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엔터테인먼트가 다른 회사로 이적한 연예인의 활동을 방해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지상파 방송사에 압력을 가해 출연을 막았다는 주장이 나오면서다. 과거에도 비슷한 논란이 불거지며 일명 ‘JYJ법’(방송법 개정안)이 제정됐지만, 유사한 문제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업계의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비슷한 논란이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아이돌 그룹 엑소(EXO)는 2022년 SM과 전속 계약이 만료됐다. 2023년 6월, SM이 재계약을 요구하자 멤버 백현, 첸, 시우민(이하 ‘첸백시’)은 반발하며 갈등을 빚었다. 이후 이들은 개인 활동과 첸백시 활동은 원헌드레드에서, 엑소 활동은 SM과 함께하기로 합의했다. 시우민은 지난 10일 솔로 앨범 ‘INTERVIEW X’를 발표했다. 가수에게 컴백 첫 주 음악방송 출연은 필수 코스로 꼽히지만, 시우민은 뮤직뱅크(KBS2), 인기가요(SBS) 등 주요 음악방송에 출연하지 못했다.
소속사 원헌드레드 레이블 INB100은 입장문을 통해 "컴백을 앞두고 여러 차례 방송사와 미팅을 시도했으나, KBS는 연락을 받아주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KBS 측이 비공식적으로 ‘뮤직뱅크 등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에 시우민이 동시 출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전해왔다"고 주장했다. 이에 원헌드레드는 KBS를 보이콧했다. 소속 가수 이무진과 그룹 더보이즈는 KBS 웹예능 리부진 서비스 녹화에 불참했고, 원헌드레드 자회사 빅플레닛메이드엔터 소속 방송인 이수근도 KBS N 예능 무엇이든 물어보살 녹화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두 방송 모두 녹화가 중단됐다. 논란이 확산되자 KBS 측은 "제작진과 기획사 간 소통 문제"라며 "기다리면 진심을 알아줄 것"이라고 해명했다.
과거 SM엔터테인먼트는 그룹 동방신기의 김재중, 김준수, 박유천이 2009년 JYJ를 결성해 독립하자 방송사 출연을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3년 7월 방송사 등에 JYJ의 출연 자제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낸 SM과 사업자 단체에 대해 ‘방해 행위 금지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JYJ는 특별한 이유 없이 음악방송 출연이 좌절됐다.
이 같은 불공정 행위가 논란이 되자 정치권에서도 문제를 인식했다. 2015년 12월 방송사가 제3자의 요청에 의해 정당한 사유 없이 특정인의 방송 출연을 금지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의 JYJ법이 제정됐다. 법안에 따르면 정당한 이유 없이 특정 출연자의 방송 출연을 금지할 경우 방송통신위원회가 시정조치를 내릴 수 있다. 또한 방통위가 방송사의 불공정 행위를 직접 규제할 수 있도록 시청자권익보호위원회의 심의 대상에 '외부 간섭으로 인해 방송 기획·편성·제작의 공정성이 훼손될 우려가 있는 사항'을 포함했다. 그러나 법안이 제정된 이후에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김준수와 김재중이 KBS 프로그램에 출연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다. 두 사람은 지난해 예능 신상출시 편스토랑에 출연하며 오랜 공백을 깼다.
연예계에서는 과거부터 전 소속사와 내용 증명을 주고받으며 갈등을 겪는 사례가 빈번했다. 좁은 업계 특성상 소속사를 옮기는 과정이 쉽지 않다. 회사 간 네트워크가 촘촘하고, 정보가 빠르게 퍼지는 환경 속에서 신중하지 않으면 예상치 못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반대로, 너무 서둘러 이적을 추진하면 계약 해지 위약금이나 활동 제한 등으로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소속사와 갈등이 발생할 경우 연예인은 고의적인 방해나 보복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일부는 계약 종료 후 일정 기간 활동을 자제하며 조용히 지내거나, 전 소속사의 압박을 피하기 위해 해외 활동을 먼저 고려하기도 한다. 특히 신인이나 중소 기획사 출신 연예인일수록 법적 대응이 어려워 소속사의 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중견 아이돌 그룹 멤버 A씨는 "예전보다 선택지가 많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불공정한 관행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은 작은 리스크도 순식간에 논란으로 번질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 결국 회사의 무리한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많다"며 "일부 연예인은 회사에 약점을 잡혀 계약이 끝나도 쉽게 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토로했다. 이러한 현실 때문에 일부 연예인들은 소속사의 횡포를 견디다 못해 1인 기획사를 설립하기도 한다. 아이돌 출신 배우 B씨는 "전 소속사가 재계약을 강하게 요구했다. 독립을 선언하자 '팬미팅 과정에서 발생한 부수적 비용으로 회사가 손해를 봤다'며 거액의 배상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그는 "터무니없는 요구였지만, 법적 공방을 벌일 여력이 없었고, 결국 합의금을 지급하고 독립했다"고 덧붙였다. 한 기획사 대표 C씨는 "TV 출연은 프로듀서(PD)의 고유 권한이다. 법적으로 제재하긴 쉽지 않다. 대형 기획사에는 스타가 몰려 있고, ‘누구 출연하면 우리 가수 다 빼겠다’고 말하면 PD 입장에선 아쉬울 수밖에 없다"며 "그래서 음악방송에서 기 싸움이 벌어지고, 연말 가요 시상식 땐 더 심하다"고 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이러한 논란이 반복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예인의 계약 구조와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장치가 필요하며, 이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업계 내 불공정 행위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우리나라 기획사의 99%가 영세하고, 대형 기획사가 시장을 장악하며 방송사는 그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며 "이로 인해 부당한 요구가 수용되고, 연예인이 피해를 보는 구조적 모순이 반복된다"고 꼬집었다. 이어 "대형 기획사 소속 가수가 독립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며, JYJ법은 사실상 실패했다"고 덧붙였다. 김 평론가는 K-팝의 가장 큰 문제는 기획사의 주먹구구식 경영이라며, 문화체육관광부가 가수들을 보호하는 단체를 만들고, 가요계에 인권 보호 조직을 설립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연예인들은 화려해 보이지만 사각지대에 놓여 보호받지 못한다"며 "연예인을 노동자로 인정하고, 인권 보호를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