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가와 잇세이(佐川一政)
출생 : 1949년 6월 11일, 일본 효고 현 고베 시
(아 ㅅㅂ 내 눈!!!!)
사가와 잇세이는 파리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던 일본인 유학생이었다.
동양인 유학생답지않게 네덜란드 유학생과 연애중이었으며, 서로 마음이 잘 통하는 사이였다.
<잇세이의 여자친구였던 르네 하르테벨트>
르네는 잇세이의 집에 자주 초대받아 학문적 토론을 하기도 하였다.
사랑을 나누던 연인이라기보단 학업관련으로 서로의 의견이 맞다고나 할까?
잇세이는 르네를 '동성적 연인' 이라고 표현했다.
1981년 6월 11일.
여느때와 다름없이 잇세이는 저녁식사를 하기위해 르네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다.
식사를 하며 문학에 관한 이야기도 하고, 르네는 시를 읽기도 하였다.
르네가 시를 읽는동안, 잇세이는 숨겨두었던 소총으로 르네의 머리를 조준. "발사한다"
사가와 잇세이는 미숙아로 태어났고, 의사로부터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일본에서 큰 사업가로 알려진 그의 아버지 사가와 아키라는 불쌍한 아들을 위해 무엇이든 해주겠다는 결심을 한다.
의사의 말과는 다르게 "그는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남았다"
하지만 그의 발육은 그다지 좋지 않아 다 자란 그의 키는 150cm도 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신체에 상당한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었으며 상대적으로 체구가 큰 여자들을 좋아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서양 여자들에게 특이한 판타지를 품게 되었는데, 바로 "여자들을 요리해 먹는 것."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났던 그는 그곳에서 자신이 꿈꿔왔던 이상형인 여성을 발견한다.
그녀가 바로 잇세이의 유일한 친구이자 연인인 르네 하르테벨트.
소총으로 르네를 살해한 뒤, 잇세이는 르네의 옷을 벗겨 시체와 성관계를 하였으며 그녀의 팔 다리를 잘라 사진을 찍고, 요리해먹었다.
-사진은게이버 개샛기때문에 못올립니다-
잇세이는 르네의 시체를 다 먹지 못하고, 여행용 가방에 담아 주변 연못에 유기한다.
하지만, 일이 쉽게 풀렸으면 지금 이 글이 쓰여질리도 없을 터.
르네의 시체가 담긴 가방을 유기하다 주변을 걸어가던 시민에 의해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잇세이를 붙잡았다.
경찰은 잇세이가 유기하려던 가방을 열자 경악한다.
(시체사진역시 게이버크리)
못올리는사진설명하자면
정강이요리해먹은거임
경찰에 체포된 그는 범행을 자백하였고, 정신분석을 위해 병원으로 보내졌지만,
의사는 그가 1살 때 앓은 장염을 뇌염으로 오인해 심신상실이라는 판정을 내려 불구속기소 처분을 받게 되었다.
심신상실로 그는 무죄가 선고되고, 교도소가 아닌 앙리 코란 정신 병원에 무기한 입원 조치 되었으나, 14개월 후 국외추방되었다.
일본으로 돌아온 그는 병원에 입원하였지만 1년후인 1985년 8월에 퇴원하였다.
일본 경찰은 귀국한 그를 체포해 재판에 회부하여 처벌할 방침이었지만, 프랑스 경찰측은
불기소처분된 사람의 수사자료는 제공할 수 없다며 수사자료의 인도를 거부하여 결국 처벌은 내려지지 않았다.
그는 범행 이전부터 일반적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성적 도착증을 종종 드러내곤 하였으며,
고교시절에는 정신과 의사에게 인육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자주 의논했지만 의사는 크게 문제삼지 않았다.
대학교 재학 시절에는 인근에 사는 중년의 독일인 여성을 먹을 목적으로 자택에 침입하여 체포되었으나
그의 아버지가 거액의 합의금을 낸 덕에 고소가 취하되었다.
그는 르네를 살해할 당시 느꼈던 감정들을 담아 '악의 고백' 이라는 책을 써냈다.
시체의 어디를 어떻게 먹었으며, 그 느낌은 어떠했는가.
르네의 시체를 먹은 이후 그녀의 잘린 머리에 눈을 맞추며 "당신 참 맛있어!" 라고 감탄했다는 내용이 담겨져있다.
현재 그의 소원은, 서양 여성에게 먹히는것이라고 한다.
감방에 가야 될 이 정신나간놈은
운좋게 어릴때 의사가 잘못진단한 진단서와
아버지의 돈 덕에
엄청난 운으로 감옥에 가지않고
살인을 했으며
지금도 저 짓을 하는지는 모른다.
운좋은희대의살인마 사가와 잇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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