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한 남자 고등학교에서 한국사를 가르치는 서부원 교사는 지난달 19일 새벽 서울서부지법에서 벌어진 난동 사건에 대한 학생들 반응에 깜짝 놀랐다. 학생들은 민주주의 최후 보루인 사법부가 습격당한 참담함보단, 이를 생중계한 극우 유튜버의 수익에 더 관심을 가졌다. ‘좌빨 판사’ ‘참교육’ 등 극단적인 단어를 따라 하는 학생까지 생겼다.
서 교사는 3일 한겨레에 “교실 안에 극우 온라인 문화가 스며든 게 하루 이틀 일은 아니지만 이번 (12·3 내란) 사태 뒤 더욱 심각해지는 분위기”라며 “일타 강사 전한길씨까지 부정선거론 등 주장에 동조하고 나선 뒤 학생들 동요가 더 커졌다”고 했다.
윤 대통령과 지지자들이 그간 온라인 일부에서만 통용되던 극단적인 주장과 혐오 표현을 전면화하면서, 이를 모방하는 분위기가 청소년들 사이에 번지고 있다. 현장 교사와 전문가들은 실질적인 민주주의·디지털 문해력 교육의 부재 속에, 선을 넘는 극단적 주장이 청소년 사이 ‘또래 문화’로 자리 잡게 될 상황을 우려했다.
애초 온라인 문화에 익숙한 청소년 사이에선 ‘민주화’, ‘다문화’ 등 사회적 가치를 담은 단어가 비하의 의미로 둔갑하는 등 혐오 표현을 모방하려는 분위기가 컸다. 천경호 실천교육교사모임 회장은 “초등학생들도 극우 커뮤니티에서 쓸 법한 혐오 표현을 아무렇지 않게 쓴다”며 “현실에서 다양한 의견을 교류하는 경험이 적고, 학교에서도 사회 정서 학습이나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 등은 뒷전이다 보니 무방비 상태로 유튜브 등을 통해 극우적 주장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란 사태 이후 이런 분위기는 한층 심화했다고 한다. 혐오와 음모론이 윤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인사를 통해 언급되고, 유튜브 등을 통해 전방위적으로 번진 탓이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상징적·실질적 권력이 있는 이들의 발언은 공적인 영역 전반에 엄청난 파장을 미친다. 대통령을 비롯해 최근 극우적 주장을 일삼는 정치인 등의 행태는 규범과 도덕적 인식의 경계를 무너뜨리기 쉽다”고 했다. 온라인 표현이나 또래문화에 예민한 교실은 그 가운데서도 특히 취약하다. 서부원 교사는“극우나 반페미니즘에 동의하지 않는 학생들도 ‘편안한 학교생활’을 위해 동조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며 “일부 학생의 일탈이 아니라 10대의 또래문화로 자리잡는 양상”이라고 짚었다.
전문가들은 원론적인 민주주의 교육을 넘어 사회 현안을 함께 논의하고 고민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김성천 한국교원대 교수는 “사회 교과에 민주시민 교육이 포함돼 있지만 학교 현장은 현대사나 시사 현안을 다루는 것에 부담을 느낀다. 그 공백을 유튜브가 메우고 있는 것”이라며 “무늬만 민주시민 교육이 아닌, 토의·토론, 독서 등을 통해 현안을 고민하고 논의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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