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반도-요동의 통일 왕조
북방 유목세력이 대대적인 중국 침공의 기미를 보이자 중국의 막대한 세폐지급과 유주 할양 약속으로 지원병을 파견, 그러나 동시에 남방에서 일본의 침공도 신경써야 하는 상황
-세부설정-
총인구: 1,400만
농업 발전도: 조선 세종대
상공업 발전도: 고려 문종대
중국 지원군: 고담덕, 이성계, 왕건, 장문휴, 척준경의 25만 대군
내륙 방어군: 김유신, 강감찬, 을지문덕, 이순신의 15만 대군
육군력: 광개토대왕 당시의 고구려+별무반 조성 당시의 고려 수준
해군력: 6시 방향의 영웅이 이끌던 당시의 조선 수준
*내치안정-보급담당: 정도전, 류성룡
*총괄 전략-외교 참모: 서희, 김춘추
2. 중화제국
최강의 부와 군사력을 자랑하며 역사상 유례없던 엄청난 황금기를 맞은 중화제국, 그러나 북방 유목 세력이 대대적인 침공을 계획하고 있단 소식에 막대한 세폐지급과 유주지역의 할양을 약속한 뒤 한반도-요동의 통일왕조에게 군사적 지원을 얻어내고, 토번에게도 막대한 세폐지급과 화번공주를 보낸단 약속으로 군사지원을 얻어냄. 또한 중국 전역의 상비군과 징집군들을 총동원함. 그러나 그 와중에 일본이 동부 해안선을 어지럽히고 있으며, 남월이 남조왕조와 연합하여 북진을 개시, 교지에서도 중화제국의 한화정책에 반발한 베트남 민족들이 들고일어나 그 불길이 점점 더 거세어지고 있는 상황
-세부설정-
총인구: 1억 7,000만
농업 발전도: 전한 문경지치+점성도(참파벼) 도입 이후의 북송
상공업 발전도: 북송 초중반
기존 상비군: 300만
징집군: 600만(총동원령으로 노인과 소년도 징집당한 경우가 많음)
→총 전투병력 900만
육군력: 한 무제 당시의 한 왕조+당 태종~고종 연간의 당 왕조 수준
해군력: 정화의 항해 당시의 명나라 수준 (수군 대총관-주유, 수군 부총관-전원관)
*내치안정-보급담당: 소하, 제갈량, 왕맹
*총괄 전략-외교 참모: 여상, 장량, 소진, 위예
3. 토번
북방 유목세력이 대대적인 중국 침공의 기미를 보이자 중국에게서 막대한 세폐지급과 토번의 군주에게 공주를 시집보낸단 약속을 받아내어 지원병을 파견
-세부설정-
총인구: 1,500만
중국 지원군 20만 대군
*내치안정-보급담당: 가르통첸
몽골-일본-남월, 남조, 교지 반란군 연합
1. 몽골 대초원
내전을 종식시킨 뒤 통합된 유목세계의 힘을 외부로 돌리려는 몽골...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세부설정-
총인구: 450만
중국 정벌군 60만 조성
*내치안정-보급담당: 야율초재
2. 통합 일본
기나긴 내전이 끝난 뒤 오다 노부나가는 외부로 항복한 다이묘들의 불만을 돌리려고 한반도를 침공하려 함, 또한 중화제국과 몽골 대초원간의 전황을 알고 대륙의 해안을 통해 침공을 시도하면서 북방 유목민들에게 쏠렸던 중국의 집중도를 흩뜨려놓고 있음
-세부설정-
총인구: 1,500만
대륙 공격군: 오다 노부나가, 미나모토노 요리토모, 도쿠가와 이에야스, 다케다 신겐, 혼다 타다카츠의 40만
한반도 공격군: 미나모토노 요시츠네, 도요토미 히데요시, 우에스기 겐신, 사나다 유키무라의 20만
*총괄 전략-외교 참모: 구로다 간베에
3. 남월, 남조 왕조, 교지 반란군
중국에 밀려 빼앗긴 북베트남 지역을 되찾으려는 남월의 움직임에 교지에서 쯩짝-쯩니 자매가 호응, 남조왕조도 이들을 지원하는 연합군 구성
-세부설정-
총인구: 남부 베트남 900만+남조왕조 450만+교지 반란군 호응 인구 50만
중국 공격군으로 남부 베트남군 15만+남조군 10만(효항왕 이모심이 직접 지휘)+교지 반란군 3만 조성
*보급담당: 권풍우, 왕차전
정세요약
*한 전선에서 승리시 다른 전선으로 투입 가능
*외교전을 통한 연합의 변경, 파기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