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와 일왕(전범자새끼)의 부인이자 아키히토 일왕의 어머니.
방계 황족 출신으로 맏며느리 미치코 황후에게 악독한 시집살이를 시킨 것으로 악명이 일왕가의 희대의
(마치 이누야샤의 악당을 떠올리게 하는 젊은시절)
큰아들 아키히토 황태자가 평민 여성 쇼다 미치코와 결혼하겠다고 하자, 나가코 여왕은 대노하여 친정, 시댁 여성들을 총동원해서 미치코 여왕을 반대하고 집안 또한 못 살게 굴었지만 쇼다 미치코가 맏며느리로 시집오자, 그녀를 몹시 미워하여 호된 시집살이를 시켰다.
(늙을 수록 성질이 얼굴에 덕지덕지)
같이 왕따시키던 세츠코 비와 키쿠코 비는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감정이 누그러져 미치코 황태자비와 친하게 지냈고, 특히 자녀를 낳지 못한 그녀들은 미치코 황태자비의 아이들을 손자ㆍ손녀처럼 귀여워했다. 하지만 나가코 여왕는 죽는 순간까지도 큰며느리를 그렇게 미워했다고 한다. 덤으로 시어머니가 황족 서녀였는데 시어머니가 며느리한테 열등감을 느꼈다고 할 정도이다.
2. 미치코여왕
미치코는 가루이자와에서 열린 테니스 시합에 참가했다가 아키히토 황태자를 만났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게 되었지만, 전통에 따르면 그동안 황실의 신붓감은 황족 내지는 화족으로 쇼다 가문은 황태자의 청혼을 정중하게 거절하며 몇 달 동안 미치코를 미국과 유럽으로 여행보냈다.
1958년 10월 20일, 미치코는 미국 여행 도중에 만 24세의 생일을 맞았다. 그날 미치코는 나이아가라 폭포를 바라보며 '여기에 빠지면 어떻게 될까?' 하며 자살까지 생각했다고. 이렇게 쇼다 가문도 미치코 본인도 괴로워했으나, 아키히토 황태자의 끈질긴 청혼에 결국 굴복하고 말았다.
결혼을 앞두고, 친정어머니 후미코와 함께. 후미코의 근심스러운 표정이, 미치코의 앞날을 예고하는 것 같다. 화족 가문 출신인 어머니 후미코는 누구보다 현실을 잘 알고 있었다.
미치코는 몇 달 동안 황실의 일원이 되는 데 필요한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혼수. "결혼 비용을 여행하는데 다 써버렸어요. 가방 하나만 들고 가더라도 저를 받아주실 수 있다면…"이라는 미치코의 말에 아키히토 황태자가 "OK"라고 한 것과 달리, 쇼다 가문은 억지로 딸을 시집보내면서 어마어마한 혼수까지 준비해야 했다.
무려 6t 트럭 3대 분량으로, 당시 금액으로 약 3,000만 엔이며 현재 시세로는 약 3억 엔(30억)이다. 재벌가의 딸이 아니었다면, 기둥 뿌리를 뽑아도 모자랐을 것이다.
1959년 4월 10일, 결혼식을 올렸다. 평민 출신의 미치코가 황태자비가 된다 하여 미치 붐이 크게 일었으며, 두 사람이 만난 계기가 된 테니스 또한 크게 유행했으며,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는 결혼식을 보려는 사람들 때문에 흑백 텔레비전이 불티나게 팔렸다고 한다.
평민 출신의 신붓감에 대한 일본 황실의 반발은 대단했다.
다만 쇼와 덴노는 "이제 황실에도 새로운 피가 필요하다."며 평민 출신의 큰며느리를 감쌌지만, 미국한테 핵 얻어맞고 정신 차린 듯 시어머니 나가코 황후는 미치코를 몹시 미워했다.
그나마 첫째 시누이 히가시쿠니 시게코는 남동생 부부에게 보내는 응원의 메시지를 신문에 게재하기도 하고, 미치코 황태자비를 친정 가족들과 함께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파티를 열어주는 등 관대한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시게코는 미치코 황태자비가 황실로 시집온 지 2년 뒤인 1961년에 죽고 말았다.
갖가지 시집살이 에피소드
-장갑 사건
약혼 기자회견 때 황실로 시집가는 딸에게 심사숙고 하여 의상을 골라 사진을 찍은 뒤 황실 직원에게 보냈는데 짧은 장갑은 안된다며... 하지만 당시 긴 장갑은 황실에서만 써서 구할 수가 없어서 결국 직원이 보내준 긴 장갑을 끼고 무사히 기자회견을 마쳤지만 짧은 장갑을 낀 사진이 나돌아 황족 화족들이 차례대로 나가코 여왕 집안에 전화를 걸어 개쌍욕한 사건.
- 창문 사건
옆에 앉아있는 심술궂은 표정의 여성은, 당시 동궁(東宮)의 궁녀장인 마키노 쥰코이다. 1960년 2월 23일, 미치코 황태자비는 궁내청 병원에서 첫아이 히로노미야 나루히토 친왕을 낳았다. 병원에서 퇴원하여 자동차를 타고 궁으로 돌아가는 길, 기자들이 갓난아기의 사진을 찍으려고 몰려들었다. 미치코 황태자비는 그들을 배려하여 창문을 살짝 열어주었는데, 이 일로 시어머니 나가코 황후 및 여러 사람들로부터 호되게 꾸중을 들었다. 아기가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창문을 열었느냐고; 안 열어주었으면 또 그거대로 혼났을 것 같은데...
-투명인간
매번 연회 때마다 그들은 자신들끼리만 반갑고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으며, 미치코 황태자비는 못 본 것처럼, 마치 투명인간이라도 되는 것처럼 무시했다고... 레알 막장 드라마네;
- 공항 사건
시집 온 이래 최대이자 최악의 모욕사건으로 1976년, 쇼와 일왕과 나가코 여왕이 미국 순방을 떠날 때 황족들이 모두 공항까지 따라 왔는데 전국적으로 생중계 될 때 다른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는데 일왕과는 웃으면서 인사하고 나가코하고는 쌩깠다고... 그야말로 전국적인 개망신으로 일본인들이 궁중 이지메를 생중계로 본 날이었다.
- 의상 사건
정말 유치한 일인데, 공식 석상이나 행사에 참석할 때면 미치코 황태자비만 쏙 빼놓고 자신들끼리만 무슨 옷을 입을지 미리 짰다고도 한다. 옛날 사진들을 보면 미치코 황태자비 혼자서만 다른 색상의 옷을 입고 나오거나, 다른 사람들은 기모노를 입었는데 미치코 황태자비만 양장을 입고 나온 모습들이 있다. 혼자만 튀어 보여서 무안해지게 하려는 고도의 이지메.
- 황후가 된 뒤에도 나가코여왕은 꼬장꼬장 정정하게 살아서 계속 미치코 여왕를 괴롭혔고, 원래 나쁜 놈은 오래 사는 법. 저승사자도 잡아가기를 꺼려할 정도로 악독하면 오래 산다고 한다. 1993년 10월 20일에 쓰러져 실어증 증세를 보이기도 했으나 이듬해인 1994년에야 회복. 2000년 6월 16일에 나가코 태후가 죽은 후에야 미치코 황후의 시집살이는 끝났다. (장수하면서 며느리가 할머니가 된 후에도 어마무시하게 괴롭힘.)
미치코 황태자비는 혹독한 시집살이를 당하면서도, 황실 생활의 여러 면에서 수천 년 동안 전해져 온 전통을 깨고 파격적인 면모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 내용을 보면 '가정적', '인간적'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궁성 내의 산전(産殿) 대신에 궁내청 병원에서 출산했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친부모의 품에서 떼어내 신하들에게 양육을 맡기는 전통을 깨고 2남 1녀를 직접 자신의 품에서 젖을 먹여 키웠으며 가족들을 위해 직접 요리를 했다.
남편 아키히토 덴노와도 금슬이 좋다고 한다. 아들 나루히토 황태자도 그렇고, 예상보다 애처가들이 많다. 사실 황실에서 시집살이하면서 온갖 푸대접을 받았음에도 남편을 내조했다는 점에서도 대단하다고 볼 수 있겠다.
테니스를 통해서 처음 만난 것 때문인지, 지금도 남편 아키히토 덴노와 테니스를 치기도 한다고. 사진만 보면 근처 테니스장에서 테니스를 치는 옆집 노부부로 보일 수도 있지만 오산이다.
만들다 지쳐서
일왕 두 며느리와 첫째 며느리 딸, 둘째 며느리의 두 딸(멍청함), 못생긴 공주의 이야기는 다음에 쓰겠습니다 헥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