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ㅂ."
말 끝나기가 무섭게 팔을 걷어 올린다. 오른손으로 주사기를 찾아 왼쪽 팔뚝에 꽂아 버리는 건 순식간이다. 금세 눈 앞이 핑핑 돈다. 어지럽다. 눕고 싶다. 앞에 있는 히피 놈의 입이 무어라 말을 한다. 초점이 흐려져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최대한 읽어본다. 미안하다. 그 비슷한 걸 말하고 있는 것 같다. ㅅ끼야, 미안하면 날 찾아오면 안 됐지.
"유한양씨, 경찰입니다. 당신을 마약 복용 및 소지 혐의로 체포합니다."
갑자기 덜컥 문이 열린다. 네가 말한 미안한 게 이거구나. 진짜 미안해야겠네. 형사들은 억지로 날 끌어당긴다. 제대로 서고 싶어도 자꾸 다리에 힘이 풀린다. 구겨지듯 차 안에 실린다. 양 옆에 우직한 형사들이 앉는다. 다시는 이런 꼴 안 당한다고 약속 했는데, 다시는 약 안 하겠다고 약속했는데. 누구랑 약속했더라. 아, 지원이. 우리 송지원. 지원이 기다리는데. 아빠랑 기다릴텐데. 걔 안 그런 척 해도 내 말은 다 믿어서 계속 기다릴텐데. 내가 여길 왜 왔지? 송지원이 선물 준다고 했는데 왜 여기 온 거지. 눈 앞이 캄캄해진다. 점점 눈이 감긴다. 지원이 기다리는데, 잠 들면 안 되는데 자꾸 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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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끼야, 뭘 잘 했다고 잠을 자."
뒤통수를 갈기는 손에 눈이 떠진다. 욕지거리가 작게 나온다. 이 ㅅ끼들은 10개월이 지나도 나아지는 게 없다. 안 그래도 힘 풀린 몸에 수갑까지 채워져 있으니 쉬이 몸을 가누질 못 한다. 옆에선 약쟁이 ㅅ끼들 정신 못 차린다며 혀를 끌끌 찬다. 알아, ㅅ끼야. 내뱉지 못할 말을 삼킨다.
"유한양씨, 지금 입 다물어봤자 도움 하나도 안 돼. 당신 현행범이야."
내 옆에 앉은 놈은 소매치기 하다가 걸린 놈이고 다른 한 쪽에 앉은 놈은 성추행범이란다. 양 옆에 질 나쁜 놈을 끼고 앉으니 나도 저들과 같은 죄를 지은 사람 같이 느껴진다. 한심하고 초라하다. 그 히피 놈 따라가는 게 아니었는데. 그래봤자 때 늦은 후회.
경찰서 안은 욕과 폭력으로 가득 차 있다. 책상을 쾅 내리치는 소리, 의자를 발로 차는 소리, 키보드로 사람 내려치는 소리가 들린다. 내 앞에 앉은 형사놈은 그나마 얌전한 놈인지 반말은 해도 때리진 않는다. 아, 함정수사라 어차피 짜여진 각본이니 나한테 얻을 게 없다, 이건가. 이런 생각이 드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얘네 진짜 쓰ㄹ기네.
"웃어? 지금 당신 웃음이 나와?"
"아. 미안. 내가 원래 표정을 못 숨기는 타입이라."
"이 뽕쟁이가 보자보자 하니까. 내가 안 때리니까 만만하지?"
"때릴 필요가 없는 거겠지. 어차피 함정수사잖아. 이미 얘기 다 맞춘 거 아니야?"
이 ㅅ끼가 진짜! 형사놈이 키보드를 뽑아든다. 맞는 건 아프지 않다. 2상6방에서 평생 맞을 건 다 맞아봤다. 아, 근데 키보드는 처음인데 아프려나. 혹시나 하는 염려에 눈을 질끈 감는다. 많이 맞긴 했어도 진심으로 맞은 적은 없으니까.
"신형사님!"
약쟁이라며 혀를 끌끌 차던 놈이 소리를 꽥 지르며 뛰어온다. 한 손엔 내가 내려꽂은 주사기가 든 봉투를, 한 손엔 종이를 들고 똥 씹은 표정이다. 나를 슬쩍 흘겨보더니 눈치를 보며 입을 연다.
"신형사님. 이 ㅅ끼 맞은 거, 이거 수면제랍니다."
"뭐?"
"일본 히피 그 ㅅ끼가 우리 낚은 거라고요.
신형사라는 놈이 키보드를 내려놓고 종이를 받아든다. 표정이 구겨지는 걸 보니 수면제인 게 맞나보다. 양아치 ㅅ끼. 팔아먹을 거면 제대로 팔아먹든가. 아니면 미리 말 좀 해주든가. 나는 여기서 딱 죽고 싶었는데. 출국 금지 떨어지기 전에 빨리 일본이나 가라. 안 그러면 내가 먼저 찾아서 죽여버릴 거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씰룩거리는 입꼬리는 멈출 기미가 안 보인다.
"근데 이 ㅅ끼 왜 이렇게 정신 못 차려? 확실한 거 맞아?"
"미안, 내가 원래 약빨을 좀 잘 받아."
지금은 다 필요 없으니 빨리 부대찌개나 먹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