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경의 사이렌》
이민경 텐아시아 기자가 급속도로 발전하는 연예 산업에 사이렌을 울리겠습니다. 보이지 않는 문제를 지적하고, 연예계를 둘러싼 위협과 변화를 알리겠습니다.
걸그룹 VCHA(비춰)의 미국 국적 멤버 KG가 소속사의 학대 문제를 주장하자 업계에서는 개인적 입장을 시스템 문제로 확대해선 안된다는 경계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K팝 산업의 일반적인 문제인 것처럼 규정하기엔, 폭로 내용이 주관적이고 구체적이지 못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결국 VCHA가 흥행에 실패하면서 벌어지는 후폭풍 아니겠냐는 평가마저 따른다.
KG는 최근 자신의 SNS에 "특정 스태프들로부터 학대를 겪었다"고 주장하며 JYP엔터테인먼트와의 전속계약 해지 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그는 근거로 크게 세 가지를 제시했다. ▲섭식 장애를 유발하는 환경, ▲막대한 부채로 인한 급여 부족, 그리고 ▲강도 높은 업무와 사생활 제약이다.
만 17세인 KG를 포함해 VCHA 멤버 전원 10대라는 점에서 소속사 차원으로 멤버들의 섭식을 제한했다면 이는 지적할 만한 인권 침해 문제다. 그러나 JYP엔터테인먼트는 박진영 PD의 지시 아래 체중 감량을 강요하지 않는 대표적인 엔터사로 알려져 있다. 다수의 가요계 관계자들 역시 "다이어트를 강요할 수 없는 세상이다. 대형 엔터일수록 인권 보호를 위해 지양한다. 화면 속 자기 모습을 본 멤버 스스로 식단을 조절하는 게 일반적이다"라고 증언했다.
자발적 체중 조절의 어려움을 '사회적 문제'라고 볼 수는 없는 데다, K팝 산업만의 현상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체중 조절은 아름다움 혹은 육체 능력을 중시하는 모든 산업 종사자가 겪는 일이다. 이들 직업에 따른 책무를 원활히 수행하기 위한 노력이란 거다. 힘찬 도약을 위해 체중을 조절해야 하는 무용수를 비롯한 육상 선수, 작품마다 몸무게를 고무줄처럼 조절하는 배우의 노력과 다를 바 없다.
'막대한 빚'도 수익을 위해 필요한 과정이다. K팝도 영리사업이다. 모든 사업은 투자를 바탕으로 수익을 끌어낸다. 수익 전에 부채가 먼저 쌓이는 게 당연하다는 의미다. KG가 말하는 막대한 부채는 연습생 육성을 위해 소속사에서 지불해온 금액이다. 연습생들은 수년간 돈을 내지 않고 소속사를 통해 보컬과 댄스 수업을 받는다. 이 비용을 소속사가 먼저 회수한 뒤 아티스트에게 정산금을 지급하는 건 당연한 이치다. 해외에서도 음반 제작 비용을 먼저 투자한 뒤, 아티스트에게 비용을 뺀 나머지 수익을 계산해 준다. 연습생 시스템이 없어 부채의 규모가 K팝 아이돌에 비해 크지 않을 뿐이다. 만약 수익이 나지 않을 경우 이를 연습생 개인에게 청구하는 것도 아니다. 회사도 나름의 투자를 하고 리스크를 떠안는 구조다.
강도 높은 업무와 사생활 제약은 각각 나눠서 볼 필요가 있다. 강도 높은 업무는 국내외 아티스트 할 것 없이 아티스트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다. 이들을 찾는 팬이 많고 그들로부터 수익을 얻으려는 기업과 방송사가 많기 때문이다. 모두가 그리한다 하여 이 선택지가 윤리적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K팝의 이름을 붙여 해당 산업 자체를 깎아내릴 근거는 될 수 없을 것이다.
KG가 내세운 주장 중 가장 논리적인 주장은 '사생활 제약' 부분이다. 사생활을 침해당한다는 점은 국내외 아티스트 모두가 겪는 고충이다. 하지만, 유사 연애 감정을 기반으로 팬덤을 모으기 때문에 아이돌의 연애가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은 해외 시장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K팝 산업의 문제가 맞다.
만약 KG가 학대를 주장하고 싶었다면, 지금까지 밝힌 내용보다 더 상세한 학대 정황을 담아 입장문을 작성했어야 했다. 지금까지 KG가 내세운 주장에는 '학대'임을 뒷받침하는 논리가 부족하다. 사생활 제약을 제외하곤 그저 아티스트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 부담스럽다는 개인적 호소에 불과하다.
모든 산업은 대중 수요에 발맞춰 발전한다. 지금까지 K팝 시스템은 국내 수요뿐만 아니라 글로벌 수요를 모두 만족시켜왔다. 전 세계가 추구하는 미적 기준에 가까워지기 위해 K팝 구성원들은 자발적으로 체중을 조절한다. 또, 잘 짜인 그룹 및 이들 세계관이 전 세계 수요에 부합하니 연습생 시스템을 통해 멤버를 꾸리는 일은 이제 필수다. 산업의 지속과 발전을 위해 자발적으로 노력하는 이들의 노력마저 'K팝 산업에 깊이 자리 잡은 문제'로 평가절하해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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