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잡년행진'에서 벌어진 브래지어 해방운동 ⓒ 양태훈
비도 오고 찌뿌드드한 요즘. 샤워를 하고 옷을 입는데 얼마 전 친구에게 듣고 '빵' 터졌던 유머가 생각난다. '난 하루만 못생겨봤으면 좋겠어, 왜냐하면 난 매일 못생겼으니까'. 그래, 이런 '꿉꿉'한 날, 나는 하루라도 이 답답한 브래지어를 안 해봤으면 좋겠어. 왜냐하면 난 어쩔 수 없이 매일 하고 다녀야 하니까.
'브래지어(brassiere)'. "가슴을 감싸는 여성용 속옷. 유방을 받쳐주고 보호하며 가슴의 모양을 교정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신축성 있게 만든다"라고 백과사전에 정의되어 있다. 실제 브래지어를 착용하는 여성들은 브래지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까. 브래지어를 착용한 지 15년이 된다는 박경희(30, 가명)씨는 "이런 날씨에는 정말 하기 싫다"며 "덥고 답답하지만 안 할 수는 없지 않나"고 한숨을 쉬었다. 하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기자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며(기자는 남자다), "솔직히 안 하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나를 보겠나. 그런 여자로 보이고 싶지 않다"고 일갈했다. 그렇다면 브래지어를 막 착용하기 시작한 여성은 어떻게 생각할까. 초등학교 6학년인 이경희(13)양은 "브래지어를 하기 시작한 지 반년 정도가 되지만, 이런 더운 날씨에는 정말 힘들다"고 토로했다. 덧붙여 "이런 불편한 브래지어를 앞으로 거의 평생 해야 한다니, 암담하다"고 말했다.이런 브래지어의 불편함을 떨쳐버리려는 움직임들이 요즘 들어 다시금 샘솟고 있다. 얼마 전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졌던 '잡년행진(Slut walk)'의 주된 테마 중 하나는 '브래지어를 벗어버리자'는 것이었다.
또한 브래지어의 불편함에 관한 에피소드를 다룬 웹툰이 얼마 전 연재됐다. 포털 사이트 '다음'에서 연재된 <이너 다이어리>가 그것이다. 7월 25일, <이너 다이어리>를 그린 최호진 작가와 이메일 인터뷰를 해보았다.
▲ 웹툰 <이너 다이어리> 최호진 작가 ⓒ 최호진"불편함 이해한다면, 그녀의 선택을 존중하게 될 것"
- 웹툰 <이너 다이어리>를 그리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혹시 이에 얽힌 에피소드가 있다면 간략히 언급해주세요.
"브래지어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는데 놀라움의 연속이었습니다. 브래지어로 인해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을 받는 여성이 있다는 것이나, 그것을 착용하지 않음에 대한 사람들의 거부감, 뿐만 아니라 평소 브래지어를 답답하고 불편하다고 느끼면서도 그것을 착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단 한번도 한 적이 없는 저 자신에게 놀라웠습니다.
작년 여름 처음으로 '노브라'로 외출을 시도해보았는데(유두에 살색 테이프를 붙였으니 엄밀히 말하자면 완벽한 노브라는 아니었습니다) 아주 시원하고 편했습니다. 하지만 딱 그뿐이었습니다. 멋을 부리고 싶은데 노브라를 하면 옷맵시가 살아나지 않아, 집 근처나 편한 자리에 나갈 때만 제한적으로 노브라 외출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쉽지 않았습니다. 외출할 때마다 테이프를 찾아 붙어야 하는 게 번거로웠고, 테이프을 붙인 피부에 염증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냥 나가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노브라로 다닌다면 이런 불편함은 없을텐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저의 생각을 친구들에게 이야기해봤더니 '왜 브라를 하지 않느냐'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유는 브래지어(정확히는 브래지어 속의 '왕뽕')가 '작은 가슴'을 해결해준다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여자임에도 이렇게 다른 생각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에 또 한번 놀랐습니다."
- '브래지어 해방'에 대해 시민들과 지인들의 의견을 들어보니 여성들은 '공감하지만 남의 눈이 신경 쓰인다'는 의견이 대다수였고, 남성들은 '남의 여자는 몰라도 내 여자는 안 된다'라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이렇게 다른 의견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대다수의 여성들이 브래지어를 착용하고 있으며, 그것을 하지 않으면 남자들뿐 아니라 여자끼리도 이상하게 여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들이 본인의 편안함보다는 평범한, 흔히들 말하는 '상식적인' 사람이 되는 쪽을 택한 듯합니다.
하지만 제 주위의 일부 여성들은 그런 문제보다는 몸매를 예쁘게 보이게 하기 위해 브래지어를 고수하는 쪽입니다. 여성들이 말하는 '남의 눈이 신경 쓰인다'는 것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옳지 못한 행동으로 다른 사람의 시선을 끌기 싫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여성으로서 멋지게 꾸미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기 싫다'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성 분들의 의견에 대해 말씀드린다면… 아, 이건 정말 어렵군요. 제가 그 깊은(?) 속내를 알 수는 없지만, 개방적인 사고를 가졌다고 자부하면서도 자신의 여자에게만 보수적인 태도를 고수하는 '일부' 남성들의 의견이라고 생각됩니다. 아무래도 브래지어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너 다이어리>의 등장인물 '연철'은 노브라를 주장하는 '기영'을 비난합니다. 그 이유는 노브라 자체가 문제라는 게 아니고 공공 장소에서 노브라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브래지어에 대해서 아는 거라곤 '모든 여자들이 착용하는 속옷'이라는 것 정도입니다.
다른 남성분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모르는 게 당연합니다. 착용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것이 내가 사랑하는 여자에게 어떤 느낌을 주고 있는지, 그로 인해 그녀가 어떤 불편함을 겪고 있는지 이해하게 된다면 그녀의 선택을 존중하게 되지 않을까요?"
▲ <이너 다이어리>의 한 장면 ⓒ 최호진브래지어도 러닝셔츠처럼 '선택할 수 있는 것'일 뿐
- <이너 다이어리>의 주제는 '브래지어는 선택할 수 있는 것, 또는 필요 없는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브래지어 착용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브래지어를 남자들의 러닝셔츠와 같은 선택의 문제로 받아들이면 된다"는 얘기를 하는데, 이에 대한 의견은 어떠신가요?
"<이너 다이어리>의 주제는 '이해'입니다. '브래지어는 필요 없는 것'이라는 주장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아직 마지막회가 공개되지 않은 시점이라 그런 듯합니다(연재는 7월 31일에 종료됐다). 혹은 부족한 저의 표현력 때문일지도 모르죠. 저는 브래지어가 필요 없는 물건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정말 필요한 물건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구요.
다만 타인의 강요로 브래지어를 하게 되거나, 그것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비난받거나 이상한 사람처럼 여겨지는 것이 싫었습니다. 여자들이 사실상 그들의 전유물인 하이힐, 스커트, 긴 머리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비난받지 않는 것처럼 브래지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 <이너 다이어리>에 대한 독자들의 '호불호'가 많이 갈립니다. 평점을 최고인 10점을 넘어 20점까지 주고 싶다는 독자도 있는가 하면, 내용이 이해되지 않고 공감이 가지 않는다는 독자도 상당수 있습니다. 이런 차이가 나타나는 것은 어떻게 보시나요?
"연재 전부터 호불호가 갈릴 것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습니다. 연재를 준비하면서 극단적으로 보여질 것 같은 내용이나 대사들은 자체 검열했는데도 호불호가 갈린 것은 아직까지는 여성들이 브래지어를 착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갑'이기(대다수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같은 것을 보고 여러 의견이 나오는 것은 꽤 멋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만화를 보시고 긍정적이든 혹은 그렇지 않든 독자님들이 뭔가를 느끼셨다면 그것은 온전히 독자님들의 것입니다. 거기서 오는 간극을 경험하는 것은 작가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닐까요. 물론 부정적인 부분이 월등히 많다면 좀 슬프겠지만요.
다행히도 <이너 다이어리>를 좋은 쪽으로 봐주시는 분이 훨씬 더 많아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내가 그린 만화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너 다이어리>를 보고 브래지어를 벗었더니 아주 편하더라는 내용의 댓글을 보고 큰 보람과 희망을 느꼈습니다."
아직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은 브래지어가 주는 불편함을 그저 여성으로서 묵묵히 '감수해야 할' 것으로 받아들이는 듯싶다. 브래지어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이상한 눈으로 볼 것이 아니라 단순히 '선택할 수 있는' 의복의 문제로 생각할 수는 없을까? 남성의 러닝셔츠와 여성의 브래지어 사이의 인식의 차이는 없어져야 할 것이다.
여성들이 브래지어를 하지 않는 것과 남성들이 러닝셔츠를 하지 않는 것의 의미가 똑같아지는 그날, 그날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