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 간 우리 대중음악계의 화두는 단연 걸 그룹 열풍이었다. 그리고, 돌이켜보면, 이전의 수년간은 줄곧 보이 밴드의 전성기였다. 그건 지난 10여 년간 우리 음악의 주류가 청소년 아이돌의 주도하에 놓여있었음을 의미한다. 새로운 아이돌이 기존의 아이돌을 대체하는 방식으로 유지돼온 우리 음악산업의 구조적 특징을 집약하는 현상이었다. 소녀시대의 일본진출과 2NE1의 신작발표로 다시금 뜨겁게 달아오른 걸 그룹의 열풍의 언저리에서, 그 모집단적 현상으로서 아이돌의 안팎과 전후를 살피는 기획을 마련했다.
최고의 아이돌은 누구일까? 또 최악의 아이돌은 누구일까? 에쵸티(H.O.T)의 등장으로 대표되는 아이돌 시스템의 본격 가동기 이후의 가수와 그룹을 대상으로 각각 5팀씩의 베스트와 워스트를 선정했다. 평론가를 중심으로 음악지 편집장, 기자, 방송작가 등 20여명이 포진한 ‘100비트’의 구성원들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별도의 회의까지 거친 결과는 다음과 같다.
“BEST 5”
1. 보아
2. 소녀시대
3. 빅뱅
4. S.E.S
5. 동방신기
10년 전, 만 14세가 되기 전에 데뷔한 보아가 맨 위에 이름을 올렸다. 철저하게 기획하고 준비한 아이돌의 성공모델이며, 해외진출이란 목적까지 달성했다. 처음부터 해외시장을 겨냥해선지 음악 역시 트렌트를 따르면서도 허술하지 않은 편이었던 보아는 기획사 시스템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사례이자 향후 아이돌 기획의 전범이었다. 수동적인 여성상을 날려버리는 데에도 한몫했다. “오랜만에 누워보는군”과 함께 영화 [별들의 고향]의 또 다른 명사대인 “여자는 남자에 의해 잘잘못이 가려져요”같은 넋두리는 정말 옛날이야기가 된 것이다.
문화현상으로까지 격상되었던 소녀시대가 그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21세기 아이돌의 완성형인 소녀시대는 가요에 등을 돌렸던 이들을 다시 TV 앞에 앉혀놓았고, “록 키드들도 당당하게 아이돌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된 계기”(김정위)였다. 데뷔 때부터 이전과는 다른 아이돌로 주목받은 빅뱅도 팬덤을 확장시켰다. 소녀시대에게 ‘삼촌팬’이 있다면 빅뱅에겐 ‘누나팬’이 있었다. 누나들 중 한 사람은 말한다. “다른 재능과 다른 관심사를 가진 개인이 모여 조화롭게 팀을 이루는 것과 더불어 각자 활동과 자신의 관심 영역에서도 발군의 힘을 가지고 있다.”(이호영)
꽤 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히 걸그룹의 모델로 기억되는 S.E.S와 아시아의 아이돌을 표방한 동방신기가 한 자리씩 차지했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동원훈련에 참가 중인 젊은 평론가는 S.E.S를 “이미지만 아니라 음악까지 인정할 수 있는 최초의 아이돌”(김봉현)이라고 칭송했다. 또한 S.E.S는 핑클과 경쟁하며 스타경쟁구도의 효과를 보여줬다. 원더걸스와 소녀시대의 경쟁이 걸그룹 시대를 연 것처럼 말이다. 동방신기는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부합하는 아이돌의 선두주자로 성공적인 일본 진출을 통해 한류의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하기도 했다”(최지선)는 점에서 인정받았다.
“WORST 5”
1. 씨엔블루
2. 제국의 아이들
3. 슈퍼주니어
4. H.O.T
5. 비
모두들 워스트의 맨 앞자리를 씨엔블루에게 양보했다. 밴드의 모양새를 취한 아이돌 그룹의 허술함과 가요계의 병폐인 표절시비, 그리고 이런 논란에도 활동에 영향을 받지 않게 된 연예계 풍토는 문제이다. 작곡의 공정화, 노래와 가수의 분리, 연예계의 비대화에 의한 책임분산 때문이다. 이 모두의 삼위일체가 씨엔블루다. 아울러 “밴드음악을 한다고 다 록 밴드가 아니다”(김광현)는 말처럼 무늬만 밴드인 아이돌 그룹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많았다. 순위에 들진 못했으나 FT아일랜드와 클릭비도 상당한 지지(?)를 받은 것을 보면 말이다.
갓 데뷔한 제국의 아이들의 선전(?)은 이변이다. “자본의 세 과시가 때론 간접적이지 않을 수 있음을 증명하는 네이밍”(이경준)과 역시 대단한 제목인 ‘이별드립’을 합치니 금상첨화다. 한껏 높아진 눈높이에 미달하는 수준과 안이한 편승에 대한 거부감이 표출되었다. 지구인을 멤버들의 이름을 다 외우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눌 수 있는 잣대를 쥐어준 슈퍼주니어도 합류했다. 최악으로 꼽히는 데에도 자격이 필요하다. 진짜 최악은 언급조차 되지 못하니까. 애석하게도 이들은 인기만큼 비례하기 마련인 기대치를 채워주지 못했다.
본격 아이돌의 첫 성공작인 H.O.T는 한편으로 가요계 몰락의 신호탄이기도 했다. 모든 책임이 H.O.T에게 있진 않지만, 왜곡된 가요시장과 편향된 기획의 상징이 된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비를 워스트로 꼽은 이들은 ‘세계진출’과 같은 언론플레이와 ‘월드스타’란 과대포장을 지적한다. 올라운드플레이어가 아이돌 활동의 대세이긴 하지만, 그 결과물을 냉정하게 평가해보면 훌륭한 몸매와 달리 앙상한 실체가 드러난다는 의견이 많았다.
기념이거나, 중간점검이거나
베스트와 워스트에 오른 상당수가 같은 회사 소속이란 것은 에스엠(SM)엔터테인먼트가 아이돌 시장을 주도해왔음을 반영한다. 솔로보다 그룹이 대세인 것도 마찬가지다. 아울러 베스트와 워스트를 동시에 석권한 가수와 그룹이 없는 것도 아이돌에 대한 호불호를 결정하는 보편의 잣대가 형성되었음을 보여준다. 단순히 호감·비호감 이미지와 캐릭터를 떠나 ‘기본’의 수준이 척도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의 결과가 아이돌에 대한 기념이 될지, 아니면 중간점검이 될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