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기랑 행주만 살균이 필요한건 아니다
가끔은 내 마음도 푹푹 삶아 햇볕에 널어 말리고 싶다
그런데, 어떻게 삶는 담?
혹시 아시는 분 있나요?
김효진 / 어른이 된 후에
가만히 생각해본다.
솔직함에 대해
한심함에 대해
나약함에 대해
설명할 수 없는 슬픔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정리해서 태그를 붙일 수 없을 정도로
작고 쓸모없이 조각나버린
마음에 대해 생각한다.
오지은 / 익숙한 새벽 세시
자판기 커피를 두잔 놓고 이런저런 얘기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웃고 떠들던 벤치에서 내일 만남을 약속하며 일어설 때,
어쩌면 언젠가 이 벤치만 봐도 아까 떠들었던 어느 대화가 생각나
무척 슬플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지.
그 때 그런 생각들을 만든 내 가슴을 찢어버리고 싶지만
어차피 이젠 더 찢어질 가슴조차 남지 않았으니,
대가를 받는다면 그 나름대로 받고 있는 건지도 모르는 것이고,
아마 그때 알았다면 이러구 살지는 않았을 텐데.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그때 한번 충실하게 그사람에게 다가가 볼걸 하니,
무슨 대단한 일을 하고 산다고 나를 그렇게까지 보호해야 했을까?
오히려 그사람이 더 나를 지켜주려 했었는데.
그렇게 해주었을때 받고 살았던 그 사랑 반만 돌려주었어도
얼마나 예쁜 연인이 만들어졌을까?
내가 더 많이 사랑하고 있는게 부끄러운 일은 아니었는데.
원태연 / 사랑해요, 당신이 나를 생각하지 않는 시간에도
가끔 생각한다.
사실 성장이라는 것은 없을지도 모르겠다고.
대신 위장술을 익혀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욕망을 숨기고, 유치함을 숨기고, 정상적인 어른이 되었다고,
약간의 매너로 모두가 모두를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오지은 / 익숙한 새벽 세시
아마도 사랑하는 당신에게 제가 궁금한 것은
'구리색 타원형 아르마니 안경테 이전의 안경테를 당신이 기억하고 계실까' 보다,
'그때 묶고 계시던 리본이 파란 바탕에 흰색 땡땡이였는지
흰색 바탕에 파란 땡땡이였는지' 보다,
'요즘 유행하는 독감이 찾아갔는지'보다,
그때 다 가져가신 내 마음의 안부인것 같습니다.
가져가신 내 마음이 일기장 모서리에 살고 있는지,
정리하지 않은 잡동사니를 모아 두는 서랍속에 살고 있는지,
싫다 하셔도 끈질기게 매달려 당신의 마음속 한 편에 살고 있는지가 너무 궁급합니다.
사랑하는 당신에게 염치없는 부탁이지만 그때 가져가신 제 마음 잘 좀 돌봐주시고,
귀찮고 버거우시더라도 제게 돌려보내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마음만이라도 영원히 당신과 함께 살 수 있도록.
원태연 / 사랑해요, 당신이 나를 생각하지 않는 시간에도
그때의 내가 바랐던 건, 그가 욕실 바닥에 주저앉아
그저 나와 함께 울어주는 것 뿐이었다.
(중략)
그때의 나를 가장 슬프게 했던 건,
너와 헤어지고 싶지 않다고, 널 사랑한다고,
그러니 우린 영원히 함께 해야한다고 그가 말해주지 않는 것이었다.
(중략)
생각보다 일찍 찾아오는 깨달음 같은 건 없다고,
생각보다 늦게 찾아오는 이별이 없듯이.
백영옥 / 애인의 애인에게
진행하던 프로젝트, 열중하던 사랑,
사람과의 만남이 그 끄트머리에 서게 되면
이걸로 됐다는 마음이 될 때도 있고, 이거로 됐냐는 마음이 될 때도 있다.
가장 좋은 경우가 '이걸로 됐다'는 마음이다.
결과 승패에 상관없이, 며칠 혹은 몇 년이 지나 후회할 일이 생기더라도,
대부분 최선을 다했기에, 마지막이 주는 그 울먹함을
견딜 준비가 되었기에 휘청거리지 않는다.
다음은 '이걸로 됐냐'는 마음이다.
부족했던 것, 미처 눈치채지 못해 놓쳤던 것,
정말 해야 할 말을 다하지 못한 것이 생각나 전전긍긍이다.
아쉽고, 후회막급이고, 어떡하든 그 끄트머리를 놓고 싶지 않아
거칠기는 해도 무엇이라도 하게 된다.
한유석 / 우리가 술 마시고 하는 말
우리가 해야 할 건 그냥,
떨고 있는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것
다가가 뒤에서 가만히 안아주는 것
그건 그의 심장에 나의 심장을 포개는 일이니까요
허은실 / 나는, 당신에게만 열리는 책
뒤돌아 보기도 싫었고 서운해 하기도 싫었다.
사람의 삶에 헤어짐이 수없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음을 완전히 부려놓을 수 있는 장소, 거기에서 영원히 멈출 만한 시간은 없다.
삶은 흘러가는 것이다.
그 흐름에 따라 주소를 옮기는 것 뿐인데 일일이 헤어짐을 기억할 필요는 없다.
은희경 /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