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세요, 훼미리마트입니다." 편의점 문을 열자 들려오는 인삿말. 그런데 어째 들려오는 목소리가 상상과 조금 다르다. 고개를 돌려 편의점 카운터를 바라보니 20대 젊은이가 아닌 노인이 훼미리마트의 파란 조끼를 입은 채 미소를 띄고 있다. 지난해부터 전국 훼미리마트에서 속속 발견되는 이 풍경, 편의점 카운터를 접수한 해사한 노인들의 정체는 바로 훼미리마트의 시니어 인턴이다.
시니어인턴십은 노인 일자리 양성을 위해 보건복지부와 보광훼미리마트의 협업으로 탄생한 프로그램이다. 보광훼미리마트는 시니어 인턴십 희망자를 서류와 면접을 통해 선정하여, 서울 내 훼미리마트 지점 중 원하는 점포와 시니어 인턴을 연결해 주고 있다. 시니어 인턴은 한달을 주기로 지점을 옮기며 능력을 평가받는다. 시니어 인턴들은 인턴 기간이 끝난 후, 인턴실습을 했던 점포가 그들을 정직원으로 채용하기를 원한다면 취업을 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는 이 모든 과정에서 노인들의 인턴 실습비를 지원한다.
# 노인일자리 양성을 위해 시작된 '시니어인턴십' 프로그램
작년 처음 선을 보인 보광훼미리마트 시니어인턴십 프로그램은 시작과 동시에 노인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1차 사업 당시 150여명의 노인이 서류를 접수하였고, 최종적으로 20명이 선정되어 경쟁률은 7.5:1 정도였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선정된 노인들은 높은 열정과 노력으로 성과를 보여주었다.
"시니어인턴을 채용한 일선 현장에서 긍정적인 회답을 많이 받았습니다. 분명 노인 분들이 젊은 친구들에 비해 일처리 속도가 느리다던가 체력이 저하되는 등의 단점도 있었지만, 근면하고 신의가 있는 어르신들만의 장점이 좋았다는 점주들의 평가입니다." 시니어인턴십 프로그램 진행을 담당한 보광훼미리마트 영업기획팀의 임지훈 대리는 시니어인턴들에 대한 점주들의 평가가 실제로 높았다고 말했다.
현재 시니어인턴으로서 훼미리마트 현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노인들은 총 30명이다. 그동안 시니어인턴십에 참가한 노인들은 현장에서 적응을 못해 그만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대부분 바람직한 근무 태도를 보여주었다. 그 결과 보광훼미리마트는 올해 시니어인턴십을 150명으로 확대할 구상을 가지고 있다.
"작년에는 서울지역에 한정해 진행했다면 올해는 서울, 부산, 경기, 인천 등으로 그 지역과 인원을 확장하고자 합니다." 임지훈 대리는 올해가 본격적인 시니어인턴십 사업의 시작이라고 했다. 앞으로 참가자들이 일선 현장에서의 피드백을 받아들여 업무를 더욱 발전시켜 나간다면 노인들의 편의점 근무가 차츰 정착될 수 있다. 구직활동을 하던 노인들에게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 "매일매일 '이게 바로 내 할일이구나' 느껴" 김재욱 씨
"신문에서 시니어인턴십 공고를 발견한 순간 '이게 바로 내 할일이구나' 라고 느꼈죠." 김재욱 씨는 현재 훼미리마트 서울산업대점에서 근무하고 있는 시니어인턴십 참여자다. 은퇴하기 전에 그는 한 중소기업의 전무였다. 하지만 회사를 퇴직하고 퇴직 후 시작한 개인사업도 2007년 들어 접게 되자 그는 집에서 쉬게 되었다. 친구들과의 등산을 소일거리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김재욱 씨는 그러한 삶에 조금씩 불만을 느끼기 시작했다.
"일을 하지 않으니까 뭔가 건강관리도 잘 안 되고, 생활이 자꾸 불규칙적이 되는 것 같더라고요. 너무 일을 하고 싶었죠." 그러던 와중 시니어인턴십에 대한 정보를 얻은 그는 반가운 마음으로 즉시 필요한 서류를 작성해 접수를 했다. 뜨거운 경쟁의 면접과 실무교육을 통과한 후, 그는 개인이 운영하는 지점인 창동훼미리마트점으로 첫 발령을 받을 수 있었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손님들이 매일 들락거리는 편의점에서 일하는 것은 정적이었던 그의 삶을 동적으로 변화시켰다.
또 올해 1월에 훼미리마트 서울산업대점으로 발령받게 되자 그의 삶은 또 한 번 바뀌었다. 대부분의 손님이 대학생인 서울산업대점에서의 바쁜 나날은 김재욱 씨에게 신선한 기운을 불어넣어 주었다. 파릇파릇한 20대 대학생들과의 7시간을 보내며, 그는 종종 자신의 나이까지도 착각하곤 한다.
"애들이 '어르신은 우리 아버지보다 더 나이가 많으신데 진짜 젊어보이시네요'하면서 저한테 말을 걸어요. 그러면 저는 너희들이 나한테 기를 주니까 건강한 거라고 대답하죠." 하루 종일 서서 일하지만 그에게 힘든 노동은 고통이 아니라 기쁨이다. "서 있는 것이나 걸어다니는 것이 모두 운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히려 좋아요. 자연스럽게 건강관리가 되는 것 같아요." '이래봬도 젊은 사람들보다 걸음걸이도 훨씬 빠르다'며 연신 체력을 자랑하는 그는 진정 아름다운 제2의 청춘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 노년 일자리, 앞으로는 숫자와 다양성이 중요
김재욱 씨는 노인 일자리의 수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자리의 다양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보통 노년의 일자리하면 정부가 생활고에 시달리는 노년층을 위한 일자리만을 생각하는 것 같아요. 물론 그런 일자리도 많이 필요하지만, 노년일자리를 그렇게 너무 특정한 대상에만 한정하지 않았으면 해요. 왜냐하면 노인들 중에도 젊은 층과 마찬가지로 경제적인 가치와는 무관하게 자기만족을 위해서 일을 하고 싶은 사람들도 많이 있거든요. "
김재욱 씨 역시 사실 시니어인턴십에 참여할 필요가 없을 만큼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편에 속한다. 하지만 그는 그야말로 노동이 안겨주는 인생의 바람직한 균형을 위해 시니어 인턴십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보다 많은 노인들이 이 인턴십을 경험했으면 한다는 말과 함께, 그는 시니어인턴십 선배로서 제 2의 출발을 계획하는 노인들이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에 대해 조언도 잊자 않았다.
첫째 자신의 체력에 맞는 일자리를 선택하라고 했다. 스스로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고 자신의 소화할 수 있는 일자리를 골라야 한다는 것이다. 두번째로 그는 어제의 직업은 잊어버리고 현재의 나에 대한 생각만을 갖고 일자리를 선택하라고 했다.
"예전에는 내가 이런 인물이었는데' 하는 자만심을 머릿속에 가지고 있으면 일을 할 수 없어요." 실제로 업무 담당자가 말하는 노인들의 가장 큰 안타까운 점도 바로 과거의 경력에 대한 집착이다. 이제 새 출발을 해야 한다고 마음먹고 본연의 자신만을 생각하면서 일을 해야만 모든 일에 만족하면서 일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그는 현재 회사의 경영방침에 따르라고 했다. 과거 회사에서의 업무 방식을 잊어야 한다는 것이다. 본인의 경우도 전기 산업에 종사하였던 사람이지만, 현 직장 훼미리마트의 경우에는 서비스업이므로 오로지 서비스적인 마인드로 접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자료에 따르면 2004년 노인일자리 사업이 시행 된 이후 참가자 수와 예산 규모는 꾸준히 성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수요에 비해 노인들의 욕구충족률 그리고 양적-질적 규모는 매우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급증하는 노인인구의 사회참여 욕구에 대응을 위해서는 정부, 지자체가 보다 다양한 노인일자리를 적극 개발하고 지원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제도적 뒷받침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보건복지부 대학생 기자 황경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