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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슬리브리스를 입은 마지막 컷 찍을 때 보니 팔 안쪽에 상처가 있던데요.
A. (소매를 걷으며) 아, 이거요. 요즘 식단 관리 때문에 고기를 자주 구워 먹는데, 구우면 주변에 기름이 튀잖아요. 구워지는 동안 좀 닦아야겠다 하다가 프라이팬에 데었어요. 혼자 바보처럼(웃음)
Q. 요리를 잘한다는 얘기를 듣긴 했어요.
A. 잘하는 것까진 아니고요. 대학 시절에 친구들과 자취를 했는데, 제가 요리 담당이었어요. 원래 푸짐하게 차려 먹는 걸 좋아하거든요. 면 요리도 그것만 있으면 아쉬워요. 사이드 디시 몇 가지를 더 곁들이는 걸 좋아하는데, 그렇게 사 먹으려면 워낙 비싸니까 직접 해 먹으면서 재미를 붙인 거죠. 그런데 요즘은 거 의 못하고 있어요. 간단히 고기 굽는 게 전부예요.
Q. 한상 가득 차려두고 상찬의 식사를 해야 할 시기 아닌가요. 드라마 멋진 신세계>가 연일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고 있어요.
A. 당연히 순간적으로 기분 좋은 건 있는데, 그 이상은 모르겠어요.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라면 들떴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친한 친구한테 "너무 좋다" 하고 말한 게 전부예요. 바로 다음 작품에 들어가게 되어 새로운 시나리오와 캐릭터가 저를 눌러주는 것 같기도 하고요. 매번 새로운 시험대에 오르는 게 이런 점에선 좋지 않나 싶어요. 계속 출발점으로 다시 데려다주니까요.
Q. 멋진 신세계>의 '차세계'로 시작할 땐 어땠나요? 출발점에서 어떤 생각을 했어요?
A. 막막했어요 새 작품을 시작할 땐 늘 그렇지만, 이번엔 유난히 어려웠어요. 글이 참 좋았거든요 무난하게 지나갈 만한 신이 단 하나도 없는데다, 대사의 난도도 꽤 높다 싶었어요. 정말 잘해서 인정받거나, 혹은 좋지 않은 쪽으로 들통이 나거나 모 아니면 도겠다 생각 했어요.
Q. 대사의 난도가 높건 현대와 조선시대 화법의 간극 때문일까요?
A. 차세계가 기본적으로 말이 너무 많아요.(웃음) 게다가 평소에 잘 안 쓰는 말이 많아서 감정에만 집중할 수도, 기술적인 부분만 신경 쓸 수도 없었어요. 밸런스를 잘 조절하려고 초반에 연습을 정말 많이 했죠. 그런데도 막상 현장에 가서 해보니까 어렵더라고요. 감독님과 상대역인 임지연 배우에게 많이 묻고 의지하면서 한 것 같아요.
Q. 어느 시점부터 막막함이 사그라지고 차세계의 말이 편안해졌나요?
A. 중반부쯤이었던 것 같아요. 배우들은 그럴 때가 있어요. 디렉팅이 있는 그대로 들리지 않고, '내가 뭘 놓쳤나? 잘못했나?' 혼자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시기요.
Q. 오역하거나 확대해석을 하는 거죠?
A. 맞아요. 같은 작품이라도 감독님이 보는 세계가 있고, 차세계 말고 진짜 '세계'요.(웃음) 또 작가의 세계가 있고, 배우의 해석도 있잖아요. 이를 서로 잘 조율하면서 만들어가는 게 당연한 과정인데, 배우가 부담감과 막막함을 느낄 땐 그 과정에서 자신과 다른 의견을 들으면 자신을 탓하게 되거든요. 그러다 어느 순간 머리를 안 쓰고, 과하게 걱정하지 않고, 그냥 연기를 하게 되는데, 그게 이번 작품에선 중반부부터였던 것 같아요.
Q. 그 과정을 지나 결과물을 마주했을 땐 어떤 감정이 들었나요?
A. 멋진 신세계>는 생각보다 시청자로서 재미있게 보게 되더라고요. 그러니까 제 연기만 보이는 게 아니라 다른 요소들이 다 보이는 거예요. 가족과 친구들도 비슷한 얘기를 해줬어요. 원래 잘 보다가도 제가 나오는 장면에선 아무래도 본래의 저를 아니까, '으윽' 할 때가 있거든요.(웃음) 그런데 이번에는 그냥 몰입해서 재미있게 봤다고 하더라고요.
Q. 어쩌면 그 부분이 배우로서는 시청률 못지않게 큰 성취이지 않을까 싶네요.
A. 그렇죠. 재미있더라, 시간이 훅 가더라. 그게 제일 기분 좋은 말이죠.
Q. 또 하나의 성취가 있죠. 전작 유어 아너>나 백번의 추억>도 있지만, 유독 멋진 신세계>를 통해 "허남준 배우를 발견했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아요. 이 말이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론 서운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꽤 오래전부터 역할의 경중을 가리지 않고 성실하게 연기해온 입장에서 이제야 알아봐주는데 대한 서운함 같은 거요.
A.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생각한 목표 이상을 너무 빠르게 이뤘다고 생각해요. 긍정적인 편이라 그럴 수도 있는데, 저는 대사 한마디 없는 이미지 단역으로 뽑혔을 때도 친구들과 파티를 했어요.(웃음) 얼굴이 시뻘게질 정도로 소리 지르면서 기뻐했죠. 그러다 대사 하나라도 생기면 또 그것대로 좋아하고, 반대로 그러다 오디션에 떨어져도 크게 실망하지 않았어요. 어쨌든 계속하고 있다는 것 자체로 아주 만족스러웠거든요.
Q. 엄청난 긍정의 힘인데요.
A. 자신감이 넘쳤던 것 같아요. 그래서 으스댄다는 게 아니라, 막연하게 혼자 왠지 될 것 같은 느낌이 있었던 거죠. 대학 갈 때도 그랬어요 배우 되겠다고 하면 "네가 무슨 연기를 해'라는 말을 많이 듣잖아요. 실제로 한 번 떨어져서 재수를 했어요. 다들 하지 말라는데 다시 하면 될 것 같은 거예요. 그리고 이듬해에 됐어요. 작품을 시작할 때도 그랬어요. 지금은 잘 못하지만, 언젠가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연기로는 한 번도 불안해본 적이 없어요.
Q. 그게 가장 어려운 일이잖아요. 불안해하지 않는 것이요.
A. 그런데 운이 좋아서 그럴 수도 있어요. 배우는 선택받아야 하는 입장인데 만약 선택받지 못해 공백기가 길었다면, 지금처럼 긍정적일 수는 없었을 거라 생각해요. 요즘 그런 생각을 해요 어쩌면 태생이 긍정적인게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운들이 불안을 잠재워준 건 아닐까 하고요. 그리고 제가 작품 복도 많은데, 인복도 많아서 흔들린다 싶으면 친구들이 잘 잡아줘요. 그래서 과하게 걱정하지 않아요. 제 친구들이 진짜 건강하게 사는 좋은 사람들이라, 친구들한테 좋은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어요.
Q. 작품을 하며 받은 영향도 있겠죠? 맡은 캐릭터를 통해 배운 것도 있을 것 같아요.
A. 있죠. 제가 연프(연애 리얼리티 쇼)를 즐겨 보는데요. 거기 보면 한 번 나왔다가, 다음 회차나 또 다른 연프에 다시 출연하는 분이 있잖아요. 그분들 보면 이전의 모습을 모니터하고선 되게 달라져서 나오는 경우가 많아요.
Q. 연프를 많이 본 사람만이 가지는 통찰력을.(웃음)
A. 저 진짜 많이 보거든요. 하하. 그들처럼 저도 작품에서 사람들이 좋아해준 부분을 발견하고, 그걸 저에게 갖다 붙이려고 부단히 애를 써요. 왜냐하면 배우로서 매력적으로 보였으면 하고, 또 좋은 사람이고 싶으니까요. 그렇게 계속 저라는 사람을 발전시키려고 하는 것 같아요.
Q. 그럼 차세계에게서 발견한 매력적인 부분은 무엇인가요?
A. 일단 작가님이 차세계라는 사람을 너무 매력적으로 잘 설계해주신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설계의 핵심이 뭘까 생각해 봤을 때 답은 간극이라 생각해요. 누구나 밖에 나갈 땐 자기만의 갑옷을 두르지만, 차세계는 유난히 갑옷이 두껍고 단단한 사람이에요. 관계에서도 효율을 따질 정도로 냉소적이고요. 그런데 어느 순간 갑옷을 툭 벗고 연약하고 허술한 모습을 내보이는 거죠. 그 순간의 매력이 크다고 생각했어요 절대 안 그럴 것 같은 사람이 예상치 못한 모습을 보여줄 때 드러나는 매력이 있잖아요.
Q. 듣고 보니 허남준 배우에게도 그 모습이 있는 듯해요. 냉소적으로 보이는 외형과 달리, 실제로는 퍽 밝고 긍정적이라는 점에서요. 차가운 사람인 줄 알았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 편이죠?
A. 네. 그래서 저는 갑옷을 안 입으려 하는 편이에요. 특히 현장에서는 더 열어 두고 편하게 다가가려고 해요. 그럼 다들 진짜 말이 없을 것 같은데 생각보다 말을 잘한다고....(웃음)
Q. 실은 저도 인터뷰할 때 대답이 짧을 것 같아 추가 질문을 준비하긴 했습니다.(웃음)
A. 그런데 생각보다 말 엄청 많죠? 정리할 때 힘드실 수도 있어요.
Q. 오늘 인터뷰 앞뒤로 새 작품의 촬영이 이어진다고 들었어요. 좀 전에 얘기한 막막함의 정도로 표현하면 어느 시점에 와 있나요?
A. 완전 막막한 시기예요. 그러잖아도 어제 운동 하러 가면서 불현듯 걱정이 되는 거예요. 감독님께 전화했더니 가편집을 해봤는데 너무 좋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셔서 조금은 자신감을 찾은 상태입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답을 찾아가는 중이긴 해요. 아직 메인 메뉴를 확정하지 못해서 시식 코너를 도는 느낌입니다.
Q. 이 작품을 마치고는, 좋아하는 푸짐한 한상 차림을 즐겨도 좋겠어요.
A. 마지막 촬영을 마치면 차려 먹어볼까 싶어요. 그런데 모르겠어요. 또 다음 작품이 이어지면, 탄수화물과 계속 멀어져야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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