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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시험이 끝났다.
연습삼아 응시하는 시험이다. 응시해 보는데 의의가 있다.... 이런 마인드컨트롤을 반복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놈의 5일 연속 시험이 사람을 아주 피폐하게 만들었나보다. 한달 가량을 장염으로 고생하는 한편, 평소 깨끗했던 얼굴 피부에도 대화산폭발이 일어났다. 기름지고 비옥했던 땅이 거무튀튀하고 울퉁불퉁한 불모지로 변모하고 말았다.
어쨌든 시험은 끝났다. 가장 먼저 피부과를 찾았다.
사나이 인생에 피부과를 갈 일이란 그..그거! 그거그거! 흠흠. 하여간 그 수술밖에 없는줄 알았던 터라 약간 어색한 마음을 안고 대기했다. 잠시 기다리니 아리따운 간호사님께서 나를 둘만의 밀실로 인도하셨다. 인도만 하셨다.
" 어디가 안좋아서 오셨... 어이쿠. 얼굴이구나. " >
진료실 문을 닫고 나가는 간호사님의 뒷모습에 시선을 고정하다 고개를 돌리는 순간, 밀실에 홀로 앉아있던 의사가 내 문제를 정확하게 진단했다.
그렇구나! 나는 얼굴이 안좋아서 온거구나. 근데.... 분명 맞는 말인데 왜 글을 쓰는 이 순간까지 새삼 빡치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이런저런 진단과 처방을 받아 나오며 얼굴에 원래 있던 좁쌀여드름에 대해서도 질문해보았다. 피부과 내에 피부관리실이 있으니 거기서 압출관리를 받아볼 것을 추천받았다. 피부과 자체도 내겐 겸연쩍은 장소였는데 피부관리실이라니.. 그러나 시험이 끝났다는 고양감 탓이었을까? 호기롭게 그러마 하고 피부관리 신청서같은 것에 사인을 했다. 좁쌀여드름 말고 얼굴에 숨어있는 피지나 오래된 여드름도 모두 제거해준다고 하셨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게 신체..아니 얼굴포기각서였다. 나는 이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냥 생긴대로 살았어야했다.
수술실 간이침대 비스무리하게 생긴 자리에 누워있자니 곧 머리맡에 누군가 앉는 기척이 느껴졌다. 귀여운 느낌의 여성분이었다. 피부관리는 처음이세요? 하고 묻는 목소리도 싱그러웠다. 좋은 예감이 들었다. 처음이니까 제발 살려달라고 대답했어야 되는 것이었는데 말이다.
"눈을 감고 편안하게 있으세요~" >
어휴. 물론입죠. 어찌 안편할수가 있나요. 이렇게 귀여운 분께서 내 얼굴을 만져주신다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냥 뭐, 여드름 압출이라고 해봤자 집에서 면봉으로 짜는 그런 느낌이겠거니 하고 안이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끝나고 뭘할까 생각을 굴리던 중 얼굴에 처음으로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느껴졌다.
'아, 면봉이 아니-----'
꾸우우욱!!!
" !?!?!? "
고통을 어떻게 묘사해야할지 모르겠다. 아니, 보통 우리는 여드름을 짤때 목표의 양 옆에서 가운데로 힘을 주잖아? 그런데 그냥 수직으로 누른다. 눈을 감고 있어서 정체모를 무언가를! 나는 누워있는데! 핀포인트 쇳덩어리를! 저 여자가 전신의 힘을 실어 수직으로 얼굴뼈를 짓누른다! 심지어 그게 빨갛게 부은 여드름자리야! 고통을 묘사할 자신이 없어 상황을 묘사하였다. 이정도면 대충 상상이 되실거라 믿는다..
하여간 정작 나는 상상도 못했던 상황과 고통으로 패닉에 빠져버렸다. 지금이라도 일어나 당장 외모로 나를 속인 이 고통의 관할자를 밀쳐냈어야하는데 스턴에 걸려 저항하지 못한 것이다. 무자비한 공격이 계속되었다. 이미 15번쯤 사상 최악의 꾹꾹이를 받아낸 후에야 겨우 입을 열 수 있었다.
(손발을 파들파들 떨며) "왜..그렇게...세게....."
"이래야 속까지 다 빠져요! 영차! "
영차는 빌어먹을 영구차 보게생겼는데!
(눈물을 꾹 참으며) " 원래.. 이렇게.. 아프...."
" 네 좀 아파요~ 에잇! "
고통이 육체와 정신을 좀먹는다는 뜻의 좀인가보다. 더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나이 서른 다되어 이 겸연쩍은 장소에서 오줌을 지릴수는 없지 않은가. (진지)
사랑하던 여자에게 차였을때보다 더 이를 꽉 깨물고, 월드컵에서 알제리한테 추풍낙엽처럼 쓸려나가던 국대 수비진을 볼 때보다도 더 주먹을 꽉 쥐며 지옥같은 시간을 견뎌나갔다. 하필 쌓인 피지가 많았는지 왼쪽 얼굴에서만 이미 30번 넘는 꾹꾹이가 시행되었다.
" 이거 끝나면 얼굴 깔끔해져서 감동하실거예요~"
그딴걸로 감동하기 이전에 이미 난 사람이 용케 이정도의 고통을 받고도 생각이란걸 할수 있구나 하는 감동에 전신을 진동시키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것일까? 내가 대체 뭘 그렇게 잘못했을까. 지금이라도 사과하면 받아주지 않을까. 고민하던 차 그녀가 말했다.
" 이제 반 끝났네요! 이쪽은 오래 묵은게 있어서 조금 아프실거예요! "
" 예? 지금까진 아픈게 아니었나요?"
" 호호호 " >
웃지말고 설명을 해주세요 라며 울부짖기위해 시동을 거는 찰나 눈밑의 얇은 살갖에 쇳바늘이 파고들었다. 그/아/아/앗...
너무 고통스러우면 사람은 피실피실 웃음이 새어나온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근데 그렇게 웃으니까 별로 안아픈줄 알았나보다. 이렇게 슬프고 아픈 오해는 맹세코 처음이었다. 기구의 움직임이 좀더 거칠어졌다. 내 마음도 거칠어져갔다...머릿속이 새하얗게 되어갔다...
....
"끝났습니다! 이제 진정마사지 해드릴게요"
"예? 이렇게 제 삶이 끝났습니까? 오오..."
" 호호호 "
그렇게 뭔가 차갑고 매끈한 돌을 얼굴에 문지르는듯한 마사지, 눈을 가린채 무슨 회복광선이라는 것을 받는 치료를 거친 후 나는 겨우 그 지옥을 탈출할 수 있었다.
" 또 오세요~"
진짜, 다음엔 꼭 죽여버리겠다는 말로 들렸다.
이렇게 나의 첫 여드름 압출관리가 끝났다..
아마 아직 압출관리라는 것을 경험해보지 못한 분들은 남자가 무슨 엄살이 이렇게 심하냐며 나를 오해하실 수도 있다. 내 명예를 위해 말해두는데, 난 군대에서 생살을 꼬매는 수술을 마취없이 받을때도 " 바둑판을 가져다 주시죠" 라며 우스갯소리를 던 인내력의 화신과 같은 사람이다.
그런데 이건 아니다. 손오공도 셀이 폭발하면 죽는다. 압출관리란 그.. 인간을 아주 원초적으로 고통스럽게 하는 고문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지나온 인생을 되돌아볼수 있다는 장점은 있으나, 이런 것은 굳이 돈을 주고 체험할 필요가 없다.
여러분에게 충고한다. 사람은 생긴대로 살아야 한다. 그깟 피부 밑 기름 좀 짜낸다고 해서 극적으로 예뻐지지도 않는다. 오히려 한 일주일은 더욱 울긋불긋한 피부로 지내야 한다. 그 고통과 맞바꾸려면 최소한 아이돌처럼 변해야 수지가 맞는다. 하지말라며 하지마루요.
여러분 여드름 압출관리 하지마세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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