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듣는 아버지의 목소리는 의외였다.
내가 예상했던 적개심이나 분노따위가 아니였다. 나와 큰 언쟁을 벌이기 직전의, 가정의 가장이자 나의 아버지로서의 평범한 말투였다.
지극히 평범한 목소리.
"힘들게 고생한 거 알고, 이제 막 스무살 된 애가 혼자서 살려면 힘들테니까 이제 그만 집에 돌아오라고 전화했었는데, 너 내 번호 차단했더라."라고 하셨다.
아버지 전화번호를 차단하는 아들이 어디있냐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하지만, 그 워딩과는 다르게 공격적인 어감은 없었다.
그래서 더 후회가 밀려왔다. 언제까지고 피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나의 존재를 만들어준 사람이고, 몇 년씩이나 대가 없는 희생을 치러온 사람이다. 어머니와 함께
나는 그런 사람에게 미운 마음이 들어서 얼굴을 안 보고 살았다. 거즘 반년을 말이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말 따위는 변명과 핑계로밖에는 들리지 않을 거다.
다음주에 집으로 오겠다는 말과 함께 통화를 마쳤다.
전화를 마치고 허무함이나 공허감따위를 느껴야만 했다. 특히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오라는 말을 전하고 싶었지만 차단 때문에
말하지 못했다는 말이 오랫동안 생각났다. 그렇게까지 나쁜 사람이 아니었는데 그런 사람 정도로 치부한 건 나였다.
시간이 돼서 아르바이트를 하러 편의점을 갔다. 편의점에서의 시간은 그 날따라 정말 순식간에 지나갔다. 원래 이러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머릿속이 정말 복잡한 상태로 본가에서 한숨 자고 고시원으로 돌아갔다.
하루가, 이틀이,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다시 출근을 하기 위해 본가에 왔다.
아버지를 보기로 한 날이다. 멀리서 아버지의 구형 그렌저차가 들어오는 게 보였다. 차량 번호판을 보고 알았다. 아버지라는 걸.
어머니와 함께 차에서 내리고 웃으며 나와 악수를 청하셨고 거기에 응했다.
집으로 들어가서 어떻게 지냈는지 아프진 않았는지 물으셨다.
잘 지내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꼭 말 하고 싶었지만 미뤄왔던 말을 하려고 했다.
많이 뜸을 들이고 침을 삼키고 용기 내서 말문을 때려고 입을 열었다.
"저 본가에서 지내게 해주세요."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