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영화상 이후 본지를 찾은 김고은은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 수상 소감으로도 말했지만 데뷔작인 '은교'(2012)의 정지우 감독님 생각이 정말 많이 났다. 시상식 끝나고 정 감독님한테 축하 연락이 오기도 했다. 이상하게도 올해 청룡영화상은 레드카펫을 밟고 들어갈 때부터 '은교' 생각이 많이 났다. 그 당시 마음도 많이 생각났고 신인여우상을 받고 했던 수상소감까지도 떠오르더라. 사실 그동안 계속 정 감독님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늘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는데 이왕이면 의미 있는 무대에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그게 이번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이었다. 비록 수상 호명 후 무대에 올랐을 때는 사지가 덜덜 떨렸고 눈은 다래끼가 나서 속상했는데 그래도 너무 행복했고 감사했던 순간이었다"고 미소를 지었다.
그는 "12년 전 신인여우상을 수상했을 때와 이번 여우주연상을 받았을 때 감정이 비슷했다. 달라진 건 그때보다 힐을 조금 더 잘 신게 됐다는 것 정도다. 신인여우상을 받았을 때는 높은 힐을 신는 게 너무 힘들더라. 그래서 시상식 내내 힐을 벗고 있다가 신인여우상 호명에 후다닥 힐을 신고 무대에 올라간 게 생각난다. 그때 내 모습을 본 선배들이 모두 웃었다. 이번엔 그때보다 힐을 잘 신게 됐고 편하게 청룡영화상을 즐길 수 있게 됐다"고 고백했다.
김고은에게 '파묘'는 잊지 못할 인생작, 인생캐가 됐다. 그는 "'파묘'는 내가 생각해도 신기한 작품인 것 같다. 인생에 이런 경험을 또 할 수 있을까 싶은 그런 영화다. 인생 캐릭터를 만나는 게 정말 쉽지 않은데, '파묘'로 인생 캐릭터를 추가한 느낌이다. 사실 나는 내가 참여한 영화가 손익분기점만 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한다. 보통 100만, 200만 돌파할 때 인증 사진을 찍지 않나? 손가락을 두 개 펴 보는 게 소원이었다. 늘 손가락 한 개만 펴 보다가 '영웅'(2022, 윤제균 감독, JK필름 제작) 때 처음으로 손가락 세 개를 폈다. 그런데 '파묘'는 스코어를 들을 때마다 잘 못 됐다고 생각할 정도로 무섭게 올라갔다"고 털어놨다.
이어 "한 번은 '파묘' 무대인사 중 '오늘 하루만 85만명이 들었다'라는 배급사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때 머리가 하얗게 되더라. 누적 관객수를 말하는 줄 알았는데 일일 관객수였다. '파묘'는 정말 하루씩 인증사진을 찍어 보냈던 기억이 있다. 오늘 700만 돌파 인증사진을 촬영했는데 다음 날 800만 돌파 인증사진을 요청하더라. '이게 무슨 일이야?' '나 무서워'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너무 좋은데 너무 무서운 느낌이랄까. 그러다 1000만 돌파까지 했다. 내 인생 첫 1000만 작품이라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고은은 올해 여우주연상 수상에 앞서 '파묘'의 장재현 감독이 감독상을 수상한 장면도 잊을 수 없는 명장면으로 남았다. 감독상 수상 당시 장 감독은 "존경하는 김고은, 당신이 한국 배우여서 너무 기쁘다"며 눈물을 쏟았고 이를 지켜보던 김고은도 눈시울을 적시며 감동의 무대를 완성했다.
김고은은 "장재현 감독님의 수상 소감을 듣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질 뻔했다. 정말 이 악물고 참았던 것 같다. 이미 상을 받을 때부터 장 감독님 눈에 눈물이 글썽이더라. 객석에 앉아 '또 울어?' '울보네 울보'라며 놀릴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게 '한국 배우라서 너무 기쁘다'라는 말을 해줬다. 배우가 듣을 수 있는 최고의 극찬 아닌가? 펑펑 울어버리면 주책일 것 같아 꾹 참았다. 살면서 그런 칭찬은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감독님의 단어 선택이 거창하지 않아도 크게 오는 감동이 있었다. 감독님과 나는 서로 '존경하는 감독'이라며 장난을 많이 치고 서로 오글거려 한다. 그런 감독님이 나를 보며 우는데 나도 덩달아 울컥했다. 장 감독님의 수상 소감은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앞으로 내 연기 인생에 엄청난 힘이 됐다. 내가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을 때 나도 '장재현 감독님이 한국 감독이라 기뻐요'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 소감을 못 한 게 지금도 너무 아쉽고 슬프다"고 웃었다.
올해 청룡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김고은은 네티즌 표를 포함해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 투표로 영예를 차지했다. 지난 2017년 열린 제38회 청룡에서 '아이 캔 스피크'(김현석 감독)로 최고령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나문희 이후 7년 만의 여우주연상 만장일치 기록이다. 심사위원들은 "올해는 김고은의 시대다. 독보적이라는 말이 가장 어울렸던 연기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나. 김고은의 전성시대"라고 극찬을 보냈다.
김고은은 "만장일치 심사표를 보고 정말 감동의 도가니탕이었다. 관객, 영화인들이 내겐 어른처럼 느껴졌는데 그들이 아직 부족한 나를 예쁘게 바라봐 준 느낌이 들더라. 심사평을 읽었을 때도 나의 성장을 다 같이 즐기고 기뻐해 주는 느낌이 강해 행복했다"며 "비교적 어린 나이에 데뷔해 늘 주변의 따뜻한 시선을 받으며 성장한 것 같다. 내가 잘 성장하고 좋은 길을 갈 수 있도록 인도해 준 암묵적인 응원 같았다. 올바르게 가야 한다는 생각을 늘 했고 지인들에게도 '만약 내가 잘 못 가고 있으면 꼭 이야기해달라' 말하고 있다. 모두의 응원을 받으며 꼭 좋은 배우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 난 연기가 정말 재미있다. 그런데 지치긴 지친다. 2021년 방영된 tvN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 때부터 정말 한 번도 안 쉬고 연기했던 것 같다. 뭐가 맞는 건지 모르겠지만 내가 지금 열심히 할 수 있을 때 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수상 소감에서도 감사한 마음으로 연기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그게 정말 내 진심이다. 매년 더 깊게 다짐하는 것 같다. 연기를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고 거듭 마음을 전했다.
김고은은 "올해는 '파묘'도 있었고 '대도시의 사랑법'으로도 관객을 만났다. 이번 청룡영화상은 '파묘'의 화림으로 후보에 올라 참석하게 됐지만 시상식 내내 '파묘'도 '대도시의 사랑법'도 영상이 많이 나와 더 재미있게 즐긴 것 같다. 게다가 '대도시의 사랑법'으로 노상현도 신인남우상을 받지 않았나? 청룡영화상을 지켜보면서 '올해 참 알차게 잘 살았다' '열심히 살았네' 싶더라"며 "아무리 연기를 열심히 하고 노력을 해도 이러한 큰 무대에서 인정받기란 쉽지 않지 않나. 작품 자체로 인정받는 것도 쉽지 않은데 작품과 캐릭터 모두 청룡영화상에서 환영받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던 한 해다. 모두가 나를 포근하게 안아주는 느낌이었다"고 곱씹었다.
이어 "한때는 스스로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외면받았던 작품도 많아 속상하기도 하더라. 물론 신인이기도 했고 부족한 점도 많았다. 그래도 팔이 안으로 굽어 내가 참여한 작품은 다 자식처럼 귀하더라. 늘 마음 한 켠이 아픈 작품들이 있었는데 그 과정을 통해 책임 의식이 강해졌다. 실패를 통해 배웠고 확실히 조금씩이나마 성장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번아웃을 이겨낸 김고은은 "올해를 기억하면서 힘든 부분을 다 이겨내고 있다. 이 기운이 계속 이어지면 좋겠다. 나는 뭐든 거창하게 생각하는 걸 안 좋아하는 편이다. 상 받은 것도 너무 좋고 감사하지만 '올해 나에게 조금 더 좋은 해였나보다' 정도 생각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려 한다. 이 상의 무게를 계속 안고 가면서 '다음 작품 잘 안되면 어쩌지' 걱정하거나 상을 받았다고 다 이룬 것 같은 착각에 빠지면 스스로가 너무 불행해질 것 같다. 힘들면 '안 되는 걸 어떡해' 하면서 한 번 울고 마는 거지, 그걸 계속 안고 가면서 나를 괴롭히면 내가 더 성장할 수 없게 되지 않을까"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올해는 스스로 생각해도 정말 열심히 살았던 해다. 곱씹어보면 열심히 일했고 알찼고 인정을 받을 수 있는 해였다. 개봉한 작품도 두 편이 있었지만 그 사이에 열심히 차기작을 촬영하기도 했다. 사실 내겐 지난해가 인생에서 너무 힘든 한 해였다. 다만 힘들었던 감정을 작품에 올바르게 쓸 수 있는 한 해이기도 했다. 그래서 더 특별한 해인 것 같다"며 "청룡영화상도 마찬가지다. 내겐 꿈의 무대였던 청룡영화상은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 꿈을 갖게 하는 무대다. 평생 같이 가고 싶고 앞으로도 계속 도전하고 싶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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