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출산 이슈化 반갑지만…'가십성 소비'는 씁쓸
비혼가정 배경, 지극히 개별적·다차원적…윤리적 비난 어려워
지난달 24일부터 카카오톡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세상에 단 하나의 뉴스만 존재하는 양 들썩이는 중이다. 영화배우 정우성씨의 '비혼(非婚) 출산' 얘기다.
연예인들의 내밀한 사생활을 기막히게 포착하기로 이름난 연예매체의 단독보도 이후 모든 언론은 올 3월 정씨의 아들을 출산한 모델 문가비씨와 정씨 관련 온갖 억측을 포함한 뉴스를 쏟아내고 있다.
'상남자' 또는 '위선자'. 정우성씨를 향한 양극단의 평가마저도 그가 얼마나 영향력 있는 톱스타인지를 역으로 증명한다.
저출생 문제를 취재해온 기자로서 '비혼 출산'이 이토록 장안의 화제가 된 적이 있었는지를 돌아보면 딱히 맞먹을 사례가 떠오르지 않는다.
사생활 들추기에 골몰하는 '옐로 저널리즘'과 유엔(UN) 난민기구 친선대사 이력까지 엮은 도덕 심판은 꼴사납지만, 우리는 생산자와 수용자가 판단한 '뉴스 중요도'가 모처럼 정확히 일치한 경우를 목도하는 중이다.
'셀럽(celebrity)'의 위력을 실감하는 한편, 씁쓸한 마음이 고개를 드는 것은 이 이슈가 단순히 가십성으로 휘발되지 않길 바라는 소망 때문이다.
성별을 떠나 결혼에 대한 주체적 선택의 의미를 강조한 '비혼'이란 말이 널리 쓰이게 된 것은 사실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그간 '결혼'이란 울타리 밖의 아이가 속한 가정은 오랫동안 '미(未)혼모', '편(偏)부모' 등의 단어로 표현돼왔다.
기혼 부부에게서 태어난 자녀가 양친 슬하에 자라는 것을 표준으로 간주해온 이른바 '정상가족' 담론의 편린이다.
유교문화가 뿌리 깊은 한국에서 그만큼 결혼은 출산의 당연한 전제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최근 청년층을 중심으로 이 공고한 등식에도 금이 가고 있다.
정우성씨가 문가비씨와 결혼을 맘먹지 않은 것이 누군가에게 '아쉬운' 선택일 수는 있어도 윤리적으로 비난받을 일이라 보긴 어려운 이유기도 하다.
처자식이 없는 유명인이 마찬가지로 싱글인 상대와 합의 하 맺은 관계로 생긴 아들에 대해 "아버지로서 책임은 끝까지 다할 것"이라고 공언했다면 더욱 그렇지 않을까.
비혼 출산이 연간 출생아의 약 5%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인 한국이 아니었다면 보기 힘든 연말 시상식 풍경이었을지 모른다.
여기서 더 선을 넘은 훈수는 시대착오적 월권이다.
'혼외자'란 단어가 주는 축축한 어감과 텁텁한 뒷맛에는 '치정극 아니면 신파'였던 숱한 한국형 서사의 그림자가 어려 있다.
정우성씨의 책임 이행보다 세간의 관심이 쏠려야 할 곳은 "모든 생명이 차별 없이 건강하게, 행복하게 자랄 수 있도록 어떤 면을 지원할 수 있을지 더 살펴보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약속이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79/0003964572?sid=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