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혼자서 말을 한다. 내 주위에 아무도 없다. 나는 그냥 혼자서 내가 나에게 말을 한다. 내가 혼자서 말을 한다. 내 앞에 한 사람이 있다. 그리고 나는 내가 혼자서 말하듯이 그와 대화를 한다. 여기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언어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발생하고 의미를 획득하건만 혼자서만 말하기의 감옥은 전혀 생각치도 못한 떨림을 지니며 밑바닥에 잠겼던 고유의 목소리를 획득한다. 당장 내가 평소에 말하던 사람과 혼자서 말하기를 한다면 그 어려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의식과 의식 간의 선연해지는 거리감, 언어와 의식 사이의 그 메워질 수 없는 간격과 불일치를. 자기의 자아와 내면에 집중하며 충실하지 않는 한 그것이 얼마나 어색하고 아무것도 전달될 수 없는 서투름일지. 자기자신을 충분히 들여다보고 느끼지 못하는 인간은 이런 언어를 사용할 수 없다. 친구들과 동료들과 너무나 많은 말을 하고 난 후에 알 수 없는 공허감과 피로감을 느낄 수 있다. 그들과의 관계와 대화에 너무 열중한 탓에 자기자신을 잊고 말이 쏟아져 나올수록 자기자신이 빠져나가고 마지막엔 자기 혼자 바닥까지 내쳐진 채 홀로 소진된 기분이다. 지안의 언어는 이런 소모를 모른다. '가장 화려한 곳에서 가장 어두운 곳으로, 가장 낯선 곳에서 가장 어울리는 곳으로' 머물어야만 하는 그녀의 언어는 그녀가 홀로 있고 오직 혼자 있다는 심연 속에서 모든 것이 말해지기 때문이다. '보고 싶어서 기다렸어요' 상대방을 향해 의사를 전달하는 역할만을 수행해야 하는 언어가 전철 차창에 비친 희미한 자기의 모습 속에서 자기를 향하듯이 말해진다. 그녀는 굳이 거울 속의 자기를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 말 속에 자기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동훈은 당황하지만 그녀는 평소처럼 아무런 동요없이 그를 내려다보며 그 특유의 차분하게 오락가락하는 반말투로 그를 뒤흔든다. 그리고 그가 결코 부정할 수 없는 결정적인 말은 남긴다. '우린 둘 다, 자기가 불쌍해요' 이 말을 상대방에게 그저 의사를 전달하듯이 말했다면 어떻게 들렸을까? 그렇게 큰 울림을 가질 수 있었을까? ((지안의 언어는 엄밀하게 말해서 일상적인 대화의 연장이 아니라 문학적인 자기고백의 성격을 띠고 있어서 치장과 격식을 거치지 않고, 말하려 하는 것들이 다른 가식이 없이 있는 그대로의 의미로 말해진다.)) - 이토록 이타적인 성정의 인간이 이토록 고집스럽게 외롭게 타인과 단절된 자기의 언어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 그녀의 언어에 내재한 고통은 순진한 동훈의 충고대로 단지 사람들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일이 아니다. 한 인간의 언어는 그 사람이 이제까지의 그 사람이기 위해서 지켜왔던 자기정체성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회화 무리화 군집화 되어서 다 비슷비슷해지는 경향이 생기지만 그렇기 때문에 보다 개성적인 성격의 인간의 언어는 더욱 내면화되고 고립적이 될 수밖에 없다 드라마에서 지안은 두 번 자신의 닫힌 언어 밖으로 나오는 용기를 낸다. 동훈을 향해 '파이팅' 할 때와 그와 그의 사람들에게 '고맙습니다' 라는 인사를 할 때이다. ((그녀에게는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한 일상언어로의 복귀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보여주는 이 장면들은 그 어색함 때문에 오히려 진실하다.)) 갠적으로 지안이 캐릭터에 대하서 공감되서 일부분 가져왔어 초중반에 툭툭 내뱉는 말투가 지안이의 차가운 성격 때문에 그렇구나 싶었는데 쭉 보고나니까 대화 상대의 부재와 혼자 말하는게 익숙해져서ㅜㅜ.. 그래서 지안이 변화가 더 반가운것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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