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계엄 사태가 한·미 동맹의 이상 기류로 이어지는 조짐이 포착되는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폐기 뒤 정부여당이 내놓은 이른바 ‘한덕수-한동훈 공동국정운영 체제’에 대해 미 측이 “헌법에 부합한다고 생각하나?”는 취지의 질문을 제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 측은 사전에 공유받지 못한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에 “심각한 우려”를 표했는데, 이후 과정에서도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고 있는 셈이다.
9일 관련 사정에 밝은 복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전날 저녁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 대사를 접견해 오전 발표된 ‘한-한 체제’ 등에 대해 설명했다. 조 장관과 골드버그 대사는 계엄 사태 직후인 지난 5일에도 만났는데, 사흘 만에 두 번째로 만난 건 정부여당의 이런 대응 방침에 대해 설명하는 게 주된 이유였을 가능성이 크다.
한 소식통은 “설명을 들은 골드버그 대사는 이에 대해 ‘(그런 체제가)한국 헌법에 부합한 조치인가’ 등을 따져 물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또다른 소식통은 “정치권이나 언론 등에서 제기되는 논란이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의견 교환이 이뤄졌다고 보는 게 자연스러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한-한 체제’에 대해 야권은 헌법 위반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대통령이 유고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잠시 2선 후퇴시키고 그 권한을 총리와 여당 대표가 행사하겠다는 해괴망측한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미 국무부도 중앙일보의 질의에 8일(현지시간) “미국은 국회의 처리 결과 및 추가 조치와 관련된 논의에 주목하고 있다”며 “우리는 헌법에 따라 한국의 민주적 제도와 절차가 완전하고 적절하게 작동할 것을 계속 촉구한다”고 답했다.
전날 윤석열 탄핵안이 여당 의원들의 집단 보이콧에 따른 투표 불성립으로 정기국회에서 폐기된 데 대해서도 국무부는 같은 입장을 내놨다.
특히 타국의 국내 정치 상황에 대해서는 언급 자체를 삼가는 게 외교적 관례라는 점에서 미국의 반응은 주목할 만 하다.
미국이 이처럼 일련의 상황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이번 계엄이 민주주의의 가치를 위협하는 시도였다는 인식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군을 실제로 움직인 윤 대통령의 독단적 결정이 한·미 연합 방위태세에 미칠 수 있는 악영향을 미국은 더 심각하게 본 것이라고 한 소식통은 설명했다.
그는 “계엄을 빌미로 북한의 도발이나 중국의 공세적 위협이 이뤄졌다면, 이는 당장 주한미군에 대한 위협 증강 요소가 될 수 있다”며 “미국으로선 주한미군 및 가족과 한국 체류 자국민의 생명, 안전에 직결되는 사안인 셈인데, 이를 결정하며 한국이 일언반구 언질도 없었다는 점을 엄중하게 보는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 계엄 선포 전후로 한국을 대하는 미국의 태도는 온도 차가 크다고 관련 소식통들은 전했다. 트럼프 2기를 본격적으로 대비해야 하는 시점에 오히려 외교 자산이 손상돼 타격을 입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