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성당, 명동성당
107년 전
이 성당 앞에서 울려 퍼지던
낯선 남자의 당당한 외침
그리고 지금
명동성당 앞 낯선 표지석이 놓이게 된 장본인의 외침
'대한독립만세'
민족반역자들이 을사늑약으로 나라를 팔아먹고
신나게 사진을 찍고 있을 때
많은 국민들은 침묵했다
이 소식을 듣고 미국에서 분노한 청년, 이재명 의사는
안창호를 중심으로 창립되었던 공립협회에 가입하여
항일 민족운동에 동참했다
1909년 1월
이토가 순종과 함께 평양을 방문하기로 했을 때 암살을 계획했지만
황제의 안위가 걱정된 안창호의 만류로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1909년 12월 22일
종현 천주교 회당(명동성당)에서
벨기에의 국왕 레오폴 2세의 추도식이 있었고
성당 입구에서는
군밤장수로 변장한 이재명 의사가 거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저 멀리서 인력거를 타고 오는 민족반역자 이완용
이재명 의사는 이완용을 칼로 허리와 어깨 등을 세 번이나 찔렀으나
인력거꾼 박원문에게 가로막혀
미처 뜻을 다 이루지 못했다
다급히 인력거 인부를 칼로 찔러 자신에게서 떼어낸 후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
일본 순사의 칼에 넓적다리를 맞고 체포됐다
체포 당시 태연한 모습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외친 말
'나는 여러 동포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이 일을 한 것인데
너희들은 어찌 구경만 하고 있느냐?
오늘 나는 나라의 원수를 갚았으니 통쾌하다!'
인력거꾼 박원문은 숨이 끊어졌고
폐를 찔린 이완용은 병원으로 후송되어 일본인 의사들이 집도하여
아쉽게 목숨을 건졌다
조선말 매천야록, 대한매일신보의 사료에서 확인할 수 있듯
며느리와 불륜을 저질렀고
나라를 팔아먹으며
천륜과 인륜을 모두 저버린 이완용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차다 못해 넘치는 뇌물을 받으며 호의호식했다
한편, 조금도 두려운 기색 없이 일본 경찰에 잡혀간 이재명 의사는
일본인 재판장의 '피고와 같이 흉행한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라는 질문에
이어진 재판장의 '피고의 일에 동범이 있느냐?'에 대한 질문에
눈을 부릅뜬 이재명 의사의 대답
이 말에 창밖에서는 '옳다!'하는 소리와 함께
방청객들이 유리창을 부수었고
이재명 의사는
'이완용 암살 미수'만으로 사형을 받을 수 없었던 이재명 의사는
'박원문 살인죄'가 추가 적용돼 결국 사형선고를 받았다
선고를 받은 이재명 의사의 최후 진술
그리고 이어진 한 마디
1910년 9월 13일
조국의 미래를 2천만 동포와 수억의 후손들에게 맡기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당당히 순국할 때
그의 나이, 불과 24세
오늘도 여전히 명동성당의 들머리는
'나를 죽여 남을 살리는 곳'
106년 전 9월 13일
우리가 잃었던 또 한 명의 영웅이 죽으면서까지
재판소에서 방청석을 향해 열변을 토했던 말
106년 후 9월 13일
우리가 잃고 있는 또 한 명의 영웅이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
우리들에게 여전히 열변을 토할 말