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lentin -a little story
(브금백과 종인아누나품에안기렴)
봄을 닮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래서 여름이 오면 잊을 줄 알았는데
또 이렇게 니 생각이 나는 걸 보면
너는 여름이었나
이러다가 네가 가을도 닮아있을까 겁나
하얀 겨울에도 네가 있을까 두려워
다시 봄이 오면
너는 또 봄일까
너는 또 봄일까 / 백희다
내가 엮은 천 개의 달을 네 목에 걸어줄게
네가 어디서 몇 만번의 생을 살았든
어디서 왔느니도 묻지 않을게
네 슬픔이 내게 전염되어도
네 심장을 가만히 껴안을게
너덜너덜한 상처를 봉합해줄게
들숨으로 눈물겨워지고 날숨으로 차가워질게
네 따뜻한 꿈들은 풀꽃처럼 잔잔히 흔들어줄게
오래오래 네 몸 속을 소리없이 통과할게
고요할게
낯선 먼먼 세계 밖에서 너는
서럽게 차갑게 빛나고
내가 홀로 이 빈 거리를 걷든, 누구를 만나든
문득문득 아픔처럼 돋아나는 그 얼굴 한 잎
다만
눈 흐리며 나 오래 바라볼게
천년동안 소리 없이 고백할게
천년동안 고백하다 / 신지혜
난 네게로 가서
별이 되었으면 해
너무 화려한 불빛을 지나서
너무 근엄한 얼굴을 지나서
빛나는 어둠이 배경인
네 속에 반듯하게 박혔으면 해
텅 빈 네 휘파람 소리
푸른 저녁을 감싸는 노래
그러나 가끔씩은 울고 싶은
네 마음이이었으면 해
그리운 네게로 가서
별이 되었으면 해
자주 설움 타는 내 잠 속
너무 눈부시게는 말고
너무 꽉 차게도 말고
네 죽을때야 가만히 눈 감는
별이 되었으면 해
별이 되었으면 해 / 강문숙
나는 너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어느 바람결에 소리 없이 떨어지는
나뭇잎 하나도 되지 못한다
나는 너에게 무엇인가 되고 싶다
네 넋 속에 몸속에 지워지지 않는
무엇인가 되고 싶다
내가 너에게 끝까지
변하지 않는 무엇이 될 수만 있다면
내가 변하는 모습이 아무려면 어떠랴
내 몸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지라도
나는 너에게
무엇인가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무엇인가 되고 싶다 / 양성우
아는가, 네가 있었기에
평범한 모든 것이 빛나 보였다
네가 좋아하는 영화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네가 웃을 때 난 너의 미소가 되고 싶었으며
네가 슬플 때 난 너의 눈물이 되고 싶었다
네가 즐겨읽는 책의 밑줄이 되고 싶었으며
네가 자주 가는 공원의 나무의자가 되고 싶었다
네가 보는 모든 시선 속에 난 서 있고 싶었으며
네가 간혹 들르는 카페의 찻잔이 되고 싶었다
때로 네 가슴 적시는 피아노 소리도 되고 싶었다
아는가, 떠난 지 오래지만
너의 여운이 아직 내 가슴에 남아 있는 것처럼
나도 너의 가슴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싶었다
사랑하리라 사랑하리라
네 가슴에 머무는
한 줄기 황혼이고 싶었다
네가 좋아하는 영화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 이정하
물 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 류시화
그대가 한밤에
초롱초롱 별이 되고 싶다면
나는 밤새도록
눈도 막고 귀도 막고
그대의 등 뒤에서
어둠이 되어 주겠습니다
어둠이 되어 / 안도현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 쉬고 있는
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멀리서 빈다 / 나태주
내 마음 저 달처럼 차오르는데
네가 쌓은 돌담을 넘지 못하고
새벽마다 유산되는 꿈을 찾아서
잡을 수 없는 손으로 너를 더듬고
말할 수 없는 혀로 너를 부른다
몰래 사랑을 키워온 밤이 깊어가는데
꿈의 페달을 밟고 너에게 갈 수 있다면
시시한 별들의 유혹은 뿌리쳐도 좋았다
꿈의 페달을 밟고 / 최영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