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경의 사이렌》
이민경 텐아시아 기자가 급속도로 발전하는 연예 산업에 사이렌을 울리겠습니다. 보이지 않는 문제를 지적하고, 연예계를 둘러싼 위협과 변화를 알리겠습니다.
그룹 뉴진스를 시작으로 가수 은가은, 그룹 VCHA의 미국 국적 멤버 KG까지 열흘 남짓한 시간 동안 전속계약 해지 선언만 세 차례 이뤄졌다. 업계에선 아티스트의 입장과는 별개로 전속계약 '해지 통보' 사례가 늘어날수록 K팝뿐만 아니라 국내 엔터 업계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전속계약에 대한 인식이 가벼워질수록 계약의 근간이 되는 아티스트-소속사 간 신뢰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뉴진스는 전속계약 해지 소송을 걸지 않고도 계약 해지를 주장하면 그 주장이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잘못된 선례를 남겼다. 이를 본 은가은과 KG는 뉴진스가 그 전 내용증명을 보내고 답신을 기다리는 등 보였던 노력마저 생략한 채, 전속계약 해지를 주장하기에 나섰다.
그렇게 아티스트가 소속사에 불만이 있다면 언제든 전속계약 해지를 통보해도 된다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했다. 각자의 억울함이 담긴 주장과는 별개로, 업계 관계자들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전속계약'이라는 신뢰 관계는 그동안 K팝의 성장 동력으로 작용해왔다. 업계에서는 신인 기준 7년의 전속계약을 맺고 그룹의 성장을 꾀한다. 단기간 성공 여부를 지켜보기 보다 장기간 지켜보며 투자하고 더 큰 이익을 거두려는 의도다. 보통 1~2년 차에 국내 인지도를 쌓아나가고 3~4년 차에 해외 진출을 본격화하면서 이후 7년 차까지 글로벌 인기를 탄탄히 쌓아 올린다.
이미 국내서는 '마의 7년'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재계약 불발 리스크가 높다. 솔로 활동 방향성 차이, 멤버 간 이해관계 차이 등으로 인해 그룹 활동을 7년 이상 지속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실제로 그룹 블랙핑크, 마마무 등 고년차 그룹 중 상당수는 그룹 활동 외 솔로 활동을 각기 다른 소속사에서 진행하고 있다. 솔로 활동이 바빠지면서 이들 그룹 활동은 자연히 줄어들었고 팬들의 아쉬움은 커졌다.
이제는 주어진 7년마저도 불안해졌다. 복수의 업계 관계자들은 이는 K팝뿐만 아니라 엔터 전체의 근간을 뒤흔들 위기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배우, 크리에이터 등 모든 대인관계 및 계약을 기반으로 하는 엔터 산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바라봤다. 계약의 근거인 '신뢰'가 형성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이대로는 K-엔터에 투자하는 투자자가 크게 줄어들 것이란 지적도 있었다. 수익이 지속되지 않는 산업에 투자할 요인이 없다는 게 이들 설명이다.
물론, 아티스트와 소속사 모두를 만족시키는 전속계약 사례를 찾아보기란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이해관계가 그만큼 다 다르기 때문이다. 만일 아티스트가 소속사에 대한 신뢰를 잃어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면 전속계약 해지를 선언하기 전에 적절한 법적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로 투자 위축 뿐 아니라 전속계약이 더 복잡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대형 기획사에서 자본을 집중적으로 투입, 육성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결국 엔터사들은 투자에 보수적으로 변할 수 밖에 없다. 중소형 엔터사들은 더 리스크가 커졌다. 전속계약서가 더 두꺼워질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결국 피해를 입는 건 K팝 아티스트를 꿈꾸는 후배들이 될 수 밖에 없다.
이민경 텐아시아 기자(2min_ror@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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