이고 사랑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에 관해 국내 한 중견 영화감독의 SNS멘트가 눈에 띈다.
그는 ‘정우성 문가비 씨의 득남을 축하한다’며 ‘이를 계기로 우리도 외국처럼 결혼 이외의 관계에서 생긴 출산도 윤리적, 법적으로 인정하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썼다. 우리도 이제 그럴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