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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아들"

어머니의 대답은 정말 평범했다. 한달 반만에 서로의 목소리를 들어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거다. 하지만, 그런 기색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한참을 뜸을 들이고 어떤 말을 해야할 지 고민을 했다. 미리 대본을 준비한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소 충동적으로 전화를 하게 된 거였으니 말이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다시 연락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고 행동으로 옮길 지 알 수 없어서. 단지 그 뿐이다.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였다.


"연락이 늦어서 미안해요."라고 말한 게 내 첫마디였다.

이 말을 내뱉고 정말, 되게 많은 생각을 했다. 화도 많이 났을 거고 배신감을 크게 느끼셨을 가능성이 높다. 어디에 있는 무슨 고시원인지 위치도 이름도

밝혔으니 말이다. 

"생각보다 연락을 일찍 해줬네. 4월은 되어야 연락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그냥 침묵으로 대하는 게 그 상황은 맞았을 지도 모른다. 

"믿어주고 응원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울컥했다. 처음에 집을 나올 때까지만 해도 복수심과도 같은 마음을 품었다. 반드시 해낼 것이며 보란 듯이 이루어 내겠다고.

어차피 안 될 걸 왜 하냐는 말이 무색하게 금의환향하겠노라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어머니의 사과를 받았고 눈시울이 글썽이는 걸 막을 도리가 없었다.


목이 메여오고 말을 못하게 될까봐 급급하게 냉장고에서 마실 수 있는 걸 아무거나 집어들어서 목에 들이켜 부었다.

그게 내가 좋아하는 콜라인지 그냥 생수였는지도 기억이 안 날 지경이다.

나는 어머니께 사실대로 말했다.

처음이야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제대로 이유를 말해주지도 않은 채 무조건 적인 반대만을 하셨고, 시간이 지날 수록

원망스러운 마음이 커져만 갔다고. 부모가 나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지 않으면, 그리고 내가 스스로 일을 해서 번 돈으로 하는 거라면 애초부터

부모에게는 내 재수를 반대할 권리가 없는 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래서 지난 2월, 편의점 점장으로부터 월급을 받은 날에 지금 지내는 고시원을 계약했다고


이야기를 하다보니 조금 정리가 되는 것도 같았다. 오랜만에 집에 와서 저녁 먹지 않겠냐고, 좋아하는 치킨을 시켜주겠다는 어머니의 말에 나는 단 한치의 망설임과

고민 없이 "그럴게요 엄마."라고 답했다. 이번에는 피하지 않겠다고. 꼭 그리운 어머니의 얼굴을 보겠다고 했다.

지난 번에도 이야기했듯이 나를 낳아준 사람, 세상을 경험하게 해준 사람, 대가 없는 희생을 몇 년간 치러온 사람,  나의 어머니다.

이제 마음을 정리하겠다고 이젠 끝내보겠다는 마음으로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안에서 얼마나 가슴이 거렸는지 모른다. 원래 집에서 고시원까지 그렇게 멀리 떨어져있는 것도 아니고 버스로 금방 오고 가는 거리다.

하지만 그 날 그 버스에서 내 마음의 시곗바늘은 평소보다 더디게 움직이나보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집 근처 초등학교 정류장에서 내렸다. 다시 전화기를 붙들고 전화를 걸었다.

아까처럼 전화 키패드에 직접 입력할 필요 없다. 이미 아까전의 통화가 끝나는대로 연락처에 저장했으니 말이다. 

연락처에서 '어머니'를 찾아 바로 전화를 걸었다. 집 근처 초등학교 정류장에서 내렸다고. 이제 집으로 가겠다고.


그렇게 나는 한달 반만에 어머니와 재회했다. 오랜만에 만난 어머니의 모습은 그대로였다.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생겼던 눈가의 주름이나 웃으실 때의 입꼬리. 예전과 달라진게 하나도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거다.

몇 년만에 본 것도 아니고 한 달 반만에 본 거니까 말이다.

고시원 생활은 어떠냐고, 화장실 물은 잘 나오냐고, 바퀴벌레가 나오지는 않느냐는 등등의 질문을 하셨고

"혼자서 사니까 방해하는 사람 없고 좋던데요?"따위의 속마음과는 다른 농담을 건네곤 했다.

"잘도 그랬겠다."라며 "고생했을텐데."라는 말까지 덧붙이셨다. 어머니는 귀신이다. 내가 사실은 많이 보고 싶어했고 생각했을 거고

그러기엔 마음의 준비가 부족해서 연락하지 못했을 거라는 거 정도는 알아차리셨을 거다.


오랜만에 집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건 상당히 기분 좋은 일이였다. 마음 속에 맺혀있던 응어리가, 복잡하게 얽혀있던 실뭉치가

깔끔하게 풀어진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머니 한 사람뿐이지, 아버지에게는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내가 걱정했던 건 항상 '어머니'와는 대화도 원만하게 잘 통했는데 어머니를 못 보게 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훨씬 컸다.

아버지는 가부장적인 사람이고 상식과는 담을 쌓아온 사람이였다.


다음날 아침, 집을 나오면서 아버지한테는 이야기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고 어머니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해주셨다.

자주 연락하고 자주 찾아오겠다고 약속하고 집을 떠났다.

발걸음이 가벼웠다. 연락하지 않은 그 전까지 왠지 모를 죄책감과도 같은 감정을 느꼈다.

이게 과연 옳은일인가,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싶은 생각을 하루에도 몇 번씩 했다.

사실 일하는 편의점은 본가와 가깝다. 앞으로 집을 자주 들르며 밤새 편의점을 봐주고 아침에는 본가에서 잠을 청하는 식으로 일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아버지에게 연락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 한 켠에 신경이 쓰였다. 어머니에게는 연락도 했고 얼굴도 봤으면서 아버지한테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의 생활을 하기로 마음 먹은 결정적 계기는 아버지의 말 때문이였다.

아버지만큼은 정말 많은 시간과 용기가 필요할 것 같다. 어머니 때와는 딴 판으로 말이다.

어릴 때 맞기도 많이 맞았다. 이유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았다. 굳이 이유를 이야기 해보자면 자기 마음에 들지 않아서? 정도다.

어머니에게 연락을 한다면 자연스럽게 어머니를 통해서 아버지에게도 나의 소식과 근황이 전해질테니 어느 한 쪽에게만 연락하고

다른 한 쪽은 등한시한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그러지 않아도 괜찮을거란 믿음이 있었다.


그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만큼 홀가분한 마음으로 공부에 임했다. 평일은 계속 공부를 하되 금요일과 토요일 야간을 봐주니 수면패턴에 신경을 쓰는 것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나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의 노력이다.

나에게 주어진 일에 집중을 하다보면 시간은 금방 흘러가기 마련이다. 3월은 어머니를 만나 뵌 이후로 순식간에 지나갔고 4월도 끝나갈 무렵이 되었다.

편의점에서 받는 월급의 절반을 고시원의 월세로 납부하고 있던 나는 어머니와 이야기 해보기로 했다.

"고시원 생활 정리하고 다시 본가로 돌아와서, 집 근처에 있는 독서실을 다니며 공부하면 안 될까요?"


어머니께서는 된다고 하셨고 나는 안도감이 들면서 반가운 기색이 확 들었다.

하지만, 찬물을 끼얹듯이 말을 덧붙이셨다. 조건이 있다는 거다.

무슨 조건인지 물었고 어머니의 답은 "아버지와 화해하기."라고 하셨다.

순간 뇌회로가 정지했다. 나에게 '아버지'라는 사람자체만으로 트라우마와도 같은 공포를 가지고 있는데 말이다. 그 순간만큼은 정말이지 많이 고민이 되었다.

"늦게 빛나는 별도 충분히 눈부시다"는 말을 믿는 나와는 전혀 딴판으로 무작정 정시전형에서 합격한 대학교를 입학하라고 말씀하셨던 아버지. 

사가지 없는 세기를 키웠다고 저런 세기 쫓아내버려야 된다고 고함치던 아버지. 나와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나에게 모욕적인 언사와 폭력적인 행동을

서스럼없이 반복하셨던 그 아버지와 화해하란 거다. 


어머니가 실망스러워졌다.

그래서 어머니를 정면으로 똑바로 쳐다보고 말했다.

"어머니."



 
익인1
끊는 타이밍이 기가 막혀
2년 전
글쓴이
이어서 올려볼게요 ㅋㅋ
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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