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일본에서 왔는데, 이 곳이 제가 좋아하는 아이돌의 뮤직비디오에 나온 곳이라, 한 번 똑같이 사진을 찍어 보려고 왔어요. ”
“저희는 고3같은 반 친구인데, 야자에 찌들어 있다가 내일부터 연휴라서 한번 이렇게 쉬러 나왔어요. 자주 못 나오거든요.”
“혹시 같이 공유하는 꿈 같은 게 있나요?”
“저희 나중에 동업해서 돈을 벌고 싶어요.”
“동업하면 서로 마음 상할 수도 있지 않나요?”
“저희는 아직 순수해서 그런 거 몰라요. 제가 정말 돈을 들고 튈까요?”
"사진이요? 아, 부끄러운데.."
“러시아에서 인터넷에 있는 가이드를 읽어보니, 한강 남쪽에 성이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서울에 와서 그 주소로 가보니 성을 못 찾아고, 언덕을 왔다갔다하며 세 시간을 해맸어요.”
“무슨 성이었는데요?”
“몽촌토성이요. 나중에 알고보니 그 언덕이 성이더라구요.”
“커서 뭐가 되고 싶어요?”
“공주요.”
“길거리 공연을 하다보면 지나가던 비보이가 와서 춤을 추기도 하고, 일반인 분들도 가끔 춤을 추세요. 한 번은 제 길거리 공연에 장애인분들이 휠체어를 타고 오셨는데, 제 음악을 들으시더니 갑자기 휠체어에서 일어나셔서 춤을 추시더라구요.”
“내가 85세야. 전라도 남원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하다가 서울로 왔어.”
“특별히 기억나는 초등학교 제자가 있으세요?”
“예전엔 있었어. 근데 그 제자들이 하나 둘씩 죽었어. 그래서 기억하기가 좀 그래. 그거 만큼 슬픈 일이 없어. 나한텐 영원한 아이들이었거든.”
“제가 이스라엘에 여행을 갔었어요. 여행 동안 거적대기를 쓴 채 인도에 앉아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죠. 그러다 다른 한 이스라엘 사람이 자기 기타를 가지고 제 옆에 앉더니 같이 노래를 부르더라구요. 그리고 또 다른 두 사람이 기타를 가지고 합류해서 4명이 노래를 불렀는데, 그 때 또 우연찮게 비보이들도 지나가다 절 발견하고 저희 앞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어요. 그랬더니 마을 사람들이 전부 다 나와서 다 같이 춤을 추는 축제가 되더라구요.”
“거기가 외국인데 무슨 노래를 부르셨어요?”
“사실 아무 가사도 없었어요. 그냥 라랄라라라랄라~!”
“가장 용감했던 순간이 언제였나요?”
“15살 때 전 왕따였어요. 그 때는 한 반이 60명이었는데, 선생님은 절 상습적으로 구타했고, 아이들 모두가 절 왕따시켰어요.”
“왜 아이들이 왕따를 시켰나요?”
“선생님이 뭔가 잘못된 걸 가르치는데 저만 그건 아니라고 했거든요. 아이들은 선생님이 무서워서 절 왕따시켰구요. 부모님도 절 잘 이해하지 못 하셔서, 저는 죽기로 결심했어요. 로맨스 소설을 보면 주인공들이 폐렴 같은 병으로 가련하게 죽잖아요. 제 15살의 감성엔 그게 좋았나봐요. 그래서 폐렴에 걸리려고 4월에 두꺼운 코트를 입고 일부러 비를 왕창 맞았어요.”
“그리고 어떻게 됐나요?”
“물론 전 죽지 않았고, 대신 꿋꿋하게 살아남기로 했어요. 절대 그 결정을 후회하지 않아요.”
“저희 집은 가족끼리 싸우면 무조건 1시간을 넘지 말자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어요. 싸우면 각자 방으로 가는데 30분을 못 넘기고 다시 거실로 모여요. 이 때 항상 누구 한 명이 장난을 치죠. 그럼 웃음이 나와서 분위기가 다 풀려요.”
“보통 어떤 장난을 치나요?”
“엄마한테 ‘장여사 살 빠졌어’라고 말해요. 사실 살이 하나도 안 빠졌는데. 그러면 엄마가 웃어요.“
“머리를 왜 이렇게 노랗게 염색 했어요?”
“나이를 더 먹기 전에 파격적인 걸 해보고 싶었어요. 서른 살 전에…”
“제일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냐구요? 질문이 왜 이렇게 어렵나요. 저 집에서 이메일로 인터뷰 내용 보내드리면 안 될까요? 정말 생각이 잘 안 나요..”
“부인이 한국인입니다. 그래서 1975년에 장모님을 뵈러 처음 서울에 왔죠.”
“1975년 이후 무엇이 가장 인상적으로 변했나요?”
“1970년대에는 한국인들이 찻집이라는 곳에서 친구를 만났습니다. 커피샵은 거의 없었죠. 아무튼 커피가 너무 비쌌습니다. 전통적인 찻집에서 커피를 시키면 크림을 넣어줬는데, 크림을 마치 금을 넣는 것처럼 진짜 진짜 진짜 조금 넣어줬어요. 농담이 아닙니다. 그냥 그걸 지켜보는 게 재밌었어요.”
“한국에서 지내시면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뭐였나요?”
“한국의 아줌마들이요.”
“왜 그렇죠?”
“한국 아줌마들은 정말 친근하고 외향적이예요. 전 정말 그들을 좋아해요. 비록 한국어지만 낯선 사람인 저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쉽게 터놓고 말하더라구요.”
"은퇴 후에 교육을 받고 2006년부터 청계천에서 관광객에게 역사를 소개해주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어요."
"왜 봉사활동을 시작하시게 됐나요?"
"노후엔 정말 의미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거든요."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요? 저는 고등학교 때 친구들하고 같이 야자 땡땡이 치고 돌아다닌 게 제일 행복했어요."
"그 때 친구하고 뭘 하셨어요?"
"이야기요. 친구들하고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정말 그게 행복했어요."
“가장 잘 한 인생의 결정이 뭔가요?”
“저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취업한 게 가장 잘 했던 결정인 것 같아요.”
“그럼 가장 잘 못한 인생의 결정은 뭔가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에 가지 않았다는 점이요.”
“여동생의 뭐가 제일 좋아요?”
“항상 저랑 같이 놀아줘서 좋아요.”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나요?”
“저는 집 냉장고에 소주병을 쌓아놓고 혼자 집에서 마셔요. 그게 제일 행복한데, 친구들은 집에서 제가 혼자 소주 마시는 걸 처량하게 보더라구요. 전 진짜 행복한데…”
“저는 초등학생입니다.”
“어버이날을 맞아 유치원생들에게 한 마디 조언해준다면?”
“지금이라도 부모님 말씀 잘 듣고, 떼쓰지 말자.”
"캡틴 아메리카 같나요? 근데 얼굴은 못 보여드리겠어요."
캡틴 코리아는 집을 지킵니다.
“SNS보다 손편지 를 많이 썼으면 해서 시작했어요. 여기 행사를 하다 지켜보면 생각보다 아이들이 엄마한테 손편지를 많이 쓰는데, 아이들의 순수함 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아요. 뭔가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서로의 마음을 더 잘 느끼는 것 같아요.”
“(여자) 친정과 시댁에 인사 갔다오는 길에, 한복을 입으면 덕수궁 입장료가 무료라고 해서 잠시 들렀어요. 언제 이렇게 한복 입고 돌아다녀 볼까요. 거의 덕수궁 알바였어요. 주변의 어르신들은 곱다고 하고, 중국인 관광객들은 와서 같이 사진 찍자고 하고, 지나가던 일본인들은 ‘카와이’라고 하더라구요.”
“(남자) 아마 절 보고 하는 거겠죠?”
“사람들이 저한테 여기 청계천에서 뭐하냐고 자주 물어봐요. 분위기 좋은 데서 책 읽는 게 어색한 시대가 벌써 왔나요.”
“가장 슬픈 순간이요? 넘어지기 전에 넘어질 거라는 걸 알게 돼요. 근데 몸이 넘어가는 걸 알면서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 거예요. 또 이상하게 그땐 시간이 천천히 흘러요. 그냥 알면서도 넘어지는 거, 그게 너무 슬픈 거예요.”
“(부인) 결혼한 지 37년이 됐어요.“
“처음에 남편 분께 어떻게 다가가셨어요?”
“(부인) 예전에 둘이 교회에서 봉사활동을 같이 갔는데, 아이들한테 동화책을 읽어주는 시간이 있었어요. 근데 봉사자는 많은데, 책이 하나밖에 없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의 남편과 가까워지려고, 일부러 책을 같이 들고 가까이 붙어서 읽었죠.”
“(남편) 그랬었어? 난 지금 처음 알았어.”.
“항상 손주를 업고 다녀요. 제가 지방에 살아서 자주 못 보거든요.”
“난 일생에서 수염을 길러 본 적이 없었어. 근데 은퇴를 하고 독일의 한 백화점을 가보니까 점원이 수염을 기른 거야. 어라, 나도 길러봐야지 하고 길러봤어. 그랬더니 어라, 부인도 자녀들도 괜찮다고 하는 거야.”
오늘.. 아니 200년전 패션
오늘의 패션
"저는 초콜릿 가게를 하는데, 하루는 어떤 남자 손님이 혼자 와서 ‘우리 사귈래요?’라는 멘트를 초콜릿에 넣어달라고 했어요. 제가 다 만들어드리자마자 그 분이 바로 여자 분을 데리고 오시더니 바로 짠하고 초콜렛을 개봉하시라구요."
“왜 길에서 연습하고 계세요?”
“저희는 대학 치어리딩 동아리인데 공모전 준비하고 있어요”
“활동하기 힘들지 않나요?”
“힘들지만 우리 모두 열정! 패기! 끈기!로 하고 있어요.”
"머리색을 이렇게 바꾸고 나니, 외국인들이 절 아이돌로 착각하고 싸인 받으러 와요. 저 아이돌 아니에요. 부끄럽네요."
“새가 도망가지 않아요?”
“아니요. 저하고 가게에서 같이 살아요. 가끔 삐지기도 하지만 결국 돌아와요.”
“처음 만난 지 10년이 넘어 결혼하게 되었어요. 그냥 일반 결혼식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랑을 했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들려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지난 연애의 기록을 담은 사진 전시회를 열었어요. 이 전시회는 저희가 작가로 데뷔하는 아마추어 사진전이면서 동시에 저희 결혼식이기도 합니다.”
"무사히 돌아오세요."
"큰 음료를 들고 어디 가세요?”
“살 빼려고 운동 가고 있는데 수분 보충 먼저 하고 있어요.”
"운동하고 나서 뭐 안 드세요?”
"끝나고 바로 밥 먹어요.”
"잘 되나요?”
"더 찌는 거 같아요. 망했어요."
"친구가 된지 1년 됐어요. 서로 패션에 관심이 많아 일도 같이 하고, 같은 집에 사는 데 한 번도 싸운 적도 없어요. 심지어 알고 보니 둘 다 중3 때 문신을 처음 했더라구요."
“본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결정은 뭐였나요?”
“저는 고등학교를 일찍 그만두고 검정고시 봐서 대학에 갔어요. 전 후회하지 않아요. 남들보다 꿈에 먼저 다가가잖아요.”
“가장 슬펐던 때가 언제였나요?”
“전 사실 가장 슬펐던 떄와 행복한 때가 겹쳐 있어요. 제가 오토바이를 타다 교통사고가 나서 목뼈 1,2번이 아작 났어요. 병원에서는 죽거나 식물인간이 된다고 했죠.”
“그 후 어떻게 됐나요?”
“이렇게 살아있잖아요.”
“제 주변에 19살 쯤 되는 애들도 벌써 취업 걱정을 해요. 이건 뭔가 아닌 것 같아요. 20대에는 정말 해보고 싶은 걸 해야 해요. 서른 살, 마흔 살이 넘어선 아마 해보고 싶은 걸 못 해 본 걸 후회할 거예요”
“제가 일본의 요요기 공원에서 길거리 공연을 하고 있었는데, 한 외국인이 와서 제 사진을 찍고 제게 페이스북 하냐고 묻더라구요. 그 땐 제가 페이스북 아이디가 없어서 안한다고 했더니, 제 뺨에 뽀뽀를 해주고 갔어요.”
“환갑도 넘어서 이 나이에 할 수 있는 게 사실 별로 없어. 그냥 언젠가 쓰러지는 거야. 대신 온기를 남겨야 해. 그래서 난 글거리를 찾아 돌아 다니면서, 글과 시를 쓰고 있어. 언젠가 내 후손이 보면 그 온기를 느낄 수 있게.”
"인생에서 제가 제일 잘 한 결정은 결혼이에요. 제가 순정만화를 정말 좋아했는데, 순정만화를 보면 잘 생기고, 운동도 잘하고 친구관계도 좋은, 모든 걸 갖춘 남자가 보잘것 없는 여자에게 다가온다는 설정이 있잖아요. 지금 남편이 그래요. 아, 외모는 빼고요."
“What has been the most difficult thing for you as a father?”
“The times when my hunch proved to be correct.”
“What was your hunch?”
“I wanted to do well as a father; however, I felt like I didn’t handle things so great in the moment.”
“가장으로서 가장 힘들었을 때가 언제였나요?”
“제 예감이 맞아 버렸을 때였죠.”
“그 예감이 뭔가요?”
“그건 가장으로서 잘 하려고 하고 싶었지만, 뭔가 잘 안 된다고 생각될 때였죠.”
Humans of Seoul -> http://humansof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