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와 B씨의 존재가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대형 K팝 기획사, 갑의 불합리에 대항하던 뉴진스, 을의 독립 투쟁은 템퍼링 의혹으로 단숨에 전환됐다. K팝 종사자들로 구성된 단체들이 목소리를 낸 시점도 이들이 등장하면서다. A, B씨는 법리적 다툼 보다 더 큰 영향력을 미치는 어도어와 뉴진스의 여론전에 새 국면을 가져왔다. 무엇보다 뉴진스의 템퍼링 의혹을 공식화시킨 트리거가 됐다는 점에서 다섯 멤버들에게 A와 B씨는 누구보다 불편한 존재들이다.
어찌된 일인지 민희진은 A, B씨와 관련된 의혹에서만 침묵을 지키고 있다. 가장 궁금한 부분인데 가장 말을 아낀다. 상대의 치부를 샅샅이 찾아내, 낱낱이 폭로하던 민희진의 사자후가 들리지 않는다. 두 사람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언론사에 대한 으름장만 내놨을 뿐이다. 예전의 민희진이라면 의혹을 제기하는 자들의 주장에 어떤 허위가 있고, 어떤 음모가 있으며 그로 인해 자신은 얼마나 억울한 지경인지 3차 기자회견을 가졌을 터다.
민희진이 최근 입을 연 것은 의아하게도 '하니의 고용노동부 신고 사주 의혹'에 대한 보도가 나오면서다. 활동 중인 걸그룹 멤버가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하는 전례를 찾기 힘든 사례의 배후에 자신이 있다는 주장이 무척 불쾌했던 것일까. 이전의 민희진에게서 볼 수 있던 사자후가 속사포랩처럼 (글로) 쏟아졌다. 하니에게 그런 부탁을 한 바가 전혀 없었다는 게 요지. 그러면서 최초 보도를 한 매체가 하이브의 사주를 받은 게 아니냐는 강도 높은 말들도 던졌다. 뉴진스가 '뉴진즈'가 된 이후 민희진이 한 논란에 이토록 장문의 글을 남긴 건 실로 오랜만의 일이다.
흔히 '발작 버튼'이라고 부른다. 누군가 나의 트라우마 혹은 예민한 부분을 건드렸을 때 본능적으로 나오는 반응을 속된 말로 일컫는 표현이다. 민희진의 사자후는 누군가 그 발작 버튼을 눌렀을 때 작동된다.
A, B씨 관련 보도 후 침묵으로 전략을 바꾸는 것으로 보였던 민희진의 ‘발작 버튼’은 다소 엉뚱한 부분에서 재작동됐다. 하니의 고용노동부 신고 관련 보도다. 물론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불쾌할 일이다. 그러나 A, B씨의 존재가 뉴진스와 민희진에게 행사할 파괴력만큼 큰 논란 거리는 아니었다. 지금 뉴진스를 위협하는 건 하니가 고용노동부에 어도어를 신고한 이유가 누군가의 사주를 받아서인지, 자발적인 선택에 기인한 것인지와 같은 지엽적인 문제 따위가 아니다. 일시적 논란은 될 수 있지만 분쟁의 핵심 쟁점은 아니다.
민희진은 왜 A,B씨를 둘러싼 의혹에만 발작 버튼이 작동되지 않을까. A, B씨는 어도어와 전속계약 소송 중인 뉴진스에게 불리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들이지만, 민희진은 가슴을 넘어 배 아파 낳았다는 다섯 딸들을 위해 그 어떤 항변도 하지 않고 있다. 모든 사자후, 모든 싸움은 뉴진스를 위한 것이라던 민희진의 말들이 무색해진다.
지난해 4월 민희진이 하이브와 방시혁 의장을 서슴없이 비판하던 때 그는 적어도 누군가의 눈에는 여전사로 비춰졌다. 연예계 인사들에게 유독 보수적 성향을 보이는 한국의 대중이 민희진의 욕설 섞인 비판에 관용적인 태도를 보인 건 그가 급격히 성장한 K팝 시장의 공룡, 하이브의 부조리를 고발한 용감한 ‘내부 고발자’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한동안 하이브와 어도어는 뉴진스의 활동을 방해하는 기업으로 인식됐다. 혹자들은 여전히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 민희진의 전방위적인 공세는 '하이브가 왜 어도어 매출 1위 효녀인 뉴진스의 활동을 제대로 지원하지 않았을까'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 사이 뉴진스에게는 어떤 일이 생겼을까. 멤버들은 통보하는 것만으로 전속계약이 해지가 됐다고 믿는 순진무구한 그룹이 됐고, 공개 석상에서 함부로 제 이름을 부를 수도 없게 됐다. 해외 국적자 하니는 불법체류자 신고를 당했고 큰아빠 A씨를 둔 또 다른 멤버는 “친인척과 관련된 소문은 모두 사실이 아니다”고 팬들에게 거짓말을 한 스타가 됐다.
민희진은 배 아파 낳은 딸들을 진정 위하고 있는 게 맞을까. 길 잃은 어린양 신세가 된 뉴진스를 미래를 더 나은 길로 인도하고 있는 것일까. 현 시점에서 본 민희진의 발작 버튼은뉴진스가 위험에 노출될 때 보다 자신이 공격에 노출됐을 때 작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가장 확실한 건 뉴진스 보다 뉴진즈가 더 위태로워 보인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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