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영화상 수상 후 스포츠조선과 인터뷰를 가진 황정민은 "청룡영화상 이후 아주 잘 쉬고 있다. 주변에서 축하도 많이 받았다. 기억에 남는 축하로는 동료 이종혁이 '이제 상 받는 거 지겹지 않아?'라며 농담 반 축하를 건네주더라. 상은 아무리 받아도 안 지겹다"며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요즘 금주 중이기도 했고 다들 바쁘기도 해서 시상식이 끝나고 '서울의 봄' 뒤풀이를 따로 하지 못했다. 물론 '서울의 봄' 촬영 때부터 개봉을 마무리하기까지 원 없이 뒤풀이했다. 예전에는 청룡영화상 끝나고 후보들 모두 모여서 뒤풀이를 할 때도 있었다. 안성기 선배를 필두로 부문, 수상 여부 상관없이 모두 모여 연말 송년회를 했다. 그때는 현빈이 막내였는데, 선·후배가 모두 모여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하면서 한 해를 마무리했던 기억도 나더라"고 곱씹었다.
누구도 이견 없었던 완벽한 청룡의 남우주연상이었던 황정민은 수상 소감도 특별했다. 수상 당시 "상 받으면 울지 않으려고 하는데 이것 참 미치겠네"라며 눈시울을 적셨고 이내 "연기를 시작하는, 사랑하는, 배우로 활동하는 모든 분 다 주연상감이니까 열심히 끝까지 놓치지 말고 하셨으면 좋겠다"고 진심을 전했다.
이와 관련해 황정민은 "수상 소감 때도 말했지만 사실 청룡영화상은 내게 정말 먼 나라 이야기였다. 아내에게 '내가 이런 시상식에서 상을 받을 수 있을까?' 말하기도 했는데 그 말은 또 '앞으로 내가 계속 영화를 할 수 있을까?'라는 말이기도 했다. 이번 청룡영화상 무대 위에 오르면서 많은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치더라. 그나마 내가 영화를 시작했을 때는 한국 영화가 부흥기였다. 작품도 많았고 배우들도 많은 기회가 주어졌다. 그런데 코로나19 이후 작품이 줄면서 배우들도 기회가 많이 줄어들었다. 나처럼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인 중견급 배우들이야 괜찮지만 이제 막 연기를 시작하려는 배우들은 정말 힘들 것이다. OTT 플랫폼까지 커지면서 영화를 위한 배우들의 설 자리가 더 많이 줄었다. 청룡영화상을 사랑하는, 또 한국 영화를 사랑하는 배우로서 걱정이 많다. 그래서 시상식에서 그런 수상 소감을 한 것이다. 한국 영화를 사랑하는 배우들이 포기하지 말고, 연기를 놓지 말고 잘 쥐고 갔으면 싶다. '나도 버텼으니 여러분도 충분히 할 수 있다'라는 말을 꼭 해주고 싶었다"고 의미를 더했다.
황정민은 "지금까지 청룡영화상에서 세 번의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곱씹어보면 처음 남우주연상을 받았을 때가 가장 행복했던 것 같다. 내 인생의 첫 남우주연상이었고 '내가 자격이 되는 것일까?'라는 고민도 많았다. 한편으로는 '이제 나도 영화를 편하게 임할 수 있겠다'라는 든든함도 생겼다. 연기 검증을 받은 것 같았다. 그래서 내겐 첫 번째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이 가장 큰 의미가 됐다. 두 번째는 '신세계' 때였다. '신세계' 정청 역할이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다. 나 역시 너무 좋아했던 캐릭터였고 애정도 많았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범죄 장르 영화라는 허들이 있으니까 수상은 생각도 못 했다. 그래서 '신세계' 정청으로 청룡 남우주연상을 받았을 때 스스로도 많이 놀랐다"고 밝혔다.
이어 "세 번째는 '서울의 봄' 전두광이다. 솔직히 이번만큼은 꼭 상을 받고 싶었다. '서울의 봄'의 전두광을 선택했을 당시 깊은 고민이 있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역할은 아니었다. 이 역할을 선택했다가 정치적으로 공격을 받을 수 있을 것이란 두려움도 있었다. 그럼에도 용기를 냈다. 내가 용기를 가지고 '서울의 봄'을 선택했고 연기를 잘했을 때 꼭 한 번 인정을 받고, 포상을 받고 싶었다. 이번 청룡 남우주연상은 그런 바람과 맞물려 정말 큰 힘이 됐다. 조만간 청룡영화상 조연상도 꼭 한 번 도전해 보고 싶다. 그랜드 슬램 기록을 가질 수 있게 노력해 보겠다"고 웃었다.
관객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서울의 봄'이었고 호평받은 전두광의 연기였지만 사실 '서울의 봄'을 선택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다. 황정민은 "'서울의 봄'을 선택했을 때는 극장가 상황이 정말 좋지 않았다. 개봉하더라도 손익분기점을 못 맞추는 영화가 허다했다. 영화가 극장에서 나가떨어지는 시기였다. 우리 영화도 개봉 당시 걱정이 컸다. 손익분기점은 맞출 수 있을지 떨리기도 했고 괜한 오해로 영화의 진정성이 전달되지 않을까 걱정되는 순간도 있었다. 그런데 말도 안 될 정도로 큰 사랑을 받았다. 1312만명이 '서울의 봄'을 봤다. 관객들이 우리의 에너지를 오롯이 정직하게 받아준 것이 생각나 수상 때 눈물이 나더라"고 고백했다.
내란 및 반란죄 수괴인 전두환을 모티브로 한 전두광 캐릭터를 연기하는 황정민의 고민도 컸다. 황정민은 "전두광은 어떤 배우보다 잘 해내고 싶었다. 그래서 관객이 '전두광' 하나만 생각해 주길 바랐다. 정치, 이념 등을 모두 내려두고 아무것도 생각 못 할 정도로 전두광이 몰입감을 주길 바랐다. 전두광의 실존 인물을 떠올리기보다는 내가 혀를 내두르게 연기를 잘해서 관객이 다른 부가적인 부분을 생각 못 했으면 싶었다. 첫 촬영에 임하기 전 계획을 세웠고 이게 안 된다면 '난 이 작품을 하지 말아야지'라는 다짐까지 했다. 후회할 일 안 만들려고 노력했고 만약 후회할 것이라면 애초에 작품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이어 "다행히 관객이 전두광 그 자체로 봐주는 것 같아 기뻤다. 관객이 날 보면서 화가 나 심박수가 많이 올랐다고 하던데, 정작 연기한 나는 심박수가 올라가는 순간은 없었다. '서울의 봄'에서 만큼은 전두광으로 살려고 했고 그런 이유로 반란군 팀에서도 스스로 고립하려고 했다. 그때만큼은 황정민을 버리고 전두광으로 산 것이다. 사람들이 나를 불편하게 여기도록 만들려고 노력했다. '성공하면 혁명, 실패하면 반역'이었는데 다행히 성공한 것 같다"고 재치를 보였다.
1년을 황정민의 해로 가득 채운 그는 마지막으로 "지난해 '서울의 봄' 흥행부터 시작해 올해 연극 '맥베스'도 성황리에 마쳤다. 또 추석에 '베테랑2'까지 관객에게 선보였고 청룡영화상까지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던 해였다. 흥행과 상복이 남달랐던 해였는데 그래서 복권도 사봤지만 복권은 또 안 맞더라"며 "사실 올해는 번아웃이 오기도 했고 컨디션이 여러모로 좋지 않았다. 한숨 내려놓고 쉬면서 나를 돌봐야 하는 시기였고 정리가 필요한 시기이기도 했다. 영화 위기도 생각하게 됐고 많이 달라진 시장에 '내가 잘못 생각했나'라며 자존감도 많이 떨어졌다. 복합적인 생각이 많아진 해였다. 그 순간 청룡이 좋은 상을 주면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야, 인마! 일어나'라면서 채찍을 때려준 느낌이었다. 고생했다며 '우쭈쭈' 해주는 기분도 들더라. 청룡영화상은 영화배우로서 자부심이다. 쉽지 않았던 순간도 있었지만 잘 이겨내 상에 어울리는 배우가 될 수 있도록 다시 마음을 다잡으려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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