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묘의 케이팝 내비]
4월부터 시작된 하이브-어도어와 뉴진스 간 분쟁이 지속되고 있다.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도 없지는 않지만, 적어도 관심층에게는 첨예한 이슈로서 ‘신선함’이 유지되고 있는 편이다. 이 분쟁이 계속해서 새로운 논점과 국면을 일으키며 기존에 상정하지 못했던 분야로 뻗어나가고 있는 데도 그 이유가 있다. 하이브와 산하 레이블 어도어 간 분쟁에서 시작돼 8월 민희전 전 대표가 어도어에서 해임된 이후에는 하이브-어도어와 민희진-뉴진스로 ‘전선’이 새롭게 그어졌다. 경영권 분쟁 국면에서 엔터사의 경영윤리 문제로 ‘역바이럴’ 논란, 직장 내 괴롭힘과 K팝 아티스트의 근로자 지위 여부로 사안과 관건이 시시각각 달라지고 있다. 하이브의 상장 과정 의혹과 뉴진스의 전속계약 해지 통보로 사태는 또 한 번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대립되는 K팝 아티스트의 주체성 문제
이처럼 일이 커지는 데는 사안의 특수성이 작용한다. 2022년 데뷔 이래 독보적 성과를 거둔 뉴진스와 K팝 산업 최대 규모 기업 하이브 간 갈등이다. 이들의 향방에 이목이 쏠리는 것도 당연하다. 또한 이들의 빛나는 현재를 쌓아올린 배경에 기대보다 시시하거나 지저분한 이면이 있음을 엿보게 되는 지점들이 자리하기에 더 충격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K팝 산업의 오랜 숙제를 건드리는 부분도 있다. 아티스트의 활동 지원 문제는 사실 그 자체로 새롭지만은 않다. K팝 팬덤이라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기획사에 적대적 감정을 쌓아두고 있는데, 그중 가장 표면화되는 사안이 바로 아티스트가 재능을 발휘하도록 충분히 지원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회사마다 기대치에 차이가 있는 것도 자연스럽기는 하지만, 여느 기획사와 아티스트의 관계에서도 매우 흔히 발견되는 쟁점이다. 다만 뉴진스 측 주장은 한계에서 비롯된 미진이 아닌, 적극적 방해 행위에 가까웠다는 것이 요지라서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의견은 크게 갈릴 만하다.
반면 아티스트의 창조적 작업과 자본의 갈등이라는 측면은 이 분쟁을 좀 더 근원적 부분으로 끌고 간다. K팝 아티스트의 주체성 문제다. 하이브 측은 뉴진스의 기획과 운영을 사업 조직 관점에서 접근하는 모양새고, 뉴진스 측은 ‘팀’ 차원으로 호소하는 경향이 있다. 함께 작업해온 기획자, 뮤직비디오 감독 등의 분리에 저항한다는 측면이다. 이는 대중음악 세계에서 고전적 문제인 레이블과 아티스트 간 갈등과 매우 유사한 맥락에 편입된다. 아티스트가 창작 활동을 위해 내리는 자율적인 결정들이 이를 사업적으로 관할하는 레이블의 의견과 상충하는 경우들 말이다. 다만 경영자이자 기획자였기에 고전적으로는 ‘사측’에 해당할 민희진 전 대표가 뉴진스와 한 ‘팀’으로 묶여 있다는 점이 흥미로운 차이가 된다. 그럼에도 이번 사안은 이 같은 측면 때문에 K팝 산업에 오래도록 드리워진 비판점 혹은 곡해, 즉 “아티스트는 기획사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시선과 맞물리게 된다.
양측으로 갈라진 여론은 서로 상대방이 저열한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고 주장하곤 한다. 현 국면 역시 누군가의 절묘한 프레이밍이라고 생각하는 이도 있겠다. 그러나 중요한 건 세계가 주목하는 하이브와 뉴진스의 갈등이 K팝 산업 자체에 영향을 미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점이다. ‘키워놨더니 도망치는’ 통칭 ‘템퍼링(tempering)’ 정도 수준에서 논의가 마무리되기는 이미 어려워 보인다. 어느 한쪽을 악마화하거나 ‘생떼’라고 폄하하는 것은 더욱더 무의미해질 듯하다.
미묘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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