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내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었던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는 '코끼리 퍼즐'이라는 명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에서 퍼즐이 80%만 맞추어져 있다고 해서 코끼리 퍼즐이 사자 퍼즐로 되지는 않는다는 검사측 주장에 대해 변호사는 아직 맞춰지지 않은 그 20% 때문에 그 코끼리 다리 밑에 공이 있는지 사람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고 반박하며 무죄 추정의 원칙을 통해 판결을 무죄로 이끌어 낸다. 그런데 필자는 이번 이종석 사태를 겪으며 자연스럽게 '코끼리 퍼즐'과 '무죄 추정의 원칙'을 떠올렸다. 그렇다. 이미 눈치들 채셨겠지만 나는 배우 이종석의 팬이고, 지난 시간동안 그를 겪어 본 사람으로서 언론과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이 일을 재조명해보려고 한다. 1. 에피의 재구성 : 새로운 시각에서 우선 다음의 내용은 이것이 팩트임을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일 뿐임을 강조하고 싶다. 따라서 이 글을 읽어내려가면서 중점을 둘 부분은 이것의 진위 여부가 아니라 이러한 해석이 논리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지의 문제이다. 이것에 초점을 두고 읽어주시길 미리 부탁드린다. 이른 아침, 드라마 밤샘 촬영을 마치고 홍콩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인천으로 향하던 한 배우가 있었다. 아침 출근 시간이라 차는 막히고, 몸은 피곤한데, 스케쥴 조율 문제 때문에 매니저 및 대표와 실랑이를 벌였다. 어찌어찌하여 촉박한 시간이긴 하지만 다행히 목적지에 도착했고 차에서 내렸는데 양 옆과 앞에 세 명의 매니저가 따라붙는다. 그러더니 왼쪽에 있던 매니저가 지금 늦었다고 빨리 가야한다고 이야기 한다. 그 말에 걸음을 재촉하는데, 난데없이 오른쪽에서 팔을 잡아당긴다. 그가 차에서 내릴 때 분명히 오른쪽에 매니저가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기에 그는 당연히 매니저가 팔을 잡아 당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억울해진다. 지금 바쁜 것도 알고 급박한 것도 알아서 안그래도 빨리 가려고 하는데 팔까지 잡아당기면서 빨리 가자는 건가? 야속한 마음에 팔을 확 뺐다. 어...그런데 팔을 잡은 게 매니저가 아니었나 보다. 왠 처음 보는 소녀가 그를 쳐다보고 있다. 너무 당황해서 대처하려고 하는데 매니저가 팔로 가로막더니 빨리 가야한다고 한다. 가뜩이나 앞에는 기자들과 다른 팬들이 잔뜩 있으니 더더욱 표정 관리가 되지 않는다. 그렇게 그저 바쁜 걸음을 재촉할 수밖에 없었다. 30초정도 밖에 되지 않는 이 영상을 이러한 시각에서 바라볼 수는 없는 것일까? 아직까지 고개를 갸우뚱하는 분들을 위해 이제부터 하나하나 차근차근히 설명해보도록 하겠다. 2. 쟁점 1 : 소속사의 과도한 스케쥴 배정 배우 이종석은 매우 부지런하기로 소문이 난 사람이다. 여기서 부지런하다는 것은 성격상의 의미가 아니라 그만큼 일을 많이 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 중에서 연기와 관련된 스케쥴은 100% 본인 의지에 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언제나 인터뷰에서 실무자인 자신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말하므로) 그런데 그 밖에 CF, 화보촬영, 팬싸인회, 해외활동 등은 연기 활동으로 인해 부가적으로 생성되는 스케쥴이다. 물론 팬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가 활동을 많이 할수록 좋다. 그만큼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팬이 보기에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과다한 스케쥴을 소화하고 있다. 그리고 그 살인적인 스케쥴은 전적으로 소속사가 조정하는 것이다. 단호하게 말하자면, 드라마를 촬영 중인 배우가 여러 가지 부가적인 해외 스케쥴을 함께 소화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드라마에만 집중하고 캐릭터에 녹아들어야 할 시간에 '오직 회사의 이윤을 위해' 북경, 홍콩 등에 일주일이 멀다하고 스케쥴을 잡는 것은 분명 살인 행위와도 같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도 배우 이종석의 팬이 있기에, 자신을 좋아해주는 팬을 위해서 그는 그 피곤한 몸을 이끌고 모든 스케쥴을 소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일 회사 측과 이종석이 벌인 실랑이가 드라마에만 온전히 집중하고 싶었던 배우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리고 본인의 정체성이 회사 '주력 상품'이라고 인지되고 있는 상황이라면, 안 그래도 숨 막히는 스케쥴 속에서 빨리 빨리를 재촉하는 매니저에 대한 야속한 마음의 표출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3. 쟁점 2 : 언론의 행태 대한민국에 인터넷이 활발하게 정착된 이후로 매스컴 문화에도 변화가 생겼으니 그것이 바로 인터넷 기사이다. 충분한 웹 공간과 컴퓨터만 있으면 기자들은 얼마든지 기사를 써서 올릴 수 있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소요되지 않는다. 그래서 인터넷 매체가 우후죽순처럼 늘어나 마치 완전경쟁시장처럼 되어버렸다. 이러한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 남는 방법은 양질의 기사 한 개를 올리기보다 가십거리가 될 만한 기사를 수십 개 올리는 것이다. 그리고 클릭 수는 곧 기자의 수당과 연결되기에 사람들의 클릭 수를 높이기 위해 제목은 최대한 자극적으로 적는 것이 유리하다. 그 날 아침도 그랬다. 여느 때와 다름 없이 그저 멋있다, 연예인 포스가 난다는, 다소 오그라드는 제목의 기사들 틈바구니에서 논란이 된 사진과 함께 아주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가 쏟아지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 논란이 된 사진을 보고 조금 놀랐다. 사진만으로는 앞뒤 상황이 제시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마치 배우 이종석이 팬의 선물을 일부러 외면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소 배우 이종석의 팬 사랑을 알기에 이내 '아! 또 순간포착된 사진이구나. 왜 사진을 저렇게 논란거리가 되도록 찍을까'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런데 해당 사진을 주제로 삼은 기사가 점점 늘어나고 이에 발맞추어 악플도 같이 늘어났다. 그리고 배우 이종석이 마침내 실시간 인기검색어에 오르내리기 시작하자, 이 때만을 노린 듯 똑같은 복제기사가 수없이 쏟아졌고, 비난 수위도 올라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하나의 퍼즐조각을 두고 앞뒤 퍼즐조각들을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상상하여 맞추면서 결국 극단적인 결론에 다다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문제의 영상이 올라왔다. 그런데 사진에서 그렸던 상황과 영상으로 그려지는 상황은 또 달랐다. 사진은 앞뒤 문맥이 모두 단절된 상황이지만 영상은 앞뒤 상황을 모두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다시 말하면, 처음 사진을 가지고 냈던 기사들이 사실은 그저 하나의 부정적인 추측에 불과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앞뒤 상황을 보여주는 영상이라 한들, 그 누구도 영상의 진위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그것은 당사자들만이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의 예상은 사실 하나의 가능성에 불과하다. 그리고 원래 카메라라고 하는 것이 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어느 정도 왜곡하는 면이 없지 않다. 따라서 각도에 따라 보는 사람의 마음 상태에 따라 같은 사진, 같은 영상을 보더라도 다르게 해석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카메라를 예술의 한 범주로 넣고 있는 것이다. 보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다르기 때문에. 영상 속 이종석의 행위를 팬 선물을 외면하고 시크하게 걸어가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피곤한 몸 상태를 이기기 위해 카페인이라는 각성제에 의지하는 상황에서 매니저에 대한 야속함의 표현이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댓글 중에 이종석이 차에서 내리면서 흘낏 팬을 쳐다봤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나는 그 사람이 별로 화질도 좋지 않은 영상 속에서 선글라스 속에 숨은 이종석의 눈을 어떻게 보았는지 의문이다. 이는 모든 것이 정황적 추측에 의해, 해석하는 이의 심리 상태에 의해 나름대로 재해석될 뿐이라는 명백한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영상이 공개되자 배우 이종석을 비난하는 언론의 수위는 더욱 거세졌다. 그런데 막상 기사를 읽으려고 클릭해보면 별 내용은 없었다. 마치 앵무새마냥 모든 기자가 같은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고, 제목만 더욱 자극적으로 되어갔다. 만일 기자가 정말 해당 주제에 대해 조명해보고자 했다면, 관련 사례들을 찾아보고 심도 있게 비교해보는 것이 당연한 것일텐데, 언론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저 결론을 고정하고 현재 이종석과 라이벌 구도를 이루고 있는 여타 남자 연예인들의 팬싸인회 현장 사진과 논란이 된 해당 사진을 비교하며 깎아내리기에만 급급했던 것이다. 4. 쟁점 3 : 이종석의 사과와 언론의 반응 금요일 새벽 4시, 팬카페에 이종석의 반성문이 올라왔다. 그 반성문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이것이었다. 뭔가 대처가 잘못 된 것 같아서 직접 글을 쓰는 것이니, 팬들에게만은 설명해야 할 것 같아서 적은 이 글을 어디에도 퍼가지 말고 그냥 봐달라는 것. 무신경한 소속사와 달리, 배우 이종석은 상황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자신을 향해 들끓는 여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외면당했다고, 기자들에 의해 한없이 불쌍한 사람으로 낙인찍혀버린 그 팬이 중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 모든 문제의 핵심인 팬들에게 사과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리고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해당 팬을 직접 언급하며 사과하기도 했다. 앞으로는 본인이 더 잘하겠다고. 이 글을 읽고 나서 영상을 다시 한 번 보니 목요일과는 또 다른 시각으로 일이 재구성되어 보였다. 정보가 하나하나 추가될수록 이전과는 다른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진실은 배우 이종석만이 알기에, 그리고 그의 간곡한 부탁이 있었기에, 그 어느 곳에도 글을 퍼가지 않고 그저 묵묵히 사태를 지켜보았다. 그런데 채 오전도 지나지 않아 이 반성문을 인용한 기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어떻게 팬카페 내의 정회원만 볼 수 있는 그 글이 언론사의 손에 넘어갔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해당 기사가 반성문 전문을 인용한 것이 아니라 반성문을 임의대로 편집했다는 데 있다. 언론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사실과 진실의 정확한 전달'이다. 이 점을 주지한다면 기사를 쓸 때 반성문 전문을 인용하고, 그 뒤에 나름대로 기자의 해석을 덧붙이는 것이 옳다. 그런데 원래 그림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웬 변형된 그림만 남아 있었다. 그것도 가장 중요한 핵심은 배제되어버린 채 말이다. 기자들이 논란에 다시 불을 붙이자 전문을 보지 못한 사람들의 의견은 또 다시 갈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는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결과였다. 여전히 이에 대한 정보가 조각조각 나열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자는 문제의 본질을 벗어나 왜 팬에게 반말을 하냐느니 논점을 비껴가는 댓글도 많았다. (배우 이종석은 원래 팬들에게 존대와 반말을 섞어한다. 존대는 자신을 사랑해주는 팬들에 대한 예의의 표현이고, 반말은 친근함의 표현이다. 그러나 이러한 맥락을 알지 못하니 반말이 트집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그 어떤 언론도 본질을 하나부터 열까지 나열해주지는 않은 채, 그저 부분만을 가지고 논란을 이어갔다. 5. 결론 여기까지가 필자가 가진 수단을 총동원해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한 결과 내린 상황에 대한 정리이다. 아 물론 여기에 한 가지 더. 평소 배우 이종석이 팬들을 어떻게 대하고 아끼는 지 몸소 듣고 보아 알고 있고 인터뷰를 통해 드러 난 배우 이종석의 성품을 믿고 있다는 것. 일반 대중들은 이종석의 성품에 대해 접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이를 쉽게 납득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그 수많은 증거들 중 몇 가지를 제시해 보려고 한다. 우선 배우 이종석은 성격이 매우 내성적인 사람이다. 평소 지나가다 뉴스 기사를 본 사람이면 알겠지만 그에게는 주목 공포증이 있고 대중 앞에 서면 귀부터 빨개진다. 이러한 성격의 그가 팬싸인회나 무대인사에서 팬들을 만나면 밝게 인사하고 먼저 말을 걸며 언제나 다정한 눈빛으로 팬들을 대한다. 다음은 이러한 사실들을 충분히 뒷받침해줄 팬을 대하는 이종석을 담은 사진들이다. 또 만일 좀 더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 계신다면 '유인나의 볼륨을 높여요'에 출연했던 이종석의 발언을 들어보시기를 추천한다. 그 라디오에서 그는 팬을 '한없이 고마운 존재'라고 정의하면서 그렇기 때문에 팬을 만나면 원하는 것을 다 들어드리려 한다며 팬에 대한 각별한 사랑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것이 이종석의 진짜 본모습이다. 과연 이러한 행적들은 덮어둔 채 찰나의 단편적인 조각만을 가지고 모든 것을 평가해도 되는 것일까?

(밝은 표정으로 팬과 포옹하는 모습)

(팬과 눈을 마주치며 대화하고 머리를 쓰담는 모습)

(팬과의 손깍지로 왼손이 자유롭지 못하자 입으로 펜뚜껑을 여는 모습)

(자신을 찍으려는 팬에게 숨바꼭질로 장난치는 모습)

(말이 필요 없는 따사로운 눈빛)

(마치 친구인 양 팬과 팔동동) 자, 이제 이 글을 읽어 내려가는 여러분이 지금까지 필자가 제시한 추가적인 정보 조각들을 맞추어봤을 때, 맨 처음 제시한 재구성 상황을 납득할 만하다면 우리는 다시 무죄추정의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재판정에서 판결을 내리는 판사는 직접 범죄 현장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검사와 변호사가 제시한 정보 조각들을 최대한 공정하게 재배열하여 사건을 재구성한다. 그런데 만일 충분한 정보가 제시되지 않아서 피고인의 죄가 분명하다고 인지되지 않으면 판사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무죄 판결을 내린다. 물론 이 원칙에는 진짜 범죄자를 놓칠 수 있다는 맹점이 있다. 그러나 적어도 누군가가 억울하게 누명을 쓰는 일은 최소화된다. 이번 일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기자가 찍은 사진, 영상, 그리고 기자 마음대로 짜깁기한 이종석의 반성문이라는 정보를 가지고 상황을 재구성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조각들의 재구성 결과는 모두 달랐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조각들을 '잘못'으로 결론 내린 사람도 있지만 '실수'로 받아들인 사람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어느 한 부분이 명확하지 않은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결론을 내려야 하는가? 그래도 '잘못'이라고 결론지어야한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래서 배우 이종석을 단죄해야 옳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반문하고 싶다. 만일 자신이 내린 결론이 100% 확신할 수 있는 진실은 아니라면, 최소한 이전에 그가 보여왔던 행적이 어떠한지는 조사해보고 난 후에, 좀 더 정보 조각을 모은 후에야 비로소 그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야하는 것은 아닐까? 6. 덧붙이는 말 마지막으로 배우 이종석에게 한 마디 전하고 싶다. 언젠가 당신이 인터뷰에서 바랐던 것처럼, 불미스런 스캔들이 터졌을 때, 우리 팬 모두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아는 이종석이 그럴 리가 없어." 이것이 당신이 그간 쌓아 온 신뢰이며, 우리에게 보여준 본성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도 쉬이 무너지지 않을 것 같다. 모쪼록 그가 모진 풍파를 이겨내고 다시 본업으로 돌아가 빛나는 배우로 우리와 조우하길 간절히 기도한다. 출처 - daum 블로그 'WHITEPEARL' 2014년 작성된 글 +추가)


(인턴기자한테 찡긋하는 이종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