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글임. 원래 이런 거 블로그에 쓰는게 취미였는데 블로그
사라지고(이글루스 ㅜㅜ) 걍 올려봄. 휴일이라 잊혀진 취미를 되살리려는 노력으로…그리고 간만에 눈치 안보고 솔직하게 써본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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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 국내에서는 평이 아주 좋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해외에서의 폭발적인 반응으로 말미암아 '역작'이 되었지만. 〈오징어 게임> 개인적인 감상은 재미있다, 하지만 오리지널리티에서는 감점 정도. 다들 〈신이 말하는 대로>와 유사성을 지적하지만, 그건 오히려 눈속임 같았달까. 〈신이 말하는 대로>와 비교하면 비슷하지 않다고 반박할 거리들이 많아지니까. 진짜는 〈도박 묵시록 카이지>라 생각한다.
그럭거나 말거나, 오징어게임은 전세계적인 돌풍을 일으켰고, 거대한 브랜드가 되었다.
자, 그렇다면 질문. 〈오징어 게임>은 잘 만든 드라마인가? 나의 대답은 YES.
유사성이 있는 작품이 많긴 해도, 장르적 컨벤션의 영역이고, 그 장르이 익숙함 속에서 자신만의 개성과 스타일을 제대로 잡은 좋은 작품이다. 데스게임에 한국의 전통놀이를 집어넣은 컨셉은 과히 천재적이다. 쉽고 직관적인 게임. 한국인들에겐 추억이고, 해외유저들에겐 신선한 충격일터였다. 무명의 배우들을 한 방에 월드스타로 만들만큼, 캐릭터들의 개성이 명확하고 연기도 좋았다. 초록과 핫핑크의 강렬한 대비, 키치함이 돋보이는 미술과 미니멀하면서도 독특한 음악 또한 〈오징어 게임>의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는데 큰 공헌을 했다. 마지막으로 한국식 신파. 매우 중요하다. 신파를 촌스럽다 생각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신파란 대중의 눈높이, 보편적인 공감대를 기저로 깔고 가는 것이다.
다시, 성공한 브랜드의 공식. 쉽고 직관적이고, 익숙하면서도 신선한 아이디어 한 스푼. 〈오징어 게임>은 이 모든 요소를 두루 갖췄다. 썸띵 뉴는 아니지만 모든 요소의 황금비율의 조합임을 부정하긴 어렵다.
미증유의 성공이다. 〈오징어 게임 2>는 넷플릭스의 역대급 제작비와 캐스팅, 거대한 프로모션으로 큰 기대를 모았다. 불경기에 시달리는 영상 업계에는 〈오징어 게임2>가 망하면 한국 영상 업계는 끝이라는 위기론까지 퍼졌다.
그렇게 〈오징어 게임2>가 공개되었다. 큰 기대는 독이 되었다. 혹평이 쏟아지고 있다.
이 역대급 화제작의 앞에서, 우리는 내려놓을 것이 많다. 지나친 기대가 주는 실망을 내려놓자. 〈오징어 게임2>가 망하면 한국 영상판 망한다는 우려도 내려놓자. 케이드라마 케이콘텐츠 케이케이 거리는 국뽕도 내려놓자.
자 무엇이 보이는가. 〈오징어 게임2>는 잘 만든 드라마인가?
나의 대답은 NO. 미술은 시즌 1에 기댄 것이니 열외로 하고, 음악도 연기도 전개도 모두 과하다.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갔다 싶다. 아무도 가보지 못한 길, 미증유의 성공. 그 무게가 너무 무거웠던 탓일까?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휘둘리는 느낌이다.
내놓으라는 배우들이 이렇다 할 연기가 보이지 않는다. 그 전에 캐릭터를 제대로 보여줄 구석이 별로 없다. 이 시리즈의 백미는 단연 게임이고, 그 게임을 하는 과정에서 캐릭터에 숨겨졌던 사연과 본성이 드러나는 법인데. 게임이 없으니 캐릭터를 보여줄 공간도 없다. 스토리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캐릭터 소개가 안되니 배우들의 연기는 과해질 수 밖에 없다. 그 와중에 어깨에 힘을 뺀 이서환(정배 역), 노재원(남규 역), 박성훈(현주 역/aka.재준언니) 배우의 활약이 돋보이고, 박규영(노을 역), 공유(딱지맨 역)도 좋았다.
그 외에는 솔직히 재앙수준이라 생각된다. 특히나 캐릭터 구축에 철저하게 실패한 기훈을 보는 게 힘들었다. 기훈의 캐릭터가 너무 무거워졌다. 시즌 1의 기훈이 가진 일상성, 보편성, 인간미는 사라지고 어설픈 영웅만 남았다. 그런데 둔함을 곁들인.
위기는 여러번 있었다. 시작하자마자 10년 전 유행했을 법한 교통단속 장면. 이게 뭔가 싶었지만 막 시작했으니 봐주자. 위하준 배우가 나오는 모든 플롯 라인도, 흐름을 뚝뚝 끊지만 그래도 게임이 시작되고 재미있으니 봐주자. 그런데 반란을 일으키는 순간, 와 이건 아닌데 싶었다. 명분, 당위도 없고 공감도 안되고. 왜 저런 짓을? 뜬금없이? 오로지 그런 생각만 들었다. 윤석열 계엄 같았다.
아까운 생각이 든다. 앞서 말한 것처럼, 〈오징어 게임>은 모든 요소들이 잘 맞춰지고 갖춰진 좋은 브랜드이다. 세계적인 성공으로 파워풀한 권력까지 가진,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강력한 IP. 근데 그걸 이렇게 써버리다니. 아까워 죽겠다.
무엇이든 본질을 잊어서는 안된다. 〈오징어 게임>이 성공한 본질은 직관적인 게임 속에 녹여낸 인간 본성에 대한 공감대였다. 그게 사라진 순간, 이 이야기는 촌스럽고 낡은 것이 되어버린다.
그래, 촌스럽다. 이 드라마는 촌스럽게 느껴진다. 뜻밖에 성공에 허우적거리는 졸부같다. 그럴 수 밖에 없다. 원래 이 판이 성공하면 옆에서 가만히 두질 않는다. 성공하면 옆에 좋은 말 하는 사람 밖에 없어서 객관적인 판단이 안된다. 원래 시즌 2 계획도 없었는데 넷플이 사정했다잖는가. 시간도 없었다.
시즌 2는 새로운 인물들로 꾸렸어야 했다. 시스템이 잘 갖춰진 데스게임 장르인 걸 영리하게 활용했어야 했다. 그게 시리즈에 대한 브랜드를 확고히하는 방법이었을 터였다. 그리고 시즌 3에서 시즌1의 우승자와 시즌2의 우승자가 각기 다른 이유로 게임에 참여한다면? 억지 전개도 억지 늘이기도 없는 자연스러운 시즌제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기훈이 한 텀을 쉬고 나왔다면, 기훈 캐릭터의 무게감도 충분히 설득력을 가지게 된다. 또 오리지널의 주인공이 등장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시즌 3는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을 것이다.
최근 개인적인 일로도 어떠한 상황에서 평정심과 객관성을 잃었을 때 뼈아프게 실패하는 경험을 얻은 바 있다. 들떠서도 서둘러서도 안된다. 자신만의 균형을 찾고 본질을 지켜가야 한다.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의 일상에서도 그게 쉽지 않은데, 전세계적인 성공을 갖춘 저 화려한 엔터테인먼트 세계의 메이커들에겐 정말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오징어 게임> 브랜드의 가치를 높게 보는 만큼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시즌 2가 너무 아쉽고 아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