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후 12시께 농민들의 목소리를 담은 트랙터 30여 대와 화물차 50여 대가 과천대로를 통해 서울로 진입했다. 그러나 이들의 행진시위는 계획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경찰이 교통 불편을 이유로 트랙터를 막아섰고, 서초구 남태령 고개 인근에 차벽을 세운 뒤 트랙터 운전자를 끌어 내리는 등 진압하기 시작했다. 전농이 행진시위에 앞서 ▲남태령, 동작대교, 용산관저 ▲석수역, 여의도, 정부서울청사 경로를 이용하겠다고 정식 신고했음에도 법적 근거 없이 내려진 제한통고였다.
경찰의 과잉 진압 소식이 전해지자 서울 광화문, 안국역 일대에서 진행된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에 참여했던 일반 시민들이 남태령 역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 사이 경찰이 트랙터를 지키다 저체온증으로 쓰러진 시민을 방치하고 119구급대원의 진입을 막았다는 소식이 실시간 라이브 영상을 통해 전파됐다. 이에 시민들의 발걸음이 크게 늘어났고 남태령 부근은 대규모 집회현장으로 변했다. 이어 경찰과 전농, 시민들의 24시간이 넘는 밤샘 대치가 이어졌다.
"길을 열어라"라는 구호가 밤새도록 이어졌고 시민 연대 발언도 진행됐다. 발언대에 선 한 덕성여대 학생은 자신의 신상정보를 밝히며 "신상정보를 밝힌 이유는 농민들과의 시위가 자랑스럽기 때문이다. 저 뒤에 방패를 든 경찰들은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가? 내란공범이 됐다고 말할 수 있는가?"라고 일갈했다.
이 모든 과정이 SNS와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됐다. 연대의 손길이 이어졌고, 한파에 저체온증을 호소하는 시민들을 돕기 위한 후원 물품과 지원이 끊이지 않았다. 시민들이 몸을 녹일 수 있는 후원 난방 차량도 속속들이 도착했다. 남태령 역 여성 화장실에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기부한 여성용품들이 쌓였다. 전농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을 향한 후원금 인증 릴레이도 X(구 트위터)를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시민을 돕는 이는 시민이었다.
하지만 같은 날 밤 남태령 역에서 차량으로 30분~1시간 걸리는 KBS 신관 공개홀과 상암 SBS 프리즘타워에는 저들의 처절함이 들리지 않았다. 양사는 시상식을 중계하기 바빴고, 시상식에 참석한 이들은 무덥도록 따뜻한 실내에서 얇은 옷가지 위로 맨살을 드러내며 얼굴에 웃음꽃을 피웠다. 시리도록 추운 날씨에 두꺼운 옷을 입고도 저체온증으로 쓰러져 가는 농민과 시민이 즐비한 상황 속, 그 누구도 현실을 언급하지 않았다. 김남길과 김영옥, 지승현, 권율이 탄핵 정국을 담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을뿐, 완벽한 그들만의 '가짜 세계'였다.
올해 SBS 금토 드라마는 경찰, 검사, 변호사, 판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을 다뤘다. 이중 불의에 맞서 싸우는 신도, 경찰, 검찰의 공조를 다룬 '열혈사제2'는 최우수 연기상(김남길, 이하늬), 우수 연기상(김형서, 김성균, 성준) 등 10개의 연기상을 휩쓸었고 정의로운 '재벌' 형사의 이야기를 다룬 '재벌X형사'는 최우수 연기상(안보현)과 우수 연기상(박지현, 곽시양) 등 5개 연기상을 받았다. 정작 검사, 재벌, 조폭의 마약 카르텔을 그린 '커넥션'은 인생 최고 연기를 펼쳤다는 지성이 무관의 고배를 마셨고 전미도를 제외한 배우들은 조연상에만 이름을 올렸다. 이 땅 위에 죽어가는 존재를 밟고 실재하지 않는 정의를 연기해 받는 연기상이라니, 부끄러움도 모르는 아이러니에 한숨만 내뱉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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