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배우가 원톱으로 사극을 이끌어가는 규모 큰 사극은 거의 '씨가 마른' 수준이었고, 때문에 '옥씨부인전'은 그 탄생부터가 특별한 작품이다. 제목부터 여성향 짙게 풍기는 이 작품은 훗날 '옥씨부인'이 되는 임지연의 '원우먼쇼'로 완성되는 사극이다. 드라마는 첫 주 방송부터 임지연에게 수많은 사연을 밀어 넣어 풍요로운 서사를 보여준다. 1, 2회에서 그는 고약한 대갓집의 재주 많은 노비였다가, 살기 위해 도망쳐나온 도노가 되고, 천운으로 양반가의 아씨가 된다. 그렇게 임지연은 몸종 구덕이에서 대갓집 아씨 옥태령이 되는 과정을 단 두 편 만에 아주 흥미롭게 그려낸다.
구덕이의 '신분 역전'이 줄기처럼도 보이는 이 작품은, 곳곳에 신분제의 패악을 신랄하게 움켜쥐면서 '인간의 짱귀'를 성찰하게도 한다. 구덕이의 부모도 노비였고, 병에 걸린 그 어미는 산 채로 땅에 묻혔다. 어린 구덕이가 제 어미를 살려달라 울부짖자, 그의 주인아씨는 "네(너희)가 랑 다른 게 뭔데?"라고 말한다. 구덕이가 아씨가 됐을 때도, 그가 아끼던 몸종 백이(윤서아)가 대갓집 도령 눈에 들었다는 이유로 나무에 목이 매달려 죽는다. '옥씨부인전'은 같은 인간이지만 누구는 귀하고 누구는 짐승보다도 못한 처지를 완벽한 대조로 보여준다.
앞으로 구덕이가 나아가는 길은 바로 여기에 있다. 자신을 대신해 죽었고 그 이름을 대신하여 살게 된, 진짜 옥태령(손나은)이 가졌던 사상의 실천이다. 둘의 인연은 구덕이가 일을 하던 주막에 옥태령이 잠시 머물게 되면서 시작됐다. 옥태령은 보통의 양반가 아씨들과는 달랐고, 제 또래인 구덕이 주위를 맴돌며 친해지기 위해 애썼다. 옥태령은 자신의 친절을 불편해하는 구덕이에게 "난 가졌기 때문에 우월한 것이 아니라 가졌기 때문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해. 난 아무 노력 없이 많은 걸 가졌으니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 이치에 맞다"라는 말을 한다. 옥태령은 구덕이를 구하며 죽는 것으로 자신의 말을 행동으로 오롯하게 껴안았다.
그렇게 '옥씨부인전'의 카메라는 신분이 천한 자들에게로 분산됐고, 덕분에 이 작품은 80분 내내 백성의 뼈저린 얼굴로 클라이맥스를 친다. 카메라는 신분 낮은 자들이 산채로 땅에 묻히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멍석말이를 당하고, 얼굴에 인두가 지져지고, 나무에 목이 매달리는 처지를 처참하게 표현한다. 그것을 주인공인 임지연도 몸소 겪게 하고, 그의 온갖 주변 인물에게도 투영하면서 그 참담함 정서를 집요하게 가져간다. 그 때문에 노비에게 또 다시 매를 드는 양반에게 "멈춰라. 나는 내가 지켜야 할 사람을 지킬 것이다"라고 한 아씨 임지연의 단 두 마디가 보는 이를 전율하게 한 이유다.
'옥씨부인전'은 작품 속에 주인공의 매력적인 캐릭터성은 물론, 시대관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신분제에 대한 윤리적 고찰도 담았다. 그래서 아직 초반임에도, '옥씨부인전'의 시청률이나 이 작품에 쏠리는 관심은 오랜만에 잘 만든 사극이 등장했다는 것만으로 커다란 기대감을 쏟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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