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최고의 순간은 그때였다. 작년 4월 미국 국빈 방문 백악관 만찬에서 돈 매클레인의 1971년 노래 ‘아메리칸 파이’를 불렀을 때다.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한 만찬 참석자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환호를 쏟아냈다. 당시 영상을 찾아보니 윤 대통령은 1분 정도 일곱 소절을 불렀다. 아직 남아 있는 댓글엔 호평투성이다. ‘바이든 감동받는 모습에 나도 덩달아 오우 하면서 입 모양 따라 하게 되네’ ‘두 나라의 동맹을 외교 무대에서 이렇게 매력적으로 보여주다니 너무 멋지다’ ‘이건 한국사에 있어 레전드로 남을 일이다’ ‘역시 미국인들 정서를 움직이는 것은 음악과 스포츠라는 말이 맞네’.
미국과 미국인이 진심으로 감동했다. 조시 고트하이머 하원 의원은 “아메리칸 파이는 미국 국가나 다름없는 노래다. 미국인이라면 듣는 순간 뭉클한 향수를 느낀다. 윤 대통령이 첫 소절을 부를 때 한국이 가까운 친구처럼 다가왔다”고 했다. 미국만 아니다. 세계가 반응했다. 두 달 후 백악관을 국빈 방문한 인도 모디 총리는 윤 대통령이 부른 노래를 의식했다. 만찬 건배사를 하면서 “노래에 재능이 있었다면 여러분 모두 앞에서 노래를 불렀을 것”이라고 웃음을 유도했다. 7개월 후 윤 대통령의 영국 국빈 방문 때도 힘을 발휘했다. 윤 대통령은 셰익스피어를 인용하며 15분간 연설했고, 영국 상·하원 의원은 모두 일어나 30초간 박수를 보냈다. 영국 상원 의장은 “오늘은 노래를 못 들어 아쉽다”고 했다.
‘소프트 파워’는 힘이 세다. 윤 대통령도 최근까지 잘 알고 있었다. 올해 초 문화 예술인 신년 인사회에서 백악관 만찬을 언급하며 “문화의 힘이 외교에서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깨닫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멋지고 우아한 문화의 힘은 사람들을 미소짓고 춤추게 한다. 아메리칸 파이 노래 가사도 그렇게 말한다. ‘아주 오래 오래전을 나는 지금도 기억해요/ 그 음악이 나를 얼마나 미소짓게 했는지/ 그리고 알았죠, 노래할 기회가 있다면 사람들을 춤추게 할 수 있다는 걸’.
엊그제 대통령 탄핵안은 의결정족수 부족으로 폐기됐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정치적 생명은 3일 밤 비상계엄 선포라는 벌거벗은 힘을 택했을 때 이미 끝났다고 생각한다. 그가 부른 아메리칸 파이의 마지막 구절처럼 ‘음악이 죽은 날(The day the music died)’ 이후에도 정상적으로 직책을 수행하기는 어렵다. 윤 대통령이 문화의 힘을 믿고 전국을 돌며 대국민 토크 콘서트를 열면서 ‘절박한 심정’을 토로했다면 어땠을까.
문학은 닭 잡을 힘도 없지만 때로 현실보다 더 현실을 드러내는 힘이 있다. 올해 동인문학상 수상자인 김기태 작가는 소설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에서 지금 상황을 예비한 듯한 문장을 적었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어떤 실수는 바로잡을 수 없을 뿐이다.’(단편 ‘팍스 아토미카’, 272쪽)
이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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