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남한내 고정간첩 5만명 암약...권력 핵심부에도 있다"
南베트남을 패망시킨 간첩 5만명...부정부패 이용 체제 파괴
김정일 "남한 통일시 2천만명 숙청, 1천만은 이민 갈 것" 공언
황장엽 "남한내 고정간첩들 권력 핵심부에 침투"
“남한 내에 고정간첩 5만 명이 암약하고 있으며 특히 권력 핵심부에도 침투해있다…. 그쪽(한국) 권력 깊숙한 곳에 이쪽(북한) 사람이 있다….
우연히 김정일의 집무실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보았더니 그날 아침 여권 핵심기관의 회의내용과 참석자들의 발언내용 등이 상세히 기록돼 있었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 망명 당시 서신)
남베트남은 경제력은 물론 군사력(당시 기준 세계 4위, 병력 58만 명)에서도 북베트남(월맹)을 훨씬 앞질렀다. 그러나 국가 지도자급 인사의 자제와 돈 있는 집 청년 10만 명 이상이 병역기피 및 해외 유학을 갔거나 군 출신 장군이 운영하는 사기업에서 일했다.
지도층의 사리사욕과 부정축재, 황금만능주의의 병폐가 체제 파괴세력들에게 공격의 빌미를 제공했다.
▲자유베트남은 민족주의자-평화주의자로 위장한 5만명의 간첩에 의해 패망했다. 사진은 1966년 5월 수도 사이공에서 열린 반전시위 장면이다
5만 명의 월맹간첩들은 민족주의자, 평화주의자, 인도주의자로 위장한 채 시민·종교단체는 물론 대통령비서실장과 장관, 도지사 등 권력핵심부를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간첩이었다는 사실은 미군의 전면철수 후 베트남패망으로 수많은 시민들이 죽어간 이후에나 확인됐다.
간첩들이 가장 많이 침투했던 것은 시민·종교단체의 부패척결운동과 반미·반전평화운동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선전선동을 통해 대중적 지지기반을 확대해가면서, 국방과 안보를 강조하는 사람은 전쟁에 미친 또는 정신 나간 사람으로 취급받았다.
▲자유베트남이 패망하자 미군 헬기를 타기 위해 필사의 탈출을 시도하는 사람들의 모습.
이후 베트남 사람들은 공산 치하에서 지옥을 경험하게 된다.
패망 당시 베트남에는 공산당원 9500명, 인민혁명당원 4만 명, 즉 전체 인구의 0.5% 정도가 사회의 밑뿌리를 뒤흔들고 있었다.
5만 명의 월맹간첩들은 민족주의자, 평화주의자, 인도주의자로 위장한 채 시민·종교단체는 물론 대통령비서실장과 장관, 도지사 등 권력핵심부를 장악하고 있었다.
공산주의자들의 국민 재교육은 "공무원은 제국주의의 앞잡이로, 경찰 및 정보요원은 제국주의의 도구로, 군인은 무력으로 총을 가지고 대항했던 사람으로, 문예인은 민족정신을 교란시킨 사람으로, 종교인은 국민을 유혹하여 미신에 빠지게 하고 우매하게 만든 사람으로, 자본가는 국민을 착취해 강압적 노동을 시켜 반혁명에 앞장을 섰으며 국민에게 피의 부채를 지고 있다"는 죄를 물어 재교육을 시켰다.
김정일은 “한반도 적화(赤化)통일 달성 시 1천만 명은 이민 갈 것이고, 2천만 명은 숙청될 것이며, 남은 2천만 명과 북한 2천만 명으로 공산국가를 건설할 것”이라고 했다.
북한 공산집단의 이 같은 주장을 절대 흘려들어서는 안 된다. 인간의 운명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
북한은 베트남 전쟁에서 조종사, 갱도병(땅굴파기 병사) 등으로 참전해 한국군과 미군을 공격했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북한 전투기 조종사들과 함께 사진을 찍은 호지명.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명 및 재산을 수호하는 것은 미국과의 방위공약도 아니고 공산당과의 협상도 아니다. 북한 공산 집단에 맞서 우리의 자유를 지키겠다는 의지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전쟁은 결국 ‘의지의 대결’이다. 한반도에서는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
북한은 핵무기를 기반으로 본격적인 ‘강성대국’ 진입시기인 2012년부터 한미연합사가 해체되는 2015년을 ‘남조선 혁명의 성숙기’로 보고 있다. 북한 급변사태에 앞서 북한에 의한 남한 급변사태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전면전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은 오히려 위험한 생각이다. 군사 안보전략은 반드시 비관론적 가정에 근거해야 한다. 근거없는 낙관론을 배격해야 한다. 지금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철통같은 총력안보태세를 다짐해야 할 때다.
김필재 기자 spooner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