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파솔리니라 하니도 합니다.)
Pier Paolo Pasolini (1922~1975)
이탈리아 사람으로, 아버지가 파시스트 고위당원이었습니다.
당시 메이드로 일하던 어머니를 겁탈해서 낳은 것이 파졸리니였죠.
그런데 아버지란 사람이 어머니를 자신의 아내로 여기지도 않았고, 당연히 파졸리니도 아들로 여기지 않고 평생 무시했습니다.
당연히 그는 아버지를 증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훗날 아버지가 병으로 죽자 무척 기뻐했다고 할만큼 아버지에 증오가 컸습니다.
반대로 자신을 그런 최악의 상황에서 낳아 기른 어머니에게 아주 지극정성인 효자였다고 합니다.
그는 파시즘을 평생 혐오했고, 그 영향이 영화에도 간간히 나타나는데
좌파적인 자신의 정치적 성향과 더불어 파시스트 생부에 대한 증오도 한 몫 했으리라 여겨집니다.
그의 영화와 관련된 황당한 일화가 있는데,
그는 <마태복음>이란 영화를 1960년대 중반쯤에 제작한 적이 있습니다. (마태복음을 충실히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물론 독실한 가톨릭 교도이면서 그는 현실의 종교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었고, 당연히 가톨릭계와 사이가 좋지 못했습니다.
(영화 <마태복음>에 나오는 예수의 모습입니다. 이 영화는 베네치아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처음 이 영화가 공개되었을 때, 가톨릭계는 호평 일색이었다가 감독이 파졸리니라는 걸 알고는 기겁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바티칸이 주최하는 가톨릭 영화제에서 이 영화가 상을 못 받은 것이 보수적인 가톨릭 성직자들이 감독이 파졸리니라서
외면했다는 얘기가 설득력을 얻고 회자될 정도였죠.
그러다 1975년 <살로, 소돔의 120일>이란 영화를 제작한 후, 그는 바닷가에서 시체로 발견됩니다.
구타당하고, 시체가 차로 짓이겨진 끔찍한 모습이었죠.
(이 작품은 사드 후작의 <소돔 120일>이란 작품을 2차대전 말기 무솔리니의 살로 공화국으로 무대를 옮겨 재해석한 작품입니다.
여기서도 파시즘에 대한 파졸리니의 비판적인 견지를 찾아볼 수 있죠. 물론 보시기에 많은 용기와 비위가 필요한 작품입니다.)
범인으로 잡힌 자는 동성애 관계였다고 주장하는 한 소년이었습니다.
자신에게 무리하게 관계를 요구하고 추행하려 하기에 살해했다는 거였죠.
하지만 파졸리니의 어머니와 그의 동료들은 그 진술에 의문을 제기하고 진상을 밝히려 오랜 시간 노력합니다.
단독범행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사건 현장에 무수한 발자국과 다수의 차량 자국이 발견되고,
소년의 주장과는 다른 증언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경찰은 그 중요한 증거들을 은폐하고 사건을 빨리 일단락지으려 노력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마피아 짓이다, 극우파들의 테러라는 등의 별별 의혹이 쏟아져 나왔죠.
그렇게 사건해결이 흐지부지된 채, 1998년 미해결 사건으로 일단락되고 맙니다.
그리고 2000년대 들어 자신이 범인이라 자백한 소년도 자신은 그 날 파졸리니를 만난 적도 없다고
종전의 증언을 뒤집는 일까지 벌어집니다.
이럼에도 이탈리아 언론에서는 이를 쉬시해 항의시위까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이리 해서 아직까지 파졸리니의 죽음을 수수께끼로 남겨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