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명이 탑승한 무안공항 여객기 사고를 놓고 과도한 속보 경쟁, 적나라한 사고 현장 등 공익성이 뚜렷하지 않은 성급한 보도가 반복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10·29 이태원 참사 당시 희생자 명단 공개를 비판했던 조선일보는 '속보'로 항공기 승객 명단을 공개해 보도준칙 위반 지적이 나왔다.
29일 오전 9시경 태국 방콕발 제주항공 항공기가 무안국제공항 활주로로 착륙을 시도하던 중 추락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소방청은 12시49분 85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고 전남소방본부는 오후 1시경 브리핑에서 "총 탑승자 181명 중 구조된 2명을 제외하고 대부분 사망한 것으로 추정한다"며 "새 떼와의 충돌 등이 추정된다"고 했다.
당국의 공식 브리핑이 나오기 전, 언론의 속보가 쏟아졌다. 오보도 있었다. YTN은 29일 오전 9시57분 "기장과 승무원 등 6명 구조…부상자 파악 중" 속보를 내 사건 초기 기장이 구조됐을 정도면 사태가 그리 심각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커뮤니티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연합뉴스도 10시경 구조 인원을 3명이라고 보도했다.
SBS는 유튜브 〈[LIVE] "탑승 생존자 2명 구조" 여객기 추락 구조 현장> 중계에서 사고 장면을 반복적으로 노출했다. 이를 생중계로 지켜보던 누리꾼은 "지금 이 장면을 이렇게 그대로 송출해도 되는 거냐"라고 반발했다.
조선일보는 오후 12시30분 〈[속보] 무안공항 폭발 제주항공기 승객 175명 전원 명단> 속보에서 승객 명단을 공개했다. 해당 속보엔 아무런 본문 기사 없이 종이로 출력된 탑승객 명단을 촬영한 사진 4장이 여권번호 등 일부만 모자이크된 채로 올라왔다.
조선일보는 10·29 참사 당시 희생자 명단을 공개한 인터넷매체 '민들레'에 대해 비판적 논조를 보인 바 있다. 조선일보는 2022년 11월15일 〈유가족 동의없이… 親野 인터넷매체, 이태원 희생자 명단 공개>, 2022년 11월18일 〈민들레, 명단 공개 적반하장…'상주' 자처하며 삭제 요구 유족에 회원가입 요구> 등의 기사에서 민들레가 무리하게 희생자 명단을 공개했다는 취지로 비판했다.
미디어오늘은 29일 오후 1시경 선우정 조선일보 편집국장에 이번 항공기 승객 명단 공개가 이전의 조선일보 입장과 배치되는 것이 아닌지 해당 속보에 포함된 사진이 공항 측에서 확인한 공식 승객 명단인지 등을 물었지만 답이 없었다. 이후 오후 2시경 해당 속보가 삭제된 상태를 확인했다. 기존 기사 링크로 접속하면 "찾으시는 페이지의 주소가 잘못 입력되었거나, 변경 또는 삭제되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입력하신 페이지의 주소를 다시 한 번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문구만 보인다.
한국기자협회 재난보도준칙 2장 11조는 "피해 규모나 피해자 명단, 사고 원인과 수사 상황 등 중요한 정보에 관한 보도는 책임 있는 재난관리당국이나 관련기관의 공식 발표에 따르되 공식발표의 진위와 정확성에 대해서도 최대한 검증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지난 2022년 10·29 참사 이후 발표된 〈트라우마 예방을 위한 재난보도 가이드라인>에도 "재난 당사자 취재 시 동의하지 않거나 신상정보 및 사생활 노출로 인한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유의한다", "재난의 참혹한 장면을 직접적·반복적으로 송출하거나 과거 유사 사건 자료 및 재난 순간을 재연하는 장면의 사용은 이용자들의 스트레스를 높이고 관련인들의 트라 우마 반응을 유발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등의 내용이 있다.
심영섭 언론인권센터 이사장(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겸임교수)은 29일 통화에서 "참사에 대해선 속보를 낸다는 것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 속보 경쟁을 하다 보면 공익을 위한 부분을 전혀 고려하지 않게 된다"며 "오히려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에 대한 권리, 인권을 침해하는 부분이 더 크다. 서둘러서 기사를 쓸 필요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특히 조선일보의 승객 명단 공개를 놓고 심영섭 교수는 "과거 민들레는 정부가 희생자 명단을 은폐하고 사건을 축소시키려 한다는 의혹이 있었는데도 유족 동의 여부를 가지고 논란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 (조선일보) 속보는 그것보다 더욱 어떤 공익을 노린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방송기자연합회·한국영상기자협회는 이날 〈무안공항 항공기 사고 취재·보도 유의사항>으로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참혹한 장면, 폭발 장면이나 사망자의 시신 또는 그 일부, 부상자의 초상이 노출되거나 반복 사용하지 않을 것 △취재 시 사고 수습, 피해자 구조·이송에 방해되지 않도록 주의 △불쾌감을 줄 수 있는 자극적 표현을 기사나 제목에 사용하지 않도록 유의 등을 권고했다. 관련해 "정확한 보도도 중요하지만 피해자 본인과 가족, 시청자들의 심리적 충격과 트라우마를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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