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정신과 의사 강권주씌 아니다 권주 언니는 제복 입고 있을 때 젤 멋지니까ㅎ____ㅎ
-벌써 모태구 씨가 들어오고 우리가 이렇게 마주한 지 삼 개월이 되었다네요. 시간 참 빠르다, 그렇죠? 음…… 다름이 아니라 오늘은 태구 씨를 자꾸만 압박하고 힘들게 한다는 그 기억을 한 번 꺼내볼까 해요. 이번 치료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본인의 의지와 노력을 가장 필요로 해요. 물론 태구 씨가 많이 아프더라도 본인을 위하여 한 발자국만 내딛어준다면 그 순간부터 저 역시도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여 발목에 묶인 체인 마냥 태구 씨를 붙들고 있는 고통과 심리적 불안감을 덜 수 있도록 노력할 거고요. 나 한 번…… 믿어 볼래요?
병원 내부 곳곳에 붙어 있는 금연 안내문의 취지가 무색해질 정도로 무심한 듯 담배 연기를 내뿜던 그는 덜 피운 담배꽁초가 아깝지도 않은지 바닥에 던져버리고선 두어 번 구두로 짓밟더니 이내 책상 위에 엎드린 채로 물끄러미 나를 올려다보더라. 나 역시도 그와 눈을 마주하면 그 새까만 눈동자가 가슴이 시릴 듯 매섭고 냉기가 돌아 결국 비친 내 모습 한 번 확인하지 못하고 시선을 피해버렸다. 도대체 여태껏 저 눈동자에 무엇을 담았기에 이토록 사람을 갈구함과 동시에 경계하는 눈빛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가벼운 경범죄를 저지른 사람들부터 흔히들 사이코패스라고 부르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지닌 연쇄 살인범까지 지금껏 수없이 많은 사람과 상담을 해왔고 이 한평생을 그들의 심리적 불안감을 덜어주려 애쓰며 살아왔다.
-우리 한 선생님, 밥은 드셨나. 처음 만났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새 야윈 거 같네. 밥 좀 먹으면서 일해요, 자꾸 이러면 내가 속상하잖아.
하지만 모태구, 그는 드문 케이스였다. 아니, 적어도 나는 살아생전 단 한 번도 마주해 본 적 없는 유형의 사람이었다. 어쩌면 그랬기에 일분일초라도 더 빨리 진실 된 모습의 그를, 그리고 그의 과거를 마주하고 싶었을지도.
그의 과거는 한 편의 영화 같았다. 그 어린 나이에 마주하였던 아버지의 살인 현장이 얼마나 충격적이었으면 한참이 지난 지금까지도 저리 상세하게 묘사를 할 수 있을까. 사진도 뭣도 없이 가만히 앉아 그의 이야기만 듣고 있었을 뿐인데도 토악질이 나올 것만 같아 귀를 틀어막고 싶었지만 열두 살의 자신이 되어 그 끔찍한 장면을 또 한 번 마주하고 있을 그의 미세하게 떨리는 손이 미칠 듯 안쓰러워 살며시 잡아주었다.
다른 정신 질병에 비하여 유독 유전적인 요소가 많은 것으로 알려진 반사회적 인격장애, 일명 사이코패스. 유전적인 요소를 잔뜩 껴안은 채 태어난 것도 모자라 제 아버지의 살인 현장을 마주하며 더해진 후천적 요소. 거기에 꽤나 거대한 권력을 지니고 있던 집안의 외아들로서 끊임없이 존경과 관심의 대상이 되려 애쓰는 자기애성 인격장애까지 자연스레 지니게 되었을 그였기에 그런 끔찍한 살인을 벌이고 다녔다는 것이 조금은 납득이 가는 듯하였다.
-자, 열두 살의 태구는 그 장면을 보고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지켜보고만 있었을지 몰라도 지금 당신은 그때의 작은 아이가 아니에요. 다시 한번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뜨면 기대고픈 그 사람, 당신의 손을 잡아 줄 그 사람이 눈에 보일 거예요.
-……
-이제 모든 상처는 뒤로 하고 당신 눈앞에 팔 벌리고 서 있는 그 사람을 향해서 한 발자국씩 나아가봐요.
어느덧 막바지를 향하여 가는 치료였고 그의 손에 흉기를 쥐여준 그 사건 역시도 그에게 있어서 일종의 트라우마였기에 일반 트라우마 치료와 다를 바 없이 마무리를 위하여 본인이 믿고 의지하거나 그 이상의 감정을 가진 사람을 그릴 수 있도록, 그리고 그 사람과 본인의 상처에서 멀어질 수 있도록 유도를 하면 문득 의문이 들더라. 과연 이 남자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채우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모태구 본인을 사이코패스로 만든 장본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그의 아버지일까, 열두 살 그 어린 나이의 아들을 두고 먼저 떠난 어머니일까. 가만히 그의 입이 움직이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면 작게 벌어진 입술 틈 사이에선 꽤나 흥미로우면서도 당황스러운, 그러니까 상상도 못한 이름이 나오더라. 강권주……, 강권주라……. 어디선가 들어 본 듯한 느낌에 미간을 찌푸리고서 기억 속을 헤집어보니 그제야 머리속에 들어왔다, 그녀의 모습이.
-성운지방경찰청 골든타임 팀의 강권주입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혹시라도 모태구 씨에게 무슨 일 생기면 꼭 이 쪽으로 연락 주세요.
참 애상적인 관계였다. 경찰을 사랑한 연쇄살인범……, 듣기만 해도 결말이 너무도 눈에 훤히 보였기에 더욱 서글픈 로맨스처럼 느껴지더라. 그리고 강권주라는 그의 애절한 부름을 들은 후에야 나는 모태구의 어떤 점이 일반 사이코패스들과 다르게 차별성을 띄고 있는지 알 수 있었으며 그건 다름 아닌 후회 그리고 죄책감의 유무였다. 대부분의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지닌 이들은 본인들이 저지른 일에 대하여 일말의 죄책감도 후회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모태구, 그는 다른 이들과 달랐다. 그건…… 아마 제가 사랑한 여인이 지키고 싶어 했던 것을 다른 이도 아닌 자기 자신이 헤집어 놓았다는 사실에서 온 감정들이겠지. 아무튼, 그렇게 치료가 다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감정을 너무 소비한 탓인지 평소와는 다르게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눈꼬리에 투명한 눈물방울을 달고서 누워있는 모태구 씨가 오늘따라 유독 안쓰럽게 느껴져 물이라도 떠다 주려 방을 벗어나니 내가 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마냥 그제야 잔뜩 갈라진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게 오늘은 조금 천천히 걸어도 되겠다 싶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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