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음악방송 사전 녹화(사녹) 현장에서 역조공 문화가 두드러진다. 사녹은 대개 새벽 3시~ 오전 11시 사이에 진행되며, 컴백 주나 연말 시상식 시즌에는 자정을 넘기는 경우도 많다. 팬들은 눈도 제대로 뜨기 힘든 새벽에 추위 혹은 더위를 견디며 장시간 대기해야 하고, 사녹 시간이 길어질 경우 제대로 된 식사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에 자주 처하게 된다.
이에 아이돌이 간식이나 커피, 선물을 제공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풍경이 되었다. 팬들 사이에서는 “봄·가을에 컴백하는 아이돌은 효자”라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계절에 따라 사녹의 체감 난이도가 달라진다.
지난해 12월 지드래곤은 SBS 인기가요 사녹에 참석한 팬들에게 공식 슬로건과 포토카드뿐만 아니라,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브랜드 피스마이너스원(PEACEMINUSONE) 굿즈(마스킹 테이프, 스트랩, 스카프), 커피차, 간식차까지 제공해 타팬들의 부러움을 샀다.
명품 앰버서더인 아이돌 멤버들은 활동중인 명품 브랜드를 선물하는 일도 빈번하다. 뉴진스는 명품 티셔츠, 향수를 선물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여력이 되는 범위 내에서 자발적으로 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역조공이 당연한 의무처럼 자리 잡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모든 아이돌이 이러한 규모의 역조공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일부 팬들은 아이돌 그룹별 조공 리스트를 만들어 비교하며, 역조공의 수준을 일종의 서열처럼 받아들이기고 있다. 역조공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해주고도 원성을 듣는’ 상황이 놓이고 타팬들의 조롱이 뒤따른다.
이 때 역조공은 부담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아이돌과 소속사는 어떤 선물을 줄 것인지, 어떻게 포장할 것인지부터 예산까지 철저하게 고민해야 한다. 한 번 역조공을 할 때마다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수천만 원의 비용이 들기도 한다. 특히 대형 기획사의 인기 아이돌일수록 팬들의 기대가 커지면서, 역조공의 규모와 퀄리티를 신경 써야 하는 압박도 커진다.
아이러니한 점은 이 모든 사녹 문화를 만든 것은 방송국이지만, 그로 인한 부담과 원망은 아이돌과 소속사에게 향한다는 것이다. 방송사의 일정과 녹화 방식이 팬들의 피로도를 높이고 있지만 방송사에서는 뒷짐을 지고 이 문제에서 빠져있다. 그 과정에서 아이돌과 팬들 사이의 관계는 자연스럽고 자발적인 유대감보다는 ‘베푸는 자’와 ‘받는 자’의 관계처럼 왜곡될 위험도 있다.
아이돌이 자발적으로 팬들에게 선물을 전하는 문화가 더 이상 ‘서열’을 나누는 기준이 되지 않도록, 그 본질적인 의미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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