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가 회사를 떠났다. 하이브와 공개적으로 공방을 벌인 지 7개월 만의 일이다. 그가 기획한 그룹 뉴진스의 행보도 주목받고 있다.
아이돌 그룹 뉴진스의 기획자인 민희진 전 어도어(ADOR) 대표가 사내이사에서 사임했다. 2019년 빅히트 엔터테인먼트(현 하이브, 어도어의 모회사)로 이적한 지 5년 4개월 만이다. 민 전 대표와 하이브는 지난 7개월간 경영권 다툼 등 여러 주제로 공방을 벌여왔다. 언론 기사는 엇갈렸고 여론전은 더욱 거셌다. 양측 주장의 주요 사실관계는 재판정에서 가려질 예정이다. 뉴진스 멤버들은 어도어와의 전속 계약 해지를 주장했다. 일견 진흙탕 싸움처럼 비친 이 문제는 케이팝 산업 전반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우선 민 전 대표의 이탈 자체는 예정된 일이라는 평가가 많다. 지난 4월 하이브가 ‘민희진 대표의 경영권 찬탈 시도’를 주장하고, 4월25일 민희진 대표가 기자회견으로 반박한 데서 사건은 시작됐다. 5월31일 어도어 이사회는 ‘민 전 대표 측 이사’ 2명을 해임하고, 하이브가 추천한 인사 3명을 새 이사로 선임한다. 이 시점부터 이사회는 민희진 대표와 하이브 추천 인사 1대 3으로 구성되었다. 민 대표의 사내 결정권은 일찌감치 박탈당했고, 8월27일 어도어는 이사회를 열어 민희진 대표 대신 김주영 대표를 새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사실상 해임이다.
법을 통해 복귀할 길도 막혔다. 민희진 전 대표는 지난 10월30일 이사회에 자신의 어도어 대표이사 재선임을 안건으로 올리고, 법원에 재선임 가처분 신청 소송을 제기했다. ‘2026년 11월까지 임기를 보장한다’는 하이브와의 계약에 따라, 자신이 어도어 대표이사 직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이브가 필요한 조치를 다 해야 한다는 게 민 전 대표 주장이었다. ‘필요한 조치’에는 어도어 이사들이 민 전 대표 재선임에 찬성하도록 지시하는 것도 포함된다. 10월29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김상훈 수석부장판사)는 ‘소의 실익이 없다’며 이를 각하했다. 법원이 하이브에 ‘민희진 재선임에 찬성표를 던지라’고 지시하도록 책임을 물리더라도, 이사들에게는 그 지시에 따를 법적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법원은 또한 이사에게 특정 행위를 하도록 만드는 계약 자체가, 상법 기본 원리에 반한다는 논란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 점은 가처분 소송으로 판단하기 어렵기에 “그 유효성을 전제로 (하이브에) 이행을 명하는 데 신중할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다.
뉴진스 멤버들은 11월28일 기자회견을 열어 “11월29일 0시부터 어도어와의 전속계약을 해지하겠다”라고 말했다. 11월13일 이들은 어도어에 내용증명을 보내 2주 내에 계약 위반 사항을 시정해줄 것을 요구했다. 기자회견에서 멤버들은 “(어도어 측에서) 면피식 답변만 받았다. 최소한의 대화 의지도 보이지 않았다”라고 주장했다. 이 국면 초기부터 뉴진스 멤버들은 SNS, 유튜브 방송 등을 통해 민희진 전 대표를 지지한다고 밝히며, 그의 복귀를 요구했다. 감정적 이유에서만은 아니다. 9월11일 방송에서 뉴진스 멤버 다니엘은 민 전 대표가 “음악을 프로듀싱할 뿐만 아니라 뉴진스를 만들어준 사람이다. (중략) 그는 뉴진스의 정체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대체 불가능한 존재”라고 말했다. 멤버들은 또한 회사 내에서 사실상 ‘따돌림’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하니는 “(하이브) 건물에서 다른 그룹 멤버와 인사를 했는데, 그쪽 매니저가 그 멤버에게 ‘(하니를) 무시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10월15일 국정감사에도 출석해 같은 주장을 했다.업계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아는 민 전 대표가 이런 수사를 ‘전략적’으로 이용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의 말에는 나름의 힘이 실렸다. “케이팝에 관심 있는 이들은 뉴진스가 어떻게 대중에게 판매되는지를 안다. 무리하게 음반을 팔지도 않고, 응모 제한 없는 유료 팬 사인회도 없다. 이런 일종의 문화적 현상을 민희진 전 대표가 기획했다.” ‘진정성’과 ‘마케팅’의 결합을 전례 없이 성공시킨 이력 덕에 분쟁 상황에서 설득력을 얻었다는 것이다. 이는 가수를 ‘상품’으로 다루는 듯한 하이브의 음악산업 리포트와 대조되기 쉽다.
다만 민희진 전 대표가 ‘골리앗에 맞서는 다윗’이고 그의 싸움이 ‘대의를 위한 투쟁’인지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다윗’이라기에는 민 전 대표가 이미 업계에서 너무 독보적 입지를 다진 인물이라는 시각도 있다. 한 전직 엔터테인먼트업계 관계자는 거친 말과 선정적 자료가 오가는 데 비해 핵심이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민희진 전 대표를 ‘기득권과 싸우는 투사’라고 보지 않는다. 어쨌든 어도어는 하이브의 계열사였고, (경영권과 관련된) 이런 정황이 밝혀지면 조치를 가하는 게 부자연스럽지 않다. 현재 드러난 건 주고받은 공방뿐이고 사실관계는 법정에서 가려질 일이다.”
11월28일 기자회견에서 뉴진스 멤버들은 가능하면 뉴진스라는 이름을 계속 쓰고, 민희진 전 대표와 다시 함께 하고 싶다고 밝혔다. 또한 어도어 측이 먼저 계약을 위반했기 때문에 위약금을 낼 필요도 없고, ‘자동으로’ 계약이 해지된다는 취지로 발언했다(다만 “법적 문제는 향후 변호인을 통해 따로 밝히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어도어가 권리를 포기할 가능성은 그리 많지 않다. 7개월간 지속된 이번 사태는 뉴진스와 어도어 사이 ‘2차전’으로 확산될 여지가 있다.
이상원 기자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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