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수가 고려에서 돌아오고 눈을 뜨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까맣게 잊은 채 다시 고하진으로 살아갈 때.
하진이는 원래 일했던 화장품 가게에서 다시 일을 하겠지. 그러다 며칠 후 새 직원이 온다. 채령이겠지. 해수를 처음 보자마자 예쁘시네요, 하는 채령이에 하진이는 익숙한 느낌을 받을 거야. 채령이는 정말 완전 신입이니까 하진이한테 이것저것 배울 거고. 하진이는 왜그런지 모르면서 채령이랑 누구보다 친해질 거야.
채령이랑 친해져서 쉬는 날 따로 놀러가자고 약속도 잡았다. 놀이공원에 가자고 그랬지. 하진이는 먼저 가서 기다린다. 채령이가 자기는 조금 늦을 것 같다고 정말 미안하다면서 먼저 입장하라니까, 아쉽지만 일단 먼저 입장을 하겠지. 채령이는 늦는다고만 하고 언제 온다고는 말도 안했고.
그렇게 혼자 머쓱하게 기다리는데 누가 뒤에서 어깨를 툭툭 쳐서 돌아보면,
"저기... 저희 사진 한 번만 찍어주시면 안될까요?"
라고 묻는 교복을 입은 커플 하나가 서있을 거다. 쳐진 눈매에 유순한 인상이 닮은 둘을 보며 하진이는 알겠다며 핸드폰을 건네받겠지. 서로 행복한 포즈로 사진을 찍는데 하진이는 눈물이 나려고 한다. 그냥, 저 둘이 너무 행복해보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사진 찍어준 하진이에게 고맙다며 인사하고 둘은 멀어져 갈거야.
"야, 너는 내가 그 누나한테 말 거는데 질투도 안하냐?"
"뭐래. 얼른 오기나 해."
"야야야, 내가 니 짱이지? 맞지?"
그렇게 몇 분 더 기다리다 보니까 채령이가 오고 채령이랑 여기저기 놀러다닌다. 그러다 오늘 특집공연이 있다 그래서 앞쪽에 자리 잡고 앉아서 공연을 본다. 채령이는 솜사탕을 사와선 맛있다고 하진이한테도 건네줄 거야. 가만히 보다 보니 어느새 메인만을 남겨두고 있고, 채령이랑 하진이는 저들 나름대로 신나서 막 얘기를 하겠지. 무대에는 각각 남녀 한 명씩만 나와서 섰다. 별 거 없는 내용이었어. 그냥 흔한 사랑 얘기였는데, 배우들이 너무 잘 어울려서 하진이는 저도 모르게 무대에 집중했겠지.
그러다 남자배우가 여자배우에게 장미꽃을 건네는 순간, 하진이는 불현듯 고려의 기억이 떠오른다. 갑자기 막 고려에서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 다시 무대를 보면, 장미꽃을 받고 행복해하는 둘이 있고. 하진이는 웃지만, 그 끝엔 눈물이 고일 거야.
잘 지내는 구나, 백아랑 우희는. 왕은 황자님이랑 아가씨도 만나셨구나.
안도감과 그리움, 그리고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온갖 감정들이 섞여서 하진이는 울겠지. 해수가 되어서. 채령이는 당황하니까 막 휴지 챙겨주고. 그런데 옆에서 누군가 손수건을 건네준다. 하진이가 울먹거리면서 감사합니다, 하고 손수건을 건네받는데 남자가 손수건을 줄 생각을 안해.
자기한테 준 게 아닌가 싶어서 슬쩍 고개를 드는데 보이는 정말 익숙하고 또 보고 싶었던 얼굴. 왕소가 있겠지.
흉터도 없는 깨끗한 얼굴로 웃으면서 말할 거야.
"네 세계로 내가 왔다, 수야."
+) 하진이네 옆건물에 카페가 들어서서 겸사겸사 들린 카페. 주인이 누군가 둘러보는데 안쪽에서 어서오세요 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나오겠지.
"오늘 첫 손님이네!" 하면서 첫손님이니까 드리는 거라면서 주는 과자들. 하진이는 말없이 제 손에 들린 음료와 과자를 바라보고 있는데 주방에서 또 누군가 나온다. 그리고 먼저 나온 여자를 애칭으로 부르는 남자. 하진이가 제게 과자를 건넨 여자를 향해 감사하다며 웃겠지. 그러다 망설이면서 한 마디 한다.
"언니라고 불러도 돼요?"
그럼 여자는 웃으면서 예쁜 동생 하나 생겼다고 좋아할 거야. 옆에 있던 남자도 웃겠지. 하진이도 행복한 둘을 보면서 웃는다. 해씨 부인과 왕욱이 부부로 서있겠지.
++) 동네에 유명한 분식집에 들린 하진이. 안에 들어가자마자 익숙한 얼굴이 있다. 고려에서 그토록 저를 괴롭혔던 왕요와 연화 공주. 둘은 말싸움을 하고 있었다.
"너는 왜 맨날 여기밖에 안 오냐."
"네가 신경 써서 뭐하려고 그래. 신경 꺼."
"신경을 써줘도 뭐라 하니, 어쩜 저리 드센지 원."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해. 요 너는 네 인생이나 잘 살아가."
둘은 어쩜 그리도 변한게 없는지. 하진이는 근처에 앉아 떡볶이 하나를 시킨다. 수수한 차림의 아주머니가 음식을 갖다주고. 하진이 앞에 앉아선 익숙하게 말을 하겠지. 저 둘은 맨날 와서 저렇게 싸우다 간다고. 저러다 결혼할지 누가 알겠냐면서 웃는데 하진이는 괜히 목이 막혀서 물만 들이키겠지. 저 대신 죽었던 오상궁이 하나도 변하지 않은 얼굴로 앞에 있다. 오상궁이 말을 하다 하진이를 보더니 주방에다 대고 말해. "여보, 여기 물 좀 더 갖다줘봐요!" 그리고 보이는 얼굴. 황제다. 결국 하진이는 물을 더 갖다줘도 고개도 들지 못할 거야.
행복하구나. 정말로, 여기선 다 행복하구나. 그렇구나.
하진이는 안심하겠지. 모두들 여기에선 행복하게 살고 있구나. 다행이다, 정말로. 진짜 다행이야.
그리웠던 사람들을 다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