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주문 30만장
신화, 2PM, EXO, B1a4, 빅스, 백퍼센트, M.I.B. 지난 주 MBC <음악중심>에 출연한 17팀 중 7팀이 남성 아이돌 그룹이었다. 다음 주에는 엠블랙이 컴백하고, 신인 그룹 방탄 소년단은 데뷔 티저를 공개했다. 신화는 1998년에 데뷔했고, 방탄소년단의 멤버 정국은 1997년생이다. 아이돌 그룹은 정말 오랫동안, 많이 나오고 있다.
소녀시대와 원더걸스가 시장을 강타하면서 걸그룹들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남자 아이돌 그룹들이 대중적인 붐을 일으킨 적은 없다. 오히려 최근에는 조용필, 싸이, 이효리처럼 오랜 관록의 솔로들이 시선을 집중시켰다. EXO는 왜 그래도 남자 아이돌 그룹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다. EXO의 새 앨범 < XOXO >는 선주문량이 30만장이고, 신곡 '늑대와 미녀'는 공개와 동시에 모든 음원 차트에서 실시간 차트 10위 안에 올랐다. EXO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그룹이라 할 수는 없다. 대신 그들은 자신들이 출연한 SBS <인기가요>에 2천여명의 팬을 모을 수 있다. 열광적인 팬덤이 있다면 모두에게 알려진 팀이 될 필요는 없다. B.A.P와 틴탑같은 신예들도 유럽 진출을 하는 요즘이라면 더욱 그렇다.
SMP는 왜 업계 표준이 되었나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에서 만들어낸 일종의 장르, SMP(SM Music Performance)는 이런 팬덤을 만들어내는 원천기술이다. 일반 대중은 '늑대와 미녀'의 무대에 당황할 수도 있다. 늑대인간이라는 콘셉트는 낯설고, 멤버들이 쉴 새 없이 움직이며 만들어내는 복잡한 대형과 안무는 기억하기조차 어렵다. 대신 집중력을 잃지 않는 팬들은 이 무대를 완벽한 판타지로 즐길 수 있다. '늑대와 미녀'는 사실상 <트와일라잇>과 <늑대소년>같은 영화의 뮤지컬이다. 늑대처럼 기어다니며 이동하는 멤버들이 '정신차려, 어쩌다 인간에게 맘을 뺏겨버렸나'라며 인간을 사랑하게 된 자신을 자책한다.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가 낳은 절박함과 두근거림. 많은 남자 아이돌 그룹들은 이 로맨스를 무대 위에서 실현하는 존재다. 늑대소년이 된 아이돌은 무대 밖의 여성에게 사랑을 보내지만, 팬은 그들에게 닿을 수 없다. 이 감정이 아이돌의 강렬한 퍼포먼스와 결합, 열광을 만들어낼 때 팬덤이 탄생한다. 같은 소속사의 샤이니도 'Dream girl'로 대중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퍼포먼스를 보여준 뒤, 'Why so serious?'에서는 '숨 쉬는 게 지겨워질 쯤 그 때 그대 발견!'한 좀비를 연기했다.
멤버들로 나무쯤은 만들어줘야 아이돌
팬덤을 만들 수 있는 명확한 마케팅 대상을 노리고, 그들이 가장 좋아할 수 있는 로맨스에 적합한 무대와 캐릭터를 찾아낸다. 그리하면 팬덤은 싼 음원 대신 비싼 음반과 공연과 굿즈를 열성적으로 소비한다. 이 수익구조를 발견한 SM, 또는 SMP가 시간이 지날수록 업계 표준이 되는 이유다,. 인피니트와 틴탑은 SM의 전유물처럼 여겼던 이른바 '칼군무'를 주무기로 내세웠다. 빅스는 뱀파이어와 <지킬박사와 하이드>의 하이드 등 인간과 사랑할 수 없는 존재들을 콘셉트로 내세우고, 스토리라인이 뚜렷한 안무를 선보이며 상승세다. BAP는 데뷔 당시 마치 H.O.T.의 데뷔 시절처럼 강렬한 비쥬얼과 노래로 10대 초중반 팬들의 지지를 얻기 시작했다. 유행가는 될 수 없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지금 이 순간 인생 최고의 노래다. 그렇게 남자 아이돌 그룹은 20년째 계속되고 있다.
10대의 로맨스를 노래와 퍼포먼스로 풀어내는 것은 어느 나라에든 존재할 수 있는 시장이다. 그러나 H.O.T. 시절 남자 아이돌 그룹은 한 세대의 소녀들에게 거의 공통된 경험이었다. 또한 음반 시장이 몰락한 지금도 인기 남자 아이돌 그룹은 여전히 10만장 이상의 음반을 팔 수 있다. 경쟁은 더 치열해졌고, 30-40대까지 있는 소비자들은 매우 까다롭다. EXO의 멤버 12명은 한 곡의 노래를 부르기엔 많은 숫자다. 그러나, 그들은 무대 위에서 한 멤버가 자신의 파트를 소화하는 동안 나머지 멤버들이 배경을 만든다. 그들은 복잡한 동선의 안무를 소화하고, 그들의 몸만으로 거대한 그림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댄서들의 도움 없이 이 모든 것을 해내야 실력을 인정받는다. 빅스도 군무를 정확하게 소화하면서 머리 색깔과 흑-백으로 나눠진 의상으로 멤버들의 캐릭터를 표현한다. 무대 밖에서는 이름이 적힌 완장을 차기도 한다. 그룹에 명확한 콘셉트를 입히고, 그에 걸맞는 무대를 만들며, 그 무대를 소화할 수 있도록 멤버들을 트레이닝 시킨다. 거기에 멤버마다 캐릭터를 부여할 전략도 짜야 한다. 한국에서 남자 아이돌 그룹은 정해진 규칙 안에서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야 하는 일종의 블록버스터인 셈이다.
새로운 시대의 시작
그러나, 남자 아이돌 그룹의 이런 산업적 특징이 오히려 딜레마가 된다. SM으로부터 시작된 남자 아이돌 그룹은 대부분 뚜렷한 취향을 가진 팬덤이 원하는 방향 안에서 완성도를 높인다. 그만큼 팬덤의 만족도는 올라가지만, 대중과의 거리는 멀어진다. 성인 아이돌 팬들이 이른바 '일반인 코스프레'를 하는 이유다. 그만큼 팬은 일반인들 사이에서 아이돌 그룹을 좋아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god나 빅뱅처럼 폭 넓은 대중성을 갖추거나 동시대의 트렌드를 이끄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당시 god에는 박진영과 방시혁처럼 그 시절에 가장 대중적인 감각이 뛰어난 프로듀서가 있었다. 빅뱅은 YG 특유의 음악적 색깔과 작곡부터 춤까지 각 파트에 재능이 있는 멤버들의 스타성이 절묘하게 결합한 예외적인 경우다. 빅뱅처럼 힙합을 기반으로 트렌디한 음악을 하는 남자 아이돌 그룹 중 성공사례는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자 아이돌 그룹에 투입되는 비용과 시간,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해외 시장에서의 영향력이 무색할 만큼, 남자 아이돌 그룹은 팬덤 바깥의 세상과 쉽게 만나지 못한다.
뛰어다니지 않아도 멋질 수 있다
이른바 '그들만의 리그'가 나쁠 것은 없다. 다만 팬덤이 그 자체의 힘만으로 거대한 신드롬을 일으켜 가요계를 뒤집은 것은 다섯명 시절의 동방신기가 마지막이었다. 또한 30-40대가 된 아이돌 그룹의 팬들은 본인들이 음악적으로도 좋아할 수 있는 곡을 듣기를 원한다. 빅뱅은 '거짓말'의 범대중적 히트 이후 가장 대중적인 남자 아이돌 그룹이 됐고, 인피니트는 1980년대 뉴웨이브 스타일의 음악을 아이돌의 군무와 결합해 30대 여성팬들에게도 열광과 음악적 지지를 동시에 이끌어냈다. 샤이니는 'Dream girl'로 SM도 얼마든지 대중적이면서도 화려한 댄스곡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줬고, 신화는 'This love'에서 일렉트로니카와 팝 멜로디 위에 복잡한 동선의 군무 대신 극도로 절제된 동작의 안무로 그들의 팬덤, 인지도, 관록에 필요한 균형을 절묘하게 맞췄다. 팬을 열광시키되 대중도 만족시키는 것은 마치 불가능한 미션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에 최대한 빨리, 가깝게 도달할수록 얻을 수 있는 것도 클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이전과는 또다른 남자 아이돌 그룹도 나오게 될 것이다. 이 장르아닌 장르에 다시 한 번 새로운 시절이 오고 있다.
글. 강명석 (웹 매거진 < ize >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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