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뿌리깊은 나무, 기존의 사극과는 다른 성향의 색을 띤 드라마 같아 기대하고 보고있습니다. 드라마를 보다가 자칫 이방원을 안좋게 생각하거나, 조금 왜곡되는 일이 있을거 같아 몇가지 일러 두고 싶습니다. 사실 태종이란 임금은 조선역사상 다섯손가락안에 들어갈 위대한 임금이었으니까요.
일단 당나라 이세민을 언급하고자 하는데, 그 이유는 당나라 왕 이세민과 태종 이방원의 일생은 평행이론과 같이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이세민은 이방원과 같이 아버지를 보좌하여 나라를 건국하는데 실질적인 주인공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외면당하고 장남인 형에게 태자자리마저 빼앗깁니다. 마치 이방원이 세자자리를 형제에게 빼앗기는 것과 똑같은 일이었죠.
이세민은 이에 분노하여 "현무문의 정변"을 일으켜 형과 동생을 참살하고 스스로 정권을 장악, 아버지를 퇴위시키고 왕위에 오르니, 곧 당 태종입니다. 조선의 이방원도 마찬가지로 자신이 왕위 계승구도에서 외면당한것을 분노하여 1,2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형과 동생들을 모조리 살해하고 자신이 권력을 잡은 후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건국에서부터 즉위 과정까지 마치 평행 이론이나 되듯이 비슷합니다.
당태종은 정관치세라는 훌륭한 업적을 쌓고, 그 아들 고종이 이를 그대로 이어나가 당나라는 이때 가장 강력한 국력을 자랑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방원 또한 태종임금으로서 훌륭한 업적을 쌓아 그 아들 세종이 태평성세를 이룩할 수 있도록 모든 기반을 닦아놓았습니다. 당태종만큼이나 조선의 태종도 정말 위대한 임금이었지요. 마치 평행이론처럼요.
드라마 속에서 상왕(왕에서 물러난 전임 임금)인 태종은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준 후에도 여전히 군왕처럼 군림하여 왕권을 휘두릅니다. 마치 권력욕을 떨치지 못한 독재자의 모습으로 비추어 질수도 있겠지만, 이는 모두 세종과 조선을 위해 스스로의 손에 피를 묻히는것입니다. 아버지가 자식의 안정된 사업을 위해 궂고 험한 일들을 스스로 이 악물고 해나가는 모습이라고 할까요.
태종은 그 누구보다 강한 인간이자 강한 임금이었습니다. 자신의 아버지와 함께 세운, 아니 실질적으론 자신이 세운 왕조를 어떻게든 굳건하고 안정적으로 다스리고 싶어했고, 이를 위해서 어떤 일이든 도맡아 합니다. 왕과 신하의 권력 조화를 꾀했던 최고공신 정도전을 참살하였는데, 신하가 왕과 권력을 나뉘어 가진다는 사상자체가 태종의 성향과는 완전히 위배되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즉위기간에는 신하들의 사병을 모두 해체시키고, 자신의 처갓집인 인척 민씨일가의 벼슬아치들을 모조리 숙청합니다. 인척이라는 이유로 정치에 개입한다면, 왕권을 제대로 발휘할수 없다고 판단, 매형과 처남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가차없이 처단하였던 것이죠. 이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정책에 반대하는 수많은 신하들에게 각종 죄명을 입혀 처단한 사건도 비일비재했습니다.
드라마에서 세종의 장인, 영의정이자 부원군(왕의 장인)인 심온을 역모의 죄명으로 포박하여 사사합니다. 사실 장인인 심온에겐 역모의 죄도, 그 어떤 대역죄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태종에겐 심온이라는 자가 왕의 장인이자 신하의 최고직인 영의정이라는 권력을 지닌 자였기 때문에, 후일 아들 세종에게 조금이라도 위협이 될것을 감지해 미리 심온을 사사했던 것이죠.
태종은 이후에도 각종 정책수립 과정에서 많은 간섭으로 인해 세종과 맞부딪힙니다. 태종이 이처럼 상왕의 신분임에도 강력한 권력을 행사한 것은, 이미 건국때부터 태조이자 아버지인 이성계의 실력을 뛰어넘었으며 여전히 그것이 변함없이 유효하였기 때문에 세종또한 보위에 오른 왕일지라도 단독적인 정책을 수행해 나갈 수 없었습니다.
또한, 인생자체가 굴곡이 많고 파란만장하였으며 무인의 성향이 다분하여 다소 강경한 성향인 태종과 반대로 왕자 시절부터 학자와 분간이 안될정도로 학문에만 정진했던 세종은 그 성격부터 판이하게 달랐으며, 때문에 서로간 정책의 성향또한 다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태종이 죽는 날까지 이로 인한 충돌은 끊이질 않았구요.
태종은 상왕이었으나 죽는 순간까지 조선의 정치에 개입하였습니다. 그것은 그가 권력욕이 넘쳐서 아니라, 조선 건국과 수성이란 사업은 자신이 골육지정을 없애면서까지 이끌어나간 사업이었고, 자신의 인생 전부가 바쳐진 일이었으며, 이 너무나도 어렵고 무거운 짐을 사랑하는 아들이 스스로 지고 이끌어나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자신의 아들인 이도의 성품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자신과 같이 과격한 결단력이 없음을 알기에 권신들과 공신들을 더더욱이 두고 볼 수 없었으며, 자신의 칼에 피를 묻히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죠. 아들이 이끌어 나갈 시대는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시대보단 더 안정된 시대이길 바랬던 것이고, 이것이 곧 국가를 생각하는 동시에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이기도 하겠지요.
하지만, 태종이 없었다면, 행여나 태종이 유약하고 영향력 없는 임금이었다면 세종의 태평치세는 결단코 이루어 질수 없었을 것이라 확언합니다. 태종은 그 자신의 시대에 왕조의 불안요소인 공신들과 권신들의 철저한 척결과 숙청, 사회의 불안해소와 기본 제도 정비에 혼신을 다했습니다. 이러한 안정적인 왕조의 토대위에서 곧 세종의 태평치세 업적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죠.
태종은 조선에 있어서 실질적인 창건자이자, 완전한 수성자였으며, 위대한 임금이자, 훌륭한 아버지였습니다. 물론 세종도 위대한, 어쩌면 한반도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임금일지도 모르지만, 그 업적의 기반을 닦은 사람은 다름 아닌 태종이었으며 세종만큼이나 조선과 백성들을 사랑했고, 그 누구보다 아들을 사랑했던 평범한 아버지이기도 했다는 것을 역사는 말해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